제주 4·3 유적지
4·3 유적지 목록
영남동 옛터
영남동의 영주산 남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로부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도 불렀는데, 영주산(瀛洲山)의 영(瀛)과 남쪽을 뜻하는 남(南)을 결합하여 ‘영남(瀛南)’이라 하였다. ‘염둔·염돈’이라고도 했다.해발 5백 m 고지에 위치한 영남동은 4·3 사건 당시 리 단위로 독립된 마을이었다. 16가호의 주민들은 옛부터 화전을 일궈 보리 ...
영모원
2003년 5월 27일 하귀리민들은 일제시기 항일운동가와 4·3 희생자 및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희생된 호국영령들을 한 곳에 모셔 추모하기 위해 영모원을 조성했다. 현재 무장대에 의해 희생된 군경과 군경토벌대에 희생된 주민 희생자들을 마을 자체적인 논의에 따라 한 곳에 모시고 있다. 영모원 제막식에는 행사에는 도지사, 군수, 의원들의 모습은 없었고 ...
옥성정 옛터
이곳 옥성정 옛터는 1947년 6월 17일, 당시 11연대 연대장이었던 박진경 대령(진급)의 승진 축하연이 열린 곳이다. 이곳은 당시 제주읍내에서 가장 큰 2층 규모의 요정(料亭)이었다. 축하연에는 미군 장교와 11연대 참모, 통위부에서 파견된 장교들이 참석했다.박진경은 제주 부임 한 달 만에 미군정으로부터 제주 토벌작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중령에서 ...
우뭇개동산
이곳은 1949년 1월 2일 2연대 군인들과 서북청년단 단원들이 오조리 주민 30여명을 ‘다이너마이트 사건(또는 던지기약 사건)’으로 집단 총살한 곳이다. 토벌대는 다이너마이트로 자신들을 죽이려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학살했다. 희생자는 마을 이장, 민보단장 등 20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성산면 오조리 주민들의 가장 많은 희생을 낳은 사건으로 ...
웃무드네 대련수(대룡소)
역사문화지에 따르면, 1949년 2월 4일, 동부8리 대토벌 시 용강 주민들이 토벌대에 쫓기다 희생당한 곳이다. 남쪽에서 포위하고 마을에 들이닥친토벌대를 피해 용강리 사람들은 대련수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당시 용강리는 마을 주변 대부분이 밭과 초지로 이루어져 피신할 곳이 많지 않았다.그나마 하천변의 대련수나 당카름 등에 어느 정도 큰 나무와 궤 ...
원지모르
제주특별자치도·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이곳은 문대옥, 이지숙, 고모봉,고태호, 고계환, 고세환 등 10여 가호의 주민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1949년1월, 멘촌이 소개되면서 불탔다. 소개 당시 인명피해는 없었다. 몇 개월 후멘촌이 복구 되었지만, 본동과 멀리 떨어져 이 마을은 복구되지 못했다.삼양동지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등성이라는 ...
육시우영
'육시우영'은 1948년 11월 13일 새벽, 원동마을로 향하던 제9연대 군인들(중대장: 전순기 중위)이 하가리를 지나다 제사집에 있던 사람들과 그 근처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내어 25명을 공개적으로 집단학살한 장소이다. 하가리 마을 회관 서쪽 100미터 지점에 '육시우영'이라 불리는 밭이 있다. 이 ...
이덕구 가족묘(동회천)
이덕구 가족묘는 2008년에 조성된 전주이씨 이호구, 이좌구, 이순우 등이덕구의 가족들의 묘도 함께 있다. 이덕구의 가족 대부분도 4·3 기간에 희생되었다.한편 이덕구 가족묘 뒤편에는 소낭굴 서쪽에 있던 이덕구의 할머니 강씨의‘꺾여진 비석’이 옮겨져 있다.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이 비석은 4·3 시기토벌대에 의해 두 동강이 됐고, 비석에는 총질 ...
이덕구 산전
1948년 11월 20일 봉개리가 초토화되자 주민들은 인근 야산에 피신하게 된다. 이덕구 산전은 이렇게 토벌이 강화되자 주민들이 집단 피신했던 곳이다. '북받친밭'이라고도 불린다. 피난민들은 봉개리, 용강리, 회천리, 도련리 등의 사람들이었으며, 마을별로 그룹을 이뤄 살았다고 증언자들은 말한다.대부분의 피난 주민들이 귀순한 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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