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영역으로 건너뛰기

유적지 개요

1948년 4·28 평화협상 사흘만인 5월 1일 벌어진 이른바 ‘오라리 방화사건’은 진화 국면에 있었던 제주4·3이 더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은 제주읍 중심에서 약 2㎞ 가량 떨어진 오라리 연미마을에 우익 청년단원들이 대낮에 들이닥쳐 10여 채의 민가를 태우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일 오전 9시경, 전날 무장대에 의해 살해된 여인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마을 부근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경찰 3~4명과 서청‧대청 단원 3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매장이 끝나자 트럭은 경찰관만을 태운 채 돌아갔고 청년단원들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 중에는 오라리 출신 대청 단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라리 마을에 진입하면서 좌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사람들의 집들을 찾아다니며 5세대 12채의 민가를 불태웠습니다.

당시 미군정은 오라리 방화사건을 무장대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4.28 평화협상을 파기하고 강경 진압으로 돌아서는 결정적인 계기로 삼습니다. 그렇지만 미군 촬영반이 오라리 방화사건을 입체적으로 촬영한 영상을 찾게 되면서 오라리 방화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긴박하게 돌아간 당시의 상황들이 촬영됐다는 것은 미군정이 오라리 방화사건을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오라리 방화사건을 기억하는 비석은 현재 연미마을회관(제주시 연사길 142) 앞에 세워져있습니다. 이 곳 일대는 당시 1946년 2월 1일 개교한 오라공립국민학교가 있었던 곳입니다. 1948년 12월 중순 학교가 전소되고 교사 3명이 토벌대에 의해 전소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학교는 폐교됐다가 1951년 새로운 부지에 오라초등학교가 설립됐습니다. 이곳에는 오라공립국민학교 옛터였다는 표지석이 남아있습니다.

출처 : 4·3 평화재단 <제주 4·3 아카이브>

연미마을회관 자세히보기 >>

유적지 정보

  • 지역 구분 제주시권
  • 유적지 위도 33.4868022
  • 유적지 경도 126.50540969999997
  • 유적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사길 142

유적지 사진

연미마을회관

연미마을회관(사진 출처 4·3아카이브)

인근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