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적지
4·3 유적지 목록
섯알오름
섯알오름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모슬포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의 예비검속자들이 집단 학살된 장소이다. 7월 말부터 8월 하순에 이르기까지 제주읍과 서귀포 모슬포 등지에서 여러 차례 대대적인 집단 총살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인민군이 남하하여 8월 8일에 낙동강 전선에서 유엔군과 대치하며 격전중인 때였다. 따라서 인민군이 경남ㆍ부산 지역을 점령할지도 ...
성산동국민학교 서청특별중대 주둔지 옛터
성산국민학교에는 당시 100여 명 정도의 서청특별중대가 약 3개월 정도 주둔했었다. 이들은 성산동국민학교 건물에 주둔하면서 숙식을 해결했고, 붙잡아 온 주민들을 수감하고 취조하는 곳은 국민학교 바로 앞 담장 너머에 있었던 감자창고를 이용했다. 학교 담을 허물고 출입을 용이하게 하여 일제 때부터 있었던 주정공장에 딸린 창고를 사용했던 것이다. 지금도 ...
성산지서 옛터
성산지서는 제주4·3이 발발한 1948년 4월 3일 새벽 인민유격대의 습격을 받은 12개 경찰서 중 하나이다. 당시 성산지서에는 총 14명의 경찰관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습격 당시에는 3명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인민유격대 40여 명이 99식 총 2정을 갖고 습격을 시도했으나 경찰이 응사하자 모두 퇴각해 피해는 입지 않았다.4·3이 발발하기 전인 19 ...
소낭굴(동회천)
역사문화지에 따르면, 1949년 2월 4일 새벽, 제2연대는 제주읍 동부8리작전으로 토끼몰이식 토벌작전을 감행했다. 오등리 죽성에 주둔했던 군부대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영평, 월평, 용강을 거쳐 봉개리로 포위해 들어왔다또 함덕 주둔 군부대는 삼양지서 소속 대한청년단과 경찰들이 함께 동쪽에서서쪽으로 밀고 봉개리 방향으로 나갔다. 이미 1948년 11월 ...
솔쳉(챙)이왓
제주특별자치도·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이곳은 변윤찬, 김원일, 김기택등 10여 가호의 주민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1949년 1월 멘촌이 소개되면서마을을 불태웠다. 멘촌 재건 당시 본동과 멀리 떨어져 축성을 할 수 없었던이 마을은 복구되지 못했다.삼양동지에 따르면, 예전에 소나무가 울창한 곳이라는 데서 연유하여 ‘솔쳉이’가 되었다고 한다.지금은 대 ...
송령이골
1949년 1월 12일 의귀국민학교 교전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이 집단 매장된 곳이다. 이 날 군인 4명이 전사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무장대가 교전 중 사망했다. 이들의 시신은 학교 옆에 방치됐다가 나중에 이 곳 송령이골로 옮겨져 집단 매장됐다.1948년 12월 26일 의귀국민학교에 군인이 주둔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희생은 크게 늘어났다. 이 ...
수악주둔소
이 곳 위치가 수악(물오름, 水岳)의 동남쪽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신례천과 하례천 계곡 사이에 있는 동산에 위치해 있다. 수악은 제주시 조천읍과 남원읍 경계에 있는 원추형 측화산(고도 472m)이다.주둔소는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된 이중 구조이며, 외성이 일대를 둘러싸고 있다. 외성의 바깥쪽 높이는 3.5m, 내벽은 2m 정도이 ...
시오름 주둔소
서호리 시오름 경찰 주둔소는 1950년대 초반에 설치됐다. 이 시기 지역 주민들과 인민유격대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 주요 산길마다 25개의 주둔소가 만들어졌다. 시오름주둔소 성은 서호리 주민뿐만 아니라 호근리·강정리·법환리 등지의 주민이 총동원되어 한 달 만에 쌓았다고 한다.삼각형 모양의 주둔소는 한 면의 길이 40여m, 전체 둘레 120m 정도이다 ...
연미마을회관
1948년 4·28 평화협상 사흘만인 5월 1일 벌어진 이른바 ‘오라리 방화사건’은 진화 국면에 있었던 제주4·3이 더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은 제주읍 중심에서 약 2㎞ 가량 떨어진 오라리 연미마을에 우익 청년단원들이 대낮에 들이닥쳐 10여 채의 민가를 태우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일 오전 9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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