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적지
4·3 유적지 목록
동보서당(동보서숙/동보의숙) 터
제민일보 4‧3취재반에 따르면, 경무부는 3‧1 발포사건 이후 험악해진 제주도의 분위기를 진압하기 위해 1947년 4월 말에 철도경찰을 제주경찰 소속으로 대거 제주도에 내려보냈다. 철도경찰을 해방 직후 ‘운수경찰’로 발족했다. 주요 업무는 역 구내에서 개찰, 임검, 화물검색 등을 담당했다. 그러나이들의 존립 가치가 문제 제기 되던 차에 이들에게 제주 ...
동회천 4‧3희생자 위령비
역사문화지에 따르면, 동회천 마을회에서 2007년 12월, 화천사 옆 40여평의 부지를 확보하여 조성하였다. 각명비에는 동회천 4‧3 희생자 72명의이름이 새겨져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문화원연합회 2021, 159)
둘숭이(돌송이)
이곳은 1948년 10월 26일, 김태흥(26, 용강리 출신, 행방불명으로 신고됨),변세경 등 9명이 삼양지서 경찰에 의해 학살된 곳이다. 이들은 삼양지서에 수감되었던 마을 청년들로, 전날 밤 무장대가 삼양지서를 습격하여 경찰(김병규, 노형리 출신)을 학살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지서에 수감됐던 청년들을 집단 총살한 것이다.삼양1동 김하종씨에 ...
드르생이(서회천)
역사문화지에 따르면, 서회천 마을 북서쪽에 속한 마을이었다. 웃드르생이와 알드르생이가 있었으며, 광복 후까지도 드르생이글청이라는 서당도 있었다. 4‧3 당시 세대주로는 강운표, 강희수, 고성인, 고성주, 고택수(맨돈지),고한경, 김경환, 김용태, 김학봉, 문태기, 이은계, 한계택, 한맹주, 한사택,산성택 등이이었다.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이 마을 ...
머흘왓동산
제민일보 4·3취재반에 따르면, 1948년 10월 말 경비대 9연대장 송요찬은제주읍에 1대대를 배치하여 토벌작전을 진행했고, 이때부터 화북리·봉개리·회천리·용강리 주민들이 연거푸 희생됐다.그 당시 머흘왓동산은 지대가 높아 당시 빗개들이 토벌대가 마을로 진입하면신호를 보내 주민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하던 곳이다.이렇게 제주읍 중산간 마을들에 대한 군경 ...
멘촌 공회당 앞 밭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김우림의 일가족은 도련일동에 살고있었는데, 사정이 있어 멘촌 공회당에 숨어지내고 있었다1949년 1월 6일, 김우림의 일가족인 김화현(59,남), 신화(60, 여),변인생(36, 여), 김우림(16, 남), 김정순(13, 여), 김공림(8, 남),김태림(2, 남), 김호림(2, 남) 총 8명과 뱃속의 아기를 포함하여 9명이 ...
명도암 주둔지 터
명도암 토벌대 주둔소는 사각형의 성담을 쌓고 그 안에 경찰과 협조원이주둔을 했다. 경찰이나 군인들이 토벌작전 중에 오가며 머물던 곳이다.(제주특별자치도문화원연합회 2021, 154)
명진모르
삼양1리 청년들이 경찰이 들이닥치면 본능적으로 원당봉 쪽으로 피신했는데, 그 과정에서 붙잡힌 청년들이 여러 차례 총살당했던 곳이기도 하다.제주4·3연구소가 조사한 이곳에서 희생된 삼양주민들은 다음과 같다.1948년 5월 24일: 윤동신(25, 삼양1리 남)1948년 10월 24일: 백공호(22, 남)1948년 10월 28일: 강관배(28, 남) 등 ...
박성내
1948년 12월 21일 이른바 '자수사건'으로 조천읍 주민 100여명이 이 곳 박성내에서 학살 당했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죄를 자백하면 살려주겠다" 해놓고 자수자를 집단 총살한 사건을 '자수사건'이라고 부른다.초토화 작전(1948년 11월 이후) 시기, 제9연대는 조천면 마을 주민들을 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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