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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유적지

4·3 유적지 목록

총 87건 (3/10페이지)

잃어버린 마을 드르생이 위치
제주시권

드르생이(서회천)

역사문화지에 따르면, 서회천 마을 북서쪽에 속한 마을이었다. 웃드르생이와 알드르생이가 있었으며, 광복 후까지도 드르생이글청이라는 서당도 있었다. 4‧3 당시 세대주로는 강운표, 강희수, 고성인, 고성주, 고택수(맨돈지),고한경, 김경환, 김용태, 김학봉, 문태기, 이은계, 한계택, 한맹주, 한사택,산성택 등이이었다.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이 마을 ...

머흘왓동산과 주변 밭 예상 위치
제주시권

머흘왓동산

제민일보 4·3취재반에 따르면, 1948년 10월 말 경비대 9연대장 송요찬은제주읍에 1대대를 배치하여 토벌작전을 진행했고, 이때부터 화북리·봉개리·회천리·용강리 주민들이 연거푸 희생됐다.그 당시 머흘왓동산은 지대가 높아 당시 빗개들이 토벌대가 마을로 진입하면신호를 보내 주민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하던 곳이다.이렇게 제주읍 중산간 마을들에 대한 군경 ...

멘촌 공회당 앞 밭 위치
제주시권

멘촌 공회당 앞 밭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김우림의 일가족은 도련일동에 살고있었는데, 사정이 있어 멘촌 공회당에 숨어지내고 있었다1949년 1월 6일, 김우림의 일가족인 김화현(59,남), 신화(60, 여),변인생(36, 여), 김우림(16, 남), 김정순(13, 여), 김공림(8, 남),김태림(2, 남), 김호림(2, 남) 총 8명과 뱃속의 아기를 포함하여 9명이 ...

명도암 주둔지 터의 위치
제주시권

명도암 주둔지 터

명도암 토벌대 주둔소는 사각형의 성담을 쌓고 그 안에 경찰과 협조원이주둔을 했다. 경찰이나 군인들이 토벌작전 중에 오가며 머물던 곳이다.(제주특별자치도문화원연합회 2021, 154)

명진모르 전경. (2023. 07. 12. 촬영)
제주시권

명진모르

삼양1리 청년들이 경찰이 들이닥치면 본능적으로 원당봉 쪽으로 피신했는데, 그 과정에서 붙잡힌 청년들이 여러 차례 총살당했던 곳이기도 하다.제주4·3연구소가 조사한 이곳에서 희생된 삼양주민들은 다음과 같다.1948년 5월 24일: 윤동신(25, 삼양1리 남)1948년 10월 24일: 백공호(22, 남)1948년 10월 28일: 강관배(28, 남) 등 ...

모슬포지서 옛터
서귀포시 서부권

모슬포지서 옛터

이 곳 모슬포 경찰서에서는 1948년 3월 14일 고** 순경과 변** 형사가 대정면 영락리에 살던 양은하(27세)를 고문하여 숨지게 하는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4·3 발발의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고** 순경과 변** 형사 등 이 사건에 연루된 취조경관 등 6명은 이 사건으로 군정재판에 회부되어 징역형에 처하였지만, 모슬포 경 ...

목시물굴 사진
제주시 동부권

목시물굴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가 초토화 된 후 마을 주민들이 은신했다 학살된 장소이다. 당시 함덕의 9연대는 11월 25일 선흘곶의 도틀굴에 숨어있던 선흘 주민들을 학살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날에는 목시물굴에서 40여 명의 주민을 학살했다. 그후 9연대는 연행자를 고문해 다른 은신처인 인근 대섭이굴과 벤뱅듸굴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들을 길라잡이로 삼 ...

무등이왓
서귀포시 서부권

무등이왓

무등이왓 4·3 당시 주민들이 학살 당하고 마을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후 아직까지 복구가 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마을'로 남아 있다. 무등이왓은 1948년 11월 21일 토벌대에 의해 100명가량의 주민들이 희생되고 마을이 전소되었다. 약 3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이 마을은 인근 마을 중 가장 규모가 컸으며, 4·3 당시에는 ...

박성내
제주시권

박성내

1948년 12월 21일 이른바 '자수사건'으로 조천읍 주민 100여명이 이 곳 박성내에서 학살 당했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죄를 자백하면 살려주겠다" 해놓고 자수자를 집단 총살한 사건을 '자수사건'이라고 부른다.초토화 작전(1948년 11월 이후) 시기, 제9연대는 조천면 마을 주민들을 대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