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적지
4·3 유적지 목록
머흘왓동산
제민일보 4·3취재반에 따르면, 1948년 10월 말 경비대 9연대장 송요찬은 제주읍에 1대대를 배치하여 토벌작전을 진행했고, 이때부터 화북리·봉개리·회천리·용강리 주민들이 연거푸 희생됐다. 그 당시 머흘왓동산은 지대가 높아 당시 빗개들이 토벌대가 마을로 진입하면 신호를 보내 주민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하던 곳이다.이렇게 제주읍 중산간 마을들에 대한 ...
멘촌 공회당 앞 밭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김우림의 일가족은 도련일동에 살고있었는데, 사정이 있어 멘촌 공회당에 숨어지내고 있었다1949년 1월 6일, 김우림의 일가족인 김화현(59,남), 신화(60, 여),변인생(36, 여), 김우림(16, 남), 김정순(13, 여), 김공림(8, 남),김태림(2, 남), 김호림(2, 남) 총 8명과 뱃속의 아기를 포함하여 9명이 ...
명도암 주둔지 터
명도암 토벌대 주둔소는 사각형의 성담을 쌓고 그 안에 경찰과 협조원이 주둔 했다. 경찰이나 군인들이 토벌작전 중에 오가며 머물던 곳이다.주둔소의 흔적은 1m 높이 외담 형태의 약간의 윤곽이 동서 방향으로 남아있다. 김일부(85세, 명도암 거주)의 증언에 따르면, 사각형 구조의 회곽식 성담, 높이 3m, 길이 35m×25m, 초소가 네 곳, 내부에 집 ...
명진모르
삼양1리 청년들이 경찰이 들이닥치면 본능적으로 원당봉 쪽으로 피신했는데, 그 과정에서 붙잡힌 청년들이 여러 차례 총살당했던 곳이기도 하다.제주4·3연구소가 조사한 이곳에서 희생된 삼양주민들은 다음과 같다.1948년 5월 24일: 윤동신(25, 삼양1리 남)1948년 10월 24일: 백공호(22, 남)1948년 10월 28일: 강관배(28, 남) 등 ...
모슬포지서 옛터
이 곳 모슬포 경찰서에서는 1948년 3월 14일 고** 순경과 변** 형사가 대정면 영락리에 살던 양은하(27세)를 고문하여 숨지게 하는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4·3 발발의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고** 순경과 변** 형사 등 이 사건에 연루된 취조경관 등 6명은 이 사건으로 군정재판에 회부되어 징역형에 처하였지만, 모슬포 경 ...
목시물굴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가 초토화 된 후 마을 주민들이 은신했다 학살된 장소이다. 당시 함덕의 9연대는 11월 25일 선흘곶의 도틀굴에 숨어있던 선흘 주민들을 학살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날에는 목시물굴에서 40여 명의 주민을 학살했다. 그후 9연대는 연행자를 고문해 다른 은신처인 인근 대섭이굴과 벤뱅듸굴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들을 길라잡이로 삼 ...
무등이왓
무등이왓 4·3 당시 주민들이 학살 당하고 마을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후 아직까지 복구가 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마을'로 남아 있다. 무등이왓은 1948년 11월 21일 토벌대에 의해 100명가량의 주민들이 희생되고 마을이 전소되었다. 약 3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이 마을은 인근 마을 중 가장 규모가 컸으며, 4·3 당시에는 ...
박성내
1948년 12월 21일 이른바 '자수사건'으로 조천읍 주민 100여명이 이 곳 박성내에서 학살 당했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죄를 자백하면 살려주겠다" 해놓고 자수자를 집단 총살한 사건을 '자수사건'이라고 부른다.초토화 작전(1948년 11월 이후) 시기, 제9연대는 조천면 마을 주민들을 대상 ...
박진경 추도비 등 비석들
제주국립호국원 근처 산록북로 길가에 4·3 시기에 희생된 군·경들의 추모비가 많이 세워져 있다. 1985년 10월 26일 제주시 충혼묘지로 옮겨졌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가장 오른쪽에 놓여진 '충혼비'는 1957년 제주도공비완멸위원회에서 세운 비석이다. 그 왼편에 있는 충혼비는 제주 4.3으로 희생된 경찰 전사자들을 위해 세 ...
검색하기
찾고 있는 내용이 있으신가요? 검색어를 입력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