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적지
4·3 유적지 목록
이덕구 가족묘(동회천)
이덕구 가족묘는 2008년에 조성된 전주이씨 이호구, 이좌구, 이순우 등이덕구의 가족들의 묘도 함께 있다. 이덕구의 가족 대부분도 4·3 기간에 희생되었다.한편 이덕구 가족묘 뒤편에는 소낭굴 서쪽에 있던 이덕구의 할머니 강씨의‘꺾여진 비석’이 옮겨져 있다.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이 비석은 4·3 시기토벌대에 의해 두 동강이 됐고, 비석에는 총질 ...
제주 4·3 평화공원
제주 4·3 평화공원은 제주 4·3의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재현하여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제주도를 평화와 인권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2008년 조성되었다. 4·3 평화공원에는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비롯해 위령제단, 위령탑, 각명비, 행방불명인표석, 유해봉안관 등과 조형물들이 있으며 매해 4월 3일, 4·3 추념식이 봉행되고 있다.제주4· ...
제주국제공항 (정뜨르 비행장)
제주도를 찾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제주국제공항은 제주4·3 당시 최대 민간인 학살터 중 한 곳이다. 이 공항은 1940년대 초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군사적인 목적으로 처음 개항됐다. ‘정뜨르 비행장’이라고 불렸던 개항 당시에는 도두봉 가까이 있는 활주로 부근에 작은 군용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시설이 전부였다. 1957년 활주로를 증설하며 ...
제주농업학교 옛터
제주농업학교 옛터는 해방 전후 혼란의 제주 현대사가 응축된 곳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벚꽃 축제로 유명한 제주시 '전농(典農)’로 라는 도로명도 바로 근처가 제주농업학교 터라서 만들어졌다.제주농업학교는 1907년 7월 1일 제주군수 윤원구가 지방 유지와 군민들의 성금을 모아 설립한 사립의신학교로 태동했다 ...
제주시 충혼묘지 (박진경 추도비)
노형동에 위치한 제주시 충혼묘지에는 4·3과 한국전쟁 전후한 시기에 희생된 군·경들의 추모비가 많이 세워져 있다. 1990년 현재 총 639기(군인 494기, 경찰 145기)가 안장되어 있다.묘지 입구에는 박진경 추도비가 세워져 있다. 평화협정을 주도했던 김익렬 9연대장이 전출당한 직후인 1948년 5월 초, 박진경 중령 제11연대 연대장으로 부임한 ...
제주신보사 옛터
제주신보사는 해방 이후 제주도의 유일한 언론매체로 1945년 10월 1일, 전국 최초로 지방에서 창간된 신문이었다.이때부터 제주 지역의 유일한 언론으로써 제주도의 제반현황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고, 이에 제주신보의 당시 자료는 해방 이후 제주사회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로 지금까지 활용되고 있다.그러나 1948년 4‧3이 발발하면서 토벌 ...
제주항
1949년을 전후로 열린 군법회의를 받은 육지부 형무소로 끌려간 곳이다. 초토화 작전을 피해 산에 올라 겨우내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입산자들이 1949년 봄, 대거 귀순하자 군경은 이들을 제주항 바로 앞에 위치한 주정공장 수용소에 수감했다. 수감된 주민들은 이곳에서 상주하던 경찰 특별수사대에게 취조를 받고 육지부 형무소로 이송됐다.또한 한국전쟁 발발 ...
주정공장 옛터
이곳에 있었던 주정공장 창고는 4·3 당시 수용소로 활용되었다. 특히 1949년 봄이 되면서 한 겨울을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피난입산자 중 살아남은 주민들이 대거 귀순하면서, 경찰지서나 군부대로부터 인계되는 귀순자들로 이 곳 주정공장 창고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당시 하산자들의 수용 장소는 제주 읍내의 경우 주정공장이 가장 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
초낭가름 소남밧
역사문화지에 따르면 초낭가름은 봉개동 1554번지(봉개교차로 동방명품치킨 뒤쪽)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이루어진 마을 이름이다. 고씨 40여호가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1949년 1월 10일(음 48.12.12.),군인과 경찰,대한청년단으로 이루어진 토벌대가 봉개리에 들이닥쳐 숨어지내던 주민들을붙잡았다. 이날 마을에서 붙잡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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