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적지
4·3 유적지 목록
벌랑 뒷동산궤
제주4·3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삼양3구 청년들이 토벌대가 들이닥치면일상적으로 피했던 해안가의 자그마한 굴이다. 주민 임상주(2006년 67세,남)는 이렇게 증언했다.이곳 동산에 오르면 경찰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잘 볼 수 있었지. 청년들은 경찰이 들어오는 낌새만 보이면 이 굴로 숨어들었어. 그러다 한번은굴이 발각돼 숨어있던 청년 여러 명이 붙 ...
벌랑4 •3성
삼양3동 4·3성은 ‘벌랑성’이라고도 한다. 삼양1·2구와 함께 1949년 초에축성을 시작했고, 일주도로에서 해안가 쪽으로 삼양1~3구 모두를 감싸며 이어졌다. 삼양3구는 삼양2구와의 경계인 둠벵이천을 시작으로 서쪽으로 쌓아가다 지금 벌랑 4·3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벌랑길 쯤에 성문을 내고, 북서쪽으로 뻗어 화북2동으로 연결되었다.(삼양동지편찬위원회 ...
북국민학교
제주북국민학교는 근대교육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 최초의 학교 터이다. 1907년 윤원구 군수는 이곳 객사대청 터에 제주공립보통학교(처음 4년제)를 창설하였으며 아울러 중등교육과정(1년제)인 의신학교도 병설하였다. 의신학교는 얼마 뒤 귤림서원 터로 옮겨 교육을 실시하였지만 보통학교는 그 뒤에도 꾸준히 정착하여 지금의 제주북초등학교로 발전하였다. ...
불탑사와 원당사
삼양동지에 따르면, 1300년에 원당봉에 원당사(현 불탑사)가 창건되었고,1653년까지 존재했다가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1914년 안봉려관스님에 의해 재창건된 불탑사, 1924년 원당봉 자락에 원당사가 창건되었다스님에 의해 재창건된 불탑사, 1924년 원당봉 자락에 원당사가 창건되었다.불탑사는 4·3으로 1948년 11월 삼양리 마을로 소 ...
산물낭우영(동회천)
역사문화지에 따르면, 화천사 동쪽 일대로 산귤나무가 많았던 마을의 이름이다. 산물낭우영은 4‧3 당시 김평식, 허신생, 김참봉 등 7가구가 살았던 작은 마을이다. 김평식의 모친과 김참봉의 세 식구가 토벌대에 희생되었다. 1948년 11월 27일 군경 토벌대에 의해 초토화 된 이후 이곳으로 돌아온 사람이 없어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제주특별자치도문화 ...
삼양교회 옛터
삼양교회는 1918년에 설립되어 교세를 확장해가다가 1949년 1월 3일 4·3사건의 여파로 예배당이 소실되면서 당시의 모든 기록이 없어지고 말았다.1951년에 원래 자리를 신축 복원하여 지금에 이른다.(한금순 2023, 12)삼양2동 김건의씨45)는 관련하여 이렇게 증언했다.당시 예수를 믿으면 ‘반동(무장대에 협조 하니 않는 주민들)’이라고 불렸고 ...
삼양국민학교
4·3과 관련된 비석은 총 5기이다. 학교후원회가 <고 교장 송문평 순직지지>와<고 급사 송상봉 순직지지>는 1953년에 세웠고, 1982년에는 4·3때 학교가 전소된 후, 재건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공적을 기리고자 주민들의 성금으로<공적비>를 세웠다. 2002년에는 총동창회가 <애국학도 추도비>를 세웠고 ...
삼양지구대 내 순직비석들
삼양지구대 내에는 총 8기의 순직비가 있다. 이 중 4기는 화북지서에서근무하다 무장대의 습격으로 순직한 경찰 임선길, 최형락, 김장하, 문광준의순직비이다. 원래 화북 주공아파트 어린이 공원에 있던 것을 삼양지구대 내로 옮겨왔다.삼양지서에 근무한 경찰의 순직비 4기의 사연은 이렇다.김병규(26)는 노형동 출신 경찰로 삼양지서에서 근무하다 1948년 1 ...
삼양지서 앞 밭
이곳은 삼양지서에 잡혀 온 주민들이 주로 학살됐던 장소이다. 삼양리 주민뿐 아니라 도련, 화북, 건입, 용강, 봉개까지 삼양지서 관할지역을 넘어서는 지역 주민들까지도 이곳에서 학살을 당했다.제주4·3연구소가 확인한 이곳 희생자들이다.삼양동지에 따르면, 「제주도 4·3피해조사보고서」에 음력 1948년 12월 16일(1949년 1월 26일) 당시 버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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