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면서부터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였습니다. 하필 기행 가는 날 날씨가 안 좋다 생각했다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서는 4.3 당시의 궂은 날씨나마 느껴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함께 걷는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들렸습니다.
"참... 그때는 신발도 좋아봤자 고무신이었을텐데..."
12월 16일,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소속단체 회원들과 항쟁의 길을 찾아 걸으며, 내년 70주년을 맞이하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이 날 걸었던 길은 제주인민유격대(무장대)의 자취를 따라 걷는 길이었습니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고, 통일된 나라를 꿈꿨던 사람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며 산을 올랐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걸었습니다. 이 곳 제주에 수탈의 역사, 학살과 희생의 고통. 그리고 그에 맞선 저항의 역사도 면면히 이어져왔음을 한걸음, 한걸음 하얀 눈길 위에 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제주 4·3 항쟁의 길> 기행 코스
제주대 정문 버스정류소 출발(시내버스로 이동) - 관음사 정문 - 사천왕문 옆 비트 - 관음사 남서쪽 토벌대 주둔지 - 나한전 - 아미봉 정상 비트 - 아미봉 동쪽 능선 - 아라동 둘레길 합류 - 삼의악 진지동굴 - 소산오름 - 산천단 총알 비석 - 산천단 정류소
제주에서 가장 큰 절 중 하나인 관음사. 4.3 당시 무장대들은 이 인근의 어승생악을 본부로 삼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관음사는 무장대의 식량을 보급하는 길목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기도 했지요.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구성된 토벌대는 1949년 2월 12일, 무장대를 쫓아내고 관음사를 전소시켰습니다. 그 이후 관음사는 토벌대의 주둔지가 되었지요.
증언에 따르면 관음사 주변에서 일어났던 전투에서 토벌대가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입었고 이에 분노해 전력을 다해 관음사를 초토화시켰다고 합니다. 토벌대가 작전 중 관음사 스님을 고문하기도 했다는 증언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관음사 뒤쪽으로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닦은 작전 도로가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군 주둔지의 참호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참호들은 무장대가 아닌, 토벌대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라고 합니다.
관음사는 숫자 '2'와도 관련이 깊은 곳입니다. 관음사에는 당시 제2연대 2대대가 주둔해 있었고 관음사가 방화, 건물이 전소된 것도 1949년 2월 12일입니다. 무장대 이덕구 사령관이 잠시 주둔하기도 했었고 2연대 2대대 대대장 이름은 이석봉 대위였습니다.
아미봉 정상에서 술을 따라 올리면서,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고 통일된 나라를 꿈꿨던 사람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며 산을 올랐던 사람들을 기억했습니다.
용감하게 저항했던 제주도민들의 삶을 기억했습니다.
제주의 숲은 신비로워서 눈쌓인 곳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자 가을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 길을 따라 무장대들도, 당시 산에 올랐던 사람들도 걸어갔겠지요.
일제시대 때 일본이 만든 진지동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 곳곳에는 오름과 해안가에 이러한 진지동굴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당시 폭약을 쓰지 않았다는 기록들이 있는데 이 곳에 있는 이 진지동굴은 단단한 바위로 되어 있었어요. 그렇다면 이런 곳도 곡괭이 하나만 가지고 파내려 간 것인지, 어떻게 이런 동굴을 만들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일본이 결7호 작전을 수행하기 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게 되어 제주는 더 많은 인명피해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오키나와에서는 20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긴 여정은 산천단 근처에서 끝났습니다. 산천단 앞에는 세 개의 비석이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에는 제주 4.3 당시의 총알이 아직도 박혀있습니다. 산천단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비석을 눈여겨 보세요. 그 안에도 제주 4.3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