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말]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70년간 끝나지 않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제주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제주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작전의 주축이 됐던 해병대 3, 4기 대부분이 제주도민이라는 점도 그렇습니다. 제주도민들은 제주4·3 기간 중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이 기간 중 육지에서는 '보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고, 제주에서는 '예비검속'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제주에서 예비검속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다수는 4·3 국면에서 정부에 의해 '요시찰 인물'로 분류된 사람들입니다. 제주에서 제주4·3과 한국전쟁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제주다크투어와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는 10월 8일부터 총 5강에 걸쳐 <제주4·3과 한국전쟁> 강연을 개최했습니다. 1강 후기는 임혜송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제주다크투어와 제주 4·3 희생자유족청년회에서 주최한 <제주 4·3과 한국전쟁>이라는 강연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되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4·3에 대해 관심이 많던 터라 강연들이 5회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강의 대신 Zoom을 통해 열렸지만, 첫 강의는 주최측의 세심한 준비로 문제없이 원활히 진행되었습니다. 강의 신청도 순식간에 마감되었다고 들었는데, 참석자들의 이런 뜨거운 관심 때문인지 대면강의와 다름없는 집중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주 4·3과 한국전쟁>의 첫 온라인 강의는 전남대학교 사학과 임종명 교수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해방 직후의 한반도는 다양한 정치적 세력들과 이념들이 경쟁하고 대립하는 혼란스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무대였습니다. 임종명 교수님께서는 이날 강연을 통해 해방 직후 5년사, 특히 그 속에서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 해방 후 4·3으로 이어지는 과정 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해석적 틀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해방 직후의 정국에서는 일제 식민지 하에서 친일의 빚을 지지 않은 좌파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5·10 단선반대운동, 9월 총파업과 대구 10월항쟁이 보여주듯이 대중적 측면에서도 좌파의 혁명주의적 이념이 그 당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스크바 3상회의에 관한 동아일보 오보사건과, 당시 총파업 등을 저지하려는 미군정의 정책 등을 계기로 좌파는 급속도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우익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임종명 교수님은 해방 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해방직후 고조되어가는 혁명적 열기를 억누르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람들을 희생한 시기”로 해석하셨는데, 제주 4·3 역시 비슷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강의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의문시하고 질문해야 한다는 교훈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흔히 좌익과 연결되는 정치적 테러가 사실 해방직후 정국에서는 어떻게 우익의 전유물이었는지, 또 보수적 경향을 띤다고 알고있는 대구 지역이 어떻게 해방 직후 오랫동안 양민학살 진상규명운동, 교원노조 운동 등 진보적 운동의 거점이었는지 알려주셨습니다. 특히 1948년 이승만과 맥아더가 참가한 대한민국 정부 출범식 사진이 실제로는 사진의 주변부를 잘라낸 편집된 사진이었다는 점, 그리고 총구를 드러낸 군인들이 참석한 군중을 에워싸고 있는 잘리기 전의 원본을 보여주셨을 때는 많은 강의 참가자들이 놀라움의 탄식을 뱉었습니다. 역사를 읽는 데 있어서 치열한 공부와 탐색, 드러난 사실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해석적 도전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4·3을 보는데 있어서 국민국가의 틀을 깨고 세계사적 설명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방에서 4·3, 여순사건,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강의는 두시간을 꽉 채우고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앞으로 이어질 4·3 사건에 대한 추후의 강연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주최측과 임종명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