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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말]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70년간 끝나지 않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제주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제주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작전의 주축이 됐던 해병대 3, 4기 대부분이 제주도민이라는 점도 그렇습니다. 제주도민들은 제주4·3 기간 중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이 기간 중 육지에서는 '보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고, 제주에서는 '예비검속'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제주에서 예비검속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다수는 4·3 국면에서 정부에 의해 '요시찰 인물'로 분류된 사람들입니다. 제주에서 제주4·3과 한국전쟁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제주다크투어와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는 10월 8일부터 총 5강에 걸쳐 <제주4·3과 한국전쟁> 강연을 개최했습니다. 2강 후기는 황숙자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10월 15일 <제주4·3과 한국전쟁> 2강 웨비나가 진행되었습니다.
2020년 10월 15일 <제주4·3과 한국전쟁> 2강 웨비나가 진행되었습니다.

1946. 5. 13

제주 청년 이종민이 나고 자란 제주를 떠나 도쿄에서 자신의 부모도 아니고 조국의 지도자도 아닌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지도자 맥아더에게 편지를 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짧게 서술하며 일본에 남아 ‘우리는 우리 문제를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썼다. 부모에게 보내는 듯한 애틋한 편지다.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왔을까? ‘산사람들’과 함께 싸웠을까? 그러다 무참히 죽고 말았을까?

그 후.

‘아버지는 그 책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 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 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 한강, 〈소년이온다〉

소설가 한강은 5월 광주에서 그 일을 직접 겪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가르치던 소년이었고 자신이 살던 집, 자신의 방에 배를 깔고 숙제를 했을지도 모르는 소년의 자료를 찾아 그 소년이 ‘부끄럽지 않게’ 써 달라던 소년의 형을 만나고 글을 썼다.

지금.

‘쓰인 역사 이전에 말해진 역사가 있었습니다.’
- 제인 진 카이센

제인 진 카이젠은 제주에서 나고 덴마크로 입양되어 자란 작가로 ‘거듭되는 항거’ 라는 주제로 설치미술작품을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다.

이종민의 편지와 한강의 소설, 진 카이젠의 작업 (망각, 기억, 복원, 추념, 해석).

이 세 사람의 일(사건)은 역사 속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해방되고 분할되고 (이데올로기로) 점령된 조국에서 만나 마음으로 피 흘리며 거듭거듭 항거하고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두 번째 강의를 듣고 나서 인상깊게 되새겨보게 되는 사람들이다. 이제야 비로소 빨갱이라는 실체 없는 ‘뻥’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제주4·3 항쟁’이라 말할 수 있겠다.

[ 편집자말2] 지난 10월 15일 정용욱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님이 <제주4·3과 한국전쟁> 두 번째 강연으로 '미국 기록으로 본 제주4·3과 한국전쟁'을 주제로 강연을 해 주셨습니다.

정용욱 교수님은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님의 말을 빌어 제주4·3은 두 가지의 역사를 갖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 그 자체로서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거사 정리로서의 역사가 그것입니다.

미국의 모든 문서를 저장해 놓은 내셔널 아카이브에서 발굴한 자료도 함께 봤습니다. 특히, 1944년 일제에 징집되었던 조선의 청년 이종민이 1946년 해방 이후 맥아더 사령관에게 쓴 편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이 귀국할 때 1인당 천 엔만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의 부당함을 알리고 제도 개선을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등이 참여해 내용을 구상했다는 전쟁 '삐라'에 관한 내용도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전선이 교착되자 미군(유엔군)은 심리전을 통해 전쟁을 유리한 국면을 끌고 가고자 했습니다. 이때 주무기가 이른바 '삐라'로 불리는 전단지였습니다. 총 25억 장이 살포되었다고 하는데요. 면적으로 따지면 한반도를 20번 정도 덮을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합니다. 삐라는 군 작전의 일환으로 치밀한 전략전술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당시 한반도에 뿌려졌던 모든 삐라는 모두 미군의 검열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양한 내용의 삐라들을 보며 한국전쟁의 국내적, 국제적 맥락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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