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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보사 옛터

  • 제주4·3 유적지 안내판이 없는 곳
  • 해방 이후 제주도의 유일한 언론매체
  • 해방 직후와 4·3발생 초기 제주사회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자료

<4·3유적지 시민 안내판>

제주신보사는 해방 이후 제주도의 유일한 언론기관이었다.

제주일보는 일제강점기 말 군인과 섬주민들에 대한 선전공작지로 이용되던 『제주신문』의 시설을 광복 후 접수하여, 1945년 10월 1일 『제주신보』로 창간하였다. 이때부터 제주 지역의 유일한 언론으로써 제주도의 제반 현황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고, 3·1 발포사건 이후 피해 유가족 조의금 모금 문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제주신보의 당시 자료는 해방 이후 제주사회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자료로 지금까지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1948년 4·3이 발발하면서 토벌대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들이 토벌 당국에 잡혀가 고초를 겪었다. 그러던 중 제주읍 내에 살포된 삐라가 제주신보사에서 인쇄된 것이 빌미가 되어 편집국장 김호진이 군 수사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다가 1948년 10월 31일경 군부에 의해 처형됐다. 또 제주신보는 4·3 당시 제주지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서북청년단에 의해 강제로 접수당하기도 하였다. 1949년 2월경 제주신보사에 난입한 서청단원들은 저항하는 김석호 사장과 김용수 편집국장 등에게 집단폭행을 가하고 쫓아낸 후 제주신보사를 강탈했다.

참조

<어디에 있나요?>

  • 주소: 제주시 칠성로 10
  • 찾아가려면: 관덕정에서 동문시장 방향으로 가다보면 '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우측의 길로 상가로 들어갈 수 있다. 상가 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1층에 '국제금고'와 옷가게가 있는 건물이 있다. 그 건물 2층이 제주신보사가 있던 자리이다.

<시민지킴이단이 이곳을 조사 유적지로 선택한 이유>

  • 제주신보는 해방직후부터 4·3초기에 이르기까지 제주사회의 흐름을 보도하던 당시 제주의 유일한 언론이었습니다. 제주신보사 옛터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고 당시의 건물 뼈대만 남아 있으나 이곳이 4·3관련 유적지라는 안내판은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 제주다크투어와 4·3유적지 시민지킴이단 2기는 제주4·3 당시에 3·1발포사건 이후 유가족들을 위해 조의금 모금 운동을 벌이고, 군경과 서북청년단에 의해 피해를 입기도 하는 등 제주신보사 옛터와 제주4·3의 역사를 설명한 <시민 안내판>을 만들어 시민행동을 진행합니다.

<제주4·3과 제주신보사 옛터>

  • '제주신보'는 해방 이후 제주도의 유일한 언론매체로 1945년 10월 1일, 전국 최초로 지방에서 창간된 신문이다. 이때부터 제주지역의 유일한 언론으로써 제주도의 제반현황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고, 특히 해방 이후 제주사회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이다. 제주신보사는 1947년 3월 1일 발생한 3·1발포사건 이후 피해 유가족 조의금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116쪽)
  • 그러나 1948년 제주4·3 발발 이후에는 기자들이 걸핏하면 당국에 잡혀가 고초를 겪었다. 군경은 '구국투쟁위원회를 조직해 지하투쟁을 전개했다'는 혐의 등을 씌워 제주신보 기자를 비롯한 종업원들을 검거하는 등 강경작전을 벌이기에 앞서 언론을 통제하여 제주도를 고립시키려 하였다.(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290쪽)
  • 제주신보는 4·3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서북청년단에게 강제로 접수당하기도 하였다. 1949년 2월경 서북청년단 단장 김재능은 제주신보 김석호 사장과 김용수 편집국장 등에게 집단폭행을 가하고 쫓아낸 후 제주신보사를 강탈하였다. 테러와 협박으로 제주신보를 강제접수한 김재능은 서청 특별중대원인 김묵을 편집국장에 앉히고 자신은 사장 자리에 올라 더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386쪽)
  • 제주신보는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한 뒤 제주4·3 진상조사를 앞장서서 진행하였다. 제주신보사는 1960년 6월 2일 '4·3사건 및 6·25당시 약민학살 진상규명 신고서'를 접수하여, 단 3일 동안 피해 건수 총 1,259건, 인명피해 1,457건의 신고를 접수하였다. 그러나 다음해 5·16 군사정변으로 4·3진상조사가 중단되었고, 진상조사에 앞장섰던 제주신보사 신두방 전무가 구속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제주신보사 옛터와 관련된 4·3 유적지>

<4·3유적지 시민지킴이단 활동>

  • 2022. 10.13. 시민지킴이단 2기 1조 사전답사
  • 2022. 10~12. 유적지 자료조사
  • 2022. 12. 17. 시민지킴이단 2기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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