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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법무부가 제주4·3사건 직권재심 범위에 군사재판뿐 아니라, 일반재판 수형이인을 포함하는 방안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매우 다행인 일입니다. 2021년 「제주4·3특별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제14조를 신설하여 일반재판 수형인의 유족들이 청구할 수 있는 '특별재심'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다. 또한 제15조를 신설을 통해 군사(군법)재판 수형인에 대해 검찰이 직접 재심을 청구하는 직권재심의 법적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법 개정 후, 제주4·3희생자유족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이 일반재판 수형인들도 직권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요구해왔고, 그 변화가 오늘 일부 확인된 것 같습니다. 부디 직권재심 범위 확대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기존 일반재판 특별재심이 4·3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반 검사들이 담당하면서 사상검증의 의혹이 재기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제주4·3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권리구제라는 목적에 맞게 일반재판 재심이 진행될 수 있도록 기존 합동수행단 또는 개별 수행단 조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 입니다. 현 군사재판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의 경우, 제주4·3 사건에 대한 이해가 깊고, 인사 이동에 의한 지속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 진행된 제10차 직권재심으로 내란죄가 적용되었던 15인 및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복역한 15인, 총 30명이 군사재판 수형인 희생자가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나이가 젊었다는 이유로, 중산간 마을에 산다는 이유로 끌려가 복역 중에 행방불명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입니다. 이날은 4명의 유족이 장수 부장판사의 진행에 따라 진술을 했습니다.

망 이군형님의 동행 이00님은 본인이 5살 때 형님과 집으로 가는데, 모르는 사람 둘이 와서 형님을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형을 쫓아 갔으나 너무 멀리 가기에 집으로 돌아온 후로는 다시 형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가끔 형사가 찾아와 집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너무 어릴 때 형과 헤어져 이제는 형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번 재심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신 분들, 특히 유족회에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망 박명환님의 5촌 조카 박00님은 법률상으로는 아니지만, 족보상으로 희생자의 양자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큰할머니로부터 박명환님의 얘기를 들었는데, 당시 제주고를 졸업하고, 취업 차 제주읍에 7촌 할아버지댁에 기거하였다고 합니다. 관덕정 마당에서 집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순경에게 잡혀서 제주읍에서 수감생활하다가 목포 형무소로 옮겼다고 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술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 돌아가신 큰할머니의 모습을 봐왔다고 합니다. 또한 박00님의 친할아버지도 4·3때 무장대에 의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군경과 무장대 양쪽으로부터 모두 가족이 희생당했던 분이었습니다. 아마 모든 도민들이 같은 아픔 속에 있어왔다고 밝히시며 지금이나마 명예회복에 힘써준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진술을 마쳤습니다.

망 하영선님의 조카 하00님은 오랜만에 제주 고향을 방문한 친척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던 삼촌이 불신검문에 의해 끌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70년이 지나 이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지난 세월의 원한을 멈출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며, 특히 제민일보 기자들에게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죄판결을 받은 유족들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남기셨습니다.

망 이동천님의 아들 이00님은 제주 영평에서 소, 말, 돼지 등 다양한 가축을 키울 정도로 유복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4·3이 터졌고, 어느 날 가족들이 짐을 전부 꺼내어 집 근처 감나무 밑에 숨겼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이 모두 화북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아버지와 외삼촌은 마을에 남아 남아있는 재산을 돌보다가 곧 따라 내려가겠다며 먼저 내려가라고 했답니다. 화북에 내려가니 정부에서 몇 가지 질문만 하고 집에 보내준다고 하여 아버지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당시 이00님과 어머니 그리고 동생은 걸어서 제주중학교 바로 앞에 방앗간 같은 기와집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아버지를 만난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가족들 모두 세상을 떠나고 16세에 고아가 되어 살았는데, 사람들이 '폭도 새끼'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고 했습니다. 그간 불철주야 4·3의 진실규명 해주신 분들께 고개 숙여 고맙다는 말씀으로 진술을 마무리했습니다.

유족들의 진술 중에 특별히 언급되었던 제민일보 기자 김종민 제주4·3중앙위원회 위원이 방청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 부장판사는 그에게도 발언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김종민 위원은 "최근에도 20년 전에 취재하며 만났던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며, "제일 저를 기쁘게 하는 것이 유족분들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그분은 고아였다. 4·3 사건 당시 아버지와 형을 모두 잃었다. 10살 미만의 소년들이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뎠는지, 그리고 살아남아서 제주공동체를 복원해 냈다는 것이 기적적인 일이며 그 분들에게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이서 "재심이 빨리 진행되어 이미 80대 고령의 유족들이 무죄선고를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밝혔습니다.

이후 장 부장판사는 오늘 법정에 제주중앙여고 학생들이 방청을 왔으며, 평소 제주4·3에 관심이 있어 시간을 내어 참여한 것으로 안다며, 이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질문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첫 번째 손을 든 학생은 판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 소개한 학생은 "4·3사건이 오래된 일이고, 관련 자료도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무죄 판결할 때 판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라고 물었습니다.
장찬수 부장판사는 "죄를 지었는지에 관한 공소사실에 관해서 여지없이 명백한 증거가 있지 않으면 유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형사소송법의 대 원칙"임을 밝히며, 이러한 대원칙이 생긴 것에 대해서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라며, "법이 어느 한 사람이 가진 자유롤 침해할 수 없다. 그리 4·3사건 당시에도 증거가 거의 없지만, 지금은 증거가 없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어진 두번 째 학생은 "이번 재판을 방청하며 실제 유족의 진술을 들어볼 수 있어서 의미있었다"라는 짧은 소감과 "이번이 제10차 재판인데, 그 동안 가장 신경 써서 살펴보는 부분과, 가장 기억에 남는 희생자 및 유족의 사례가 굼금하다"라고 판사에게 질의했습니다.
장 부장판사는 "이 재판 일반 형사재판과 다르다. 70년 전에 정당한 재판을 받아 유무죄를 받아야 하는데, 이념이라는 잣대로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 당사자뿐 아니라 남아있는 유족들도 희생을 당했다. 본인이 겪는다고 생각하면 남은 생을 온전히 이겨낼 자신이 없을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그 모든 세월을 살아남아 이 자리에 오신 유족분들은 대단하다. 그 한과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드리는 것이 책무고 소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이 재판의 주인공은 희생자의 유족분들이지만, 여러분도 주인공이다. 귀한 시간 내서 오늘 온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개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이러한 불행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책임지고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과거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기억에 나는 사례에 대해서는 "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다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살아내셨을까, 여기까지 오셨을까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 말씀 밖에 못 드리겠다"라고 답변을 마쳤습니다.

세번 째 학생은 합동수행단 검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에 직권재심이 진행된 이유, 직권재심에서 중요한 점, 어려웠던 점 등을 질의했습니다.
합동수행단의 소영 검사는 법개정 등 직권재심이 진행된 사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이어서 변진환 검사가 직권재심에서 중요한 점으로 정확성과 신속성을 들어 설명했습니다. 변 검사는 제주 출신이지만 누구나 마찬가지로 제주4·3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합니다. 그나마 대학교 때 단편소설 '순이삼촌'을 읽으며 관심을 가졌으나 전체적인 배경을 잘 알지 못해 소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재심 업무를 맡은 이후에는 4·3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보고서를 읽으면서 4·3의 배경이나 당시 군사재판의 부당함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검사로서 재심은 극히 소수의 검사들만 경험하는 드문 업무라서 이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여 관련 과거 재판 기록도 찾아보며 재판의 진행과정, 필요한 것들을 파악해 왔다고 했습니다. 이미 70년 전에 정확하지 않은 재판으로 억울하게 희생되신 분들에 대한 재심이기 때문에 더 정확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확인해서 직권재심을 준비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어려운 부분으로는 워낙 예전 자료다보니 이름, 본적 등 오류가 많아 이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또한 무죄판결을 기다리고 계신 많은 유족들이 있기 때문에 신속성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고, 업무가 숙달되면서 6차 직권재심부터 청구인을 30명을 확대했다고 밝혔습니다.

4·3의 광풍에서 살아남아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게 된 4·3희생자 유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또한 이 아픈 역사에 대한 진실규명과 재발을 막기 위해 4·3에 관심을 갖는 후세대의 모습을 함께 마주할 수 있어서 위로가 되는 재판이었습니다 .

[관련기사] "가족사진 보면 기뻐"... 4.3 취재기자가 이렇게 말한 이유

오마이뉴스, [제주4·3 희생자 재심재판 방청후기] 어려운 세월을 살아남아 공동체를 복원한 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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