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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주기를 맞는 섯알오름 예비검속을 기억하며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최상돈 선생님의 안내로, 그 날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70년 주기를 맞는 섯알오름 예비검속을 기억하며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최상돈 선생님의 안내로, 그 날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지난 8월 25일(화)은 음력 7월 7일, 칠월 칠석입니다.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기쁜 날입니다. 하지만 제주4·3에 관해서는 슬픈 날입니다.

70년 전, 음력 7월 7일(양력 1950년 8월 17일)은 모슬포 경찰서 관내 주민 200여 명이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섯알오름 탄약고터에서 해병대 군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날입니다. 한 무리는 한림 어업창고에서, 다른 한 무리는 대정 절간 고구마창고에서 갇혀있다가 섯알오름으로 끌려왔습니다.

한림 어업창고에 수감됐던 주민들이 섯알오름으로 끌려온 새벽 2시.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최상돈 선생님의 안내로, 그 날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한산한 새벽, 대정초등학교에서 20여명이 모였습니다. 출발에 앞서 대정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대한민족해방기념비’ 앞에 잠시 멈춰 섰습니다.

8·15 해방의 기쁨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제강점기 무명교사의 민족교육에 감명 받은 대정공립국민학교 34, 36, 38회 졸업생들이 5년간 헌금을 모아 1950년 건립한 ‘大韓民族解放記念碑(대한민족해방기념비)’입니다. 대한민국이 아닌 ‘민족’으로 표현한 이 비의 규모는 높이 171cm, 전면 폭 56cm, 측면 폭 34cm입니다. 다음은 비문 내용입니다.

“아! 한말에 이르러 왜국이 청국과 노서아를 이긴 뒤 우리 겨레를 강압으로 경술합방의 조약을 맺어 우리의 자주권을 빼앗았다. 그 후 36년간의 굴욕은 일찍이 반만년 역사에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조국 광복을 위하여 항일 운동을 그치지 않고 해내외에서 수많은 의사와 열사의 그 장한 순국과 위국충절은 천추에 빛났다. 그 결과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국에게 일본은 항복하고 우리 민족은 왜놈의 굴레에서 드디어 해방이 되었으니 이 어찌 통쾌하지 아니한가! 우리들은 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 비를 세워 이 민족의 해방을 기념하는 바이다.”

‘대한민족’이라는 표현이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분명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족’이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국(國)이 족(族)으로, 단 한 글자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 비석을 세운 졸업생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에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조선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의도를 짐작해볼 뿐, 쉽게 정리되지 않는 마음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주민들이 죽음을 직감하고 고무신을 내던졌던 신사 동산에 잠시 앉아, 70년 전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주민들이 죽음을 직감하고 고무신을 내던졌던 신사 동산에 잠시 앉아, 70년 전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갇혀있던 절간 고구마창고 옛터에도 잠시 들렀습니다. 지금은 마트로 쓰이고 있습니다. 구금된 가족들에게 옷가지와 먹을 곳을 전해주러 주민들이 오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요.

이 곳과 한림 어업창고에 갇혀있던 주민들은 ‘예비검속’에 의해 희생됐습니다. 예비검속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에 구금할 수 있다”는 당시 제도입니다. 일제가 조선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었던 법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자국민들의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기 위한 법으로 악용된 것이지요. 다시 발길을 돌려 절간 고구마 창고에 갇혀있던 주민들이 해병대 트럭을 타고 섯알오름으로 끌려가는 길목에 있는 신사 동산으로 향했습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얼마 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때만 하더라도 이곳엔 신사(神社)가 있었습니다. 이 길은 일제가 알뜨르 비행장 건설을 준비하며 만들어놓은 도로입니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민들은 이곳에서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서약을 강요받았습니다. 치욕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곳이 제주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죽음을 직감하고 고무신을 내던졌던 그 길에서, 참가자들은 신발을 벗어보기도 했지요. 잠시 그 자리에 앉아 당신들에 대한 기억을 좇아 시와 노래를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섯알오름으로 가는 길, 별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날 새벽,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섯알오름 추모비 앞에서 영령들께 술 한잔을 올렸습니다
섯알오름 추모비 앞에서 영령들께 술 한잔을 올렸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섯알오름에 가까워질수록 별이 가려지고 구름이 짙게 드리웠습니다. 그러다 추모비 앞에 서서 술 한 잔을 올리니 비가 갑자기 쏟아졌습니다. 하늘도 슬피 함께 눈물을 흘리는 듯 했습니다. 죽은 자들의 넋이었을까요.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섯알오름에서 돌아가신 당신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70년 전 칠월칠석날 섯알오름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주세요.

섯알오름 추모비

유적지 <섯알오름>

<섯알오름> 유적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보고 싶으시면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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