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8일~19일,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 기념사업위원회 사업의 일환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4·3 평화기행을 진행했습니다. 1박 2일 동안의 기행에 대한 이야기를 참가자 Todd Cameron Thacker님이 남겨 주었습니다. 아래는 영문 후기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고맙습니다.
외국인 기행 후기 영문 원본 바로가기
지난 주말, 제주 지역 시민사회단체인 제주다크투어가 세계사의 어두운 역사의 한 부분인 제주 4·3 유적지를 소개하는 영어 기행을 이틀 동안 진행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기행이 자신들과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제주 4·3은 한국에서 참을 수 없이 비극적인 시대(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에 일어난 일이고 일제 강점기 이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혼란스러운 시기의 산물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육하는 활동들이 왕성하게 있었다. 수만의 사람들이 당시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세대를 뛰어넘어 상처를 입었다. 어떻게 우리가 이러한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30여 명의 참가자들이 지난 주말 함께 모였다. 대다수는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제주다크투어는 참가자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걸으며 다양한 유적지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영어 통역자도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으며 세부적인 내용들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국에 사는 외국인, 특히 젊은 선생님들이었다. 버스에서 가진 참가자 소개 시간에 사람들은 한국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폭우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기행 내내 흔들림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일차 5월 18일(토)
공항에서 다 같이 만나 버스에 탄 후, 우리는 봉개동에 있는 4·3 평화공원에 가기 전, 점심을 함께했다. 4·3 평화공원은 기행을 시작하기에 완벽한 곳이었다. 평화공원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제주를 평화와 인권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4·3의 역사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다음에 들린 곳은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목시물굴이었다. 깊은 숲 속에 있는 동굴이다. 이 곳은 마을 주민들이 당시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숨기 위해 찾은 작은 동굴 중 하나다. 그렇지만 동굴에 숨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다수는 토벌대에 의해 발견되었고 학살 당했다. 이 동굴들 중 몇몇은 학살지가 되었다.
제주 북쪽 해안가에 북촌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북촌은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5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근처 학교에 불려나와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기념관에 가서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짧은 영상을 보고 학살 당일 부모님들과 함께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무덤이 있는 곳도 방문했다.
기행에 참가한 몇몇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비가 쏟아졌던 그 날 날씨가 무거운 마음을 더했다.
2일차. 5월 19일(일)
둘째날 기행은 제주섬의 남서쪽에 위치한 섯알오름에서 시작했다.
한국 전쟁이 한반도 전역에 혼란을 가중시켰을 1950년, 군은 "예비검속"을 실시했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사법적 처형이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4·3 기간이었던 1950년 어느 날, 한림, 한경, 대정, 그리고 안덕 지역 주민 374명이 군인들에 의해 트럭에 실려 섯알오름에 끌려왔다. 직관적으로 죽음을 감지한 주민들은 가족들이 시신이라도 찾으러 올 수 있게 트럭 뒤로 신발을 떨어뜨렸다.
이 곳에는 가슴 아픈 두 개의 구덩이가 있다. 우리가 방문한 많은 유적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며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섯알오름을 방문한 후 우리는 근처 동알오름에 있는 일제 강점기 고사포 진지를 찾았다.
이 고사포 진지는 1943년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졌으며 근처에 있는 알뜨르 비행장을 지원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 곳에서 일본은 태평양 전쟁(1937~1945) 당시 중국 본토를 공습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사령부, 화약고, 어뢰고, 연료 보급소, 부대, 격갑고, 그리고 통신소로도 활용되었다. 오늘날 이 곳은 역사 교육의 귀종한 자원으로 남아있다.
진지동굴 내부에서 해설사는 우리에게 손전등을 모두 꺼달라고 요청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침묵 속에서 희생된 분들을 떠올렸다. 기행 중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우리는 근처에 위치한 백조일손지지를 찾았다. 당시 군은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유해를 유가족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6년이 지난 후에야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는데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 공동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백조일손지지는 "132명의 조상들의 유해가 함께 묻혀있으니 후손들은 한 가족이 되었다"는 곳이다.
기행이 마무리되는 일요일 오후가 되자 하늘이 조름 맑아졌다. 우리는 제주 섬의 북쪽에 위치한 한림읍 월령으로 향했다. 이 곳에서는 4·3 당시 희생자의 집을 방문할 수 있다.
1949년 1월, 35살이었던 진아영 님은 경찰이 쏜 총에 턱을 맞았다. 주변 이웃들에게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져 있던 진아영 할머니는 이 집에서 평생을 살다가 2004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는 할머니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은 그 곳에 있는 티비에서 나오는 영상을 통해 할머니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