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평화기행
민변과 함께하는 제주 4·3 평화기행 2일차에는 4·3유적지와, 일제시대 강제동원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는 제주 남서부, 대정에서 시작했습니다. 2일차 해설은 김남훈 제주다크투어 운영위원이 해주셨습니다. 일제시대 때 제주 사람들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간 이야기, 해방 이후 일본에서 새로운 사상들을 접했던 사람들이 대거 제주로 돌아온 이야기 등 4·3이 일어나기 전 배경부터 자세한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둘째날 방문한 섯알오름 학살터는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4·3유적지로 약 150명이 사살된 집단학살터입니다. 4·3 유적지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 예비검속 유적지라고도 볼 수 있지요. 육지에 보도연맹 사건이 있다면 제주에는 예비검속이 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 당국에서는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했습니다. 이때 제주지구 계엄당국에서도 820명의 주민을 검속했습니다. 당시 모슬포 경찰서 관내 한림·한경·대정·안덕 등지에서도 374명이 검속됐는데, 이들 중 약 150명을 대정읍 상모리 절간 고구마 창고에 수감하였다가 1950년 8월 20일 새벽 4~5시경 집단학살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고 트럭에 올라 섯알오름에 끌려가던 사람들은 곧 자신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 몰래 트럭 뒤에 고무신을 버립니다. 자신들이 죽은 후, 가족들이 그 흔적을 보고 자신의 시체라도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겠지요. 그렇지만 가족들은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6년 여가 지나서야 시체들을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섯알오름을 지나 뒤편으로 넘어가면 동알오름이 나옵니다. 동알오름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바다와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4·3 기행 코스입니다.
동알오름으로 가다보면 일제시대 고사포진지가 나옵니다. 요즘 이야기하는 사드같은 걸까요. 큰 구멍 가운데 포를 장착하고 그 위를 지나가는 전투기 등을 쏘아 맞추는 장치입니다. 4·3 유적지라기 보다는 일제시대 잔재인데, 일제시대 때 제주도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는지 잘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오름 곳곳에 이런 일제 시대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제주가 폭격당했더라면 지금의 아름다운 제주는 볼 수 남아있지 않겠지요. 대신, 오키나와가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제 고사포진지 앞에서 2차 세계대전 때 희생당한 오키나와 주민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동알오름을 내려오면 한 구석에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진지동굴이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진지동굴이 정말 많이 있어요. 성산포에도, 관음사 근처에도, 동알오름에도, 제주 곳곳에 그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동알오름의 이 진지동굴은 현재 들어갈 수 없어요. 동굴이 무너질까 보수 공사 중입니다. 대신 앞에서 김남훈 운영위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몇 년 전 동굴에 들어가보신 김남훈 운영위원의 말에 따르면 실제 안에는 벙커처럼 장교들이 쓸 수 있는 방도 있고 곳곳이 미로처럼 되어있지만 체계적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점심을 먹고 발길을 돌려 섯알오름에서 학살되신 분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백조일손지지에 들렀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섯알오름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시체를 가족들은 6년여가 지나서야 찾을 수 있었고, 당연히 그 긴 시간 동안 시체 위에 눈이 쌓이고 비가 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유족들은 뼈를 하나 하나 수습해 맞췄습니다. 머리뼈를 놓고 그 아래 가슴 뼈를 놓고 팔 다리를 맞췄습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머리에 다른 사람의 가슴뼈가, 또 다른 사람의 다리뼈가 놓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약 130여구의 시신을 모아 이 곳에 묘역을 마련했습니다.
백조일손지지. "조상은 백 명 이지만 하나의 자손이다"라는 뜻입니다. 과거사를, 4·3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비록 우리의 직계 조상은 아니지만, 하나의 자손이라는 마음으로 과거를 잊지않고 기억해나가는 마음 말입니다.
제주도에서는 4.19 혁명 이후 4·3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이어진 군사쿠데타, 군사정권 등으로 인해 다시 4·3 진상규명은 탄압받게 됩니다. 어렵게 백조일손지묘 묘비를 만들었지만, 5.16 군사정권 때 4·3 진상규명에 대한 탄압의 일환으로 묘비는 파괴됩니다. 그 조각들을 모아 무덤 앞에 전시해 놓았습니다.
백조일손지지 앞에서 민변 회원들은 참배를 올렸습니다. 참석하신 분들 중에는 백조일손지지 후손들의 명예회복 소송을 담당해 승리로 이끄신 변호사님들도 계셨습니다. 백조일손지묘를 바라보는 감회가 누구보다도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백조일손지지 앞에는 위령탑이 있지요. 제주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4·3 위령탑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4·3 위령탑에는 태극기가 있습니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4·3 희생자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위령탑에 있는 태극기.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백조일손지지에서 참배를 마친 후 4·3 후유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진아영할머니 삶터를 방문했습니다. 진아영 할머니는 4.3 당시 한경면 판포리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턱을 잃었습니다. 항상 턱에 무명천을 두르고 다녀 ‘무명천 할머니’라고도 불렸습니다.
4·3의 아픔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할머니의 삶은 일제, 해방정국, 4·3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2004년 9월 8일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이 곳에는 할머니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생전의 모습들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는 지난 10년 간, 제주 시민사회단체들의 힘으로 보존하고 지켜낸 공간입니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는 아름다운 월령리 바닷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바다 위 멋진 석양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움 만큼이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제주와 함께 한1박 2일 일정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너무 좋은 여행이었어요. 화이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다크투어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알차게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제주의 역사와 현재를 모두 보여주시는 점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잘 모르던 곳을 방문하게 해주어서 감동했습니다."
"제주 4·3을 기억하고, 평화의 목소리를 내는데 동참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기행을 마친 후 민변 회원님들이 남겨주신 후기입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지켜나가는 길, 계속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