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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 제주는 왜 평화의 섬으로 불릴까. 많은 사람이 찾는 천혜의 비경들이 있어서일까, 갖가지 음식들로 찾는 이들의 입을 행복하게 해서일까. 아니면 여러 연인에게 봄임을 알리는 유채꽃과, 따가운 더위마저 잊게 만드는 수국이 핫스폿을 만들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울긋불긋 단풍 부럽지 않은 가을 핑크뮬리와, 겨울임을 알리는 동백꽃의 진 붉은색이 많은 관광객을 모집해서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평화의 섬으로 불리기까지는 제주도민의 많은 희생과, 희생에 따른 상상도 못 할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스토리를 듣기 시작하면 완독하기 전에 듣기를 포기하던지, 완독하고 분노를 못 참던지 둘 중 하나다.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을 상대로 그렇게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제주는 해방의 기쁨도 잠시였다. 1947년부터 1952년까지 제주에서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제가 저질렀던 고문만큼이나 혹독한 고문이 자행됐다. 전쟁 속에서 적군에게 나라를 빼앗긴 국가에서나 일어날법한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을 질러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놀랍게도 이런 일들을 했던 주체는 정부였고 그 명령을 따른 경찰과 군인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목적을 달성하려 주민 3만여 명이 희생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일제 강점기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량 학살과 마을 방화는, 이게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일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며 우리 땅, 아름다운 제주에서 7년 7개월 동안 일어났다.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4·3은 아직 진행 중인지 모른다. 보상과 배상을 떠나 가해자의 처벌이나 책임자의 처벌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죽어 없어져 이제는 처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심지어 가해자와 책임자는 처벌은커녕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반면 피해자는 시신 수습조차 못 하고 시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에 누가 말했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 죄가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럼 4·3은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왜 죗값을 받지 않는 것인가.

제주 관문인 제주공항, 서귀포의 명물인 정방폭포, 제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성산일출봉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본격적으로 제주 관광을 다니기 전 그곳들은 모두 학살터였다. 당시 서귀포 앞바다에는 시신들이 둥둥 떠 있었을 것이다. 성산일출봉 들어가는 길목인 터진목에서는, 피로 물들인 붉은 모래사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에는 두 번의 유골 발굴을 끝으로 중지된 지금도, 수많은 유골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잊히고, 관심사가 달라 그 이야기들이 궁금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슬픈 역사도,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다. 아름다운 제주이기 전 한때 비극의 제주였던 4·3을 알고 다니면, 제주 어느 곳이든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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