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6일, 정의기억연대, 평화나비, 햇살사회복지회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다크투어가 주관하는 4·3 평화기행에 함께 했습니다. 기행에 참가하신 황선진님께서 기행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제주 4.3 다크 투어를 다녀왔다. 제주도에는 처음으로 가본 것이었는데, 그 처음이 역사 기행이라서 더 의미 있었다. 제주 4.3에 대해서는 평화나비에서 잠깐씩 배운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단발적으로 배운 것이었기 때문에 기행 전까지는 그 사건의 깊이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 기행을 통해 제주 4.3이 얼마나 큰 국가 폭력이었는지,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제주에 어떤 상처가 남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기행에서는 첫 날 제주 4.3 평화공원과 너븐숭이 4.3 기념관, 그리고 북촌리 진지동굴에, 둘째 날에 큰넓궤, 진아영 할머니 삶터, 제주도청 천막촌에 다녀왔다. 제주 4.3 평화공원에 있는 전시관이 본격적인 기행의 시작이었는데, 전시관을 통해서 제주 4.3의 흐름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전시관의 내용 중에는 제주 4.3 당시 제주 자치를 이끌었던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건국 5칙이 있었다. 5가지에는 기업가와 노동자, 지주와 농민, 남성과 여성 등 어떻게 보면 평등에 관해서는 이분법적으로 대치될 수 있는 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는 내용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며 당시의 사람들은 그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을 뿐이었을 텐데, 어째서 “빨갱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분노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전시관을 관람한 후에는 평화공원에 있는 끝없는 위령비들을 보았다. 위령비에 적힌 이름들을 보며 죄 없이 죽은 영령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제주 4.3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는 제주 4.3의 피해 생존자이신 고완순님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고완순님께서 해주신 많은 말씀 중에 “군인은 자국민을 보호하라고 있는 존재인데, 당시에는 오히려 자국민을 죽였다.”라는 말씀이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과연 현대의 공권력은 자국민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지금도 인권과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을 매도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았다. 또한 현재 열심히 활동 중이신 고완순님을 보며 똑같이 힘차게 활동 중이신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님들이 떠올랐다. 피해 생존자로서 자신을 내세우며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에 갔던 북촌리 진지 동굴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곳은 탄약 저장, 자살 공격 감행 등을 위해 지어진 곳이었다. 다음날에 보았던 큰넓궤 또한 동굴이었는데, 그곳은 제주 4.3 당시 주민들이 초토화 작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은신 생활을 했던 곳이었다. 두 가지 동굴에는 전쟁 속에서의 특공 작전, 그리고 생존을 위한 거주지라는 차이가 있었다. 동굴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공간이었지만 그 쓰임새에는 큰 차이가 있었기에 괴리감을 느끼면서,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두 공간 모두 무자비한 폭력 속에 놓여있던 곳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폭력의 역사가 조금 다른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에서는 제주 4.3의 피해 생존자이셨으며,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가셨던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할머니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남은 목숨을 원망하며 살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 4.3으로 인해 개인의 삶이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청 천막촌에서는 제주 제2공항 반대 집회를 하는 사람들의 천막들이 모여있었다. 제주 4.3을 배운 이후 현재에도 전쟁의 위협, 폭력의 위협 속에 놓여있는 제주를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청정제주는 거짓말이다’라고 적혀있는 현수막을 보며 제2공항이 가져올 피해들을 외치는 사람들의 말을 외면하고, ‘청정제주’를 앞세우는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제주를 “평화의 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과연 정말 제주가 평화로운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제주 4.3부터 현재의 제주 제2공항까지, 제주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고 그 역사는 현재 진행 중에 있다. 때문에 제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평화롭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그곳의 역사를 직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제주 4.3을 말할 때 화해와 치유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들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첫 번째이며, 제주 제2공항을 말할 때는 그로 인해 가까워질 전쟁의 위험에 대해서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어야만 제주, 그리고 더 나아가 한반도가 평화로운 섬, 평화로운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