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제주다크투어 월간 일일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19로 2년이나 중단되어 있던 프로그램이라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었는데요, 제주다크투어 후원회원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도 찾아주셨습니다.
이날 월간 일일기행은 1949년 6월 7일 전사한 이덕구 사령관을 기억하고자 <이덕구의 흔적을 걷다>라는 주제로 기획되었습니다. 제주4·3의 탄압에 맞서서 싸운 사람들, 불의에 저항했던 장두(狀頭)의 역사를 마음에 새기며, 이덕구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정이었습니다. 김경훈 시인의 해설을 들으며 이덕구 사령관의 일생과 족적을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이덕구는 제주4·3 당시 김달삼을 이어 인민유격대 2대 사령관으로 활약했습니다. 4·3 발발 당시 조천중학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한라산에 입산, 인민유격대를 이끌며 제주읍, 조천읍, 구좌읍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1949년 6월 7일, 경찰과 교전하다 전사했습니다. 이덕구의 시신은 가슴께 주머니에 숟가락을 꽂아 놓고서는 관덕정 앞에 내걸렸습니다. 이것은 현기영 소설가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라는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덕구의 흔적을 걷다> 월간 일일기행 일정
관덕정 출발(차량으로 이동) → 이덕구 생가터 → 조천중학원 옛터 → 이덕구 가족묘 → 이덕구 산전 → 관덕정
관덕정에 모인 일행은 이덕구 사령관의 생가 터가 있는 조천읍 신촌리로 이동했습니다. 신촌리는 이덕구 사령관의 일가가 살았던 곳입니다. 현재는 터만 남아 있습니다. 이덕구 본인의 집터를 비롯해 이호구(큰형), 이좌구(작은형) 선생 등 바로 근처의 있는 형제들의 집터도 함께 가보았습니다. 바로 옆에 포구와 용천수를 끼고 있는 집터를 보며 소년 이덕구의 성장기는 어땠을지 상상해보고며, '이덕구든 저덕구든' 시 낭송도 진행했습니다.
정부나 국가라는 것이
좀스럽지 않고
크고 넓게 바라본다면
제주4·3의 이덕구라는 사람도
충분히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속 좁게만 따지고 들면
이덕구든 저덕구든 언제까지나
뒤안길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새는 죄우익 두 날개로 날아간다
한쪽 날개로는 뱅뱅 그 자리만 헛돌 뿐이다
땅덩이는 작아도 대인 같은 기개
고구려의 기상이 살아나지 않는 한
쫌생이 역사만 반복될 것이다- '이덕구든 저덕구든' - 김경훈
다음으로는 이덕구가 교사로 있었던 조천중학원 옛터를 방문했습니다. 조천중학원은 4·3이 한창일 당시 전소되어 현재는 제주시 동부보건소 조천보건지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이덕구는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체육을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는 소탈하고 열정적이며, 유머가 풍부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행은 놀이패 한라산의 '조천중학원' 마당극 일부를 재연해보면서 선생님 이덕구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봤습니다.
이덕구 가족묘도 방문했습니다. 잠시 묵념을 올리고 묘비에 적힌 비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알지 못했던 이덕구 사령관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폭도'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몰살을 당한 이덕구 가족과 형제들의 죽음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덕구 산전으로 향했습니다. 사려니 숲길 안쪽 포장도로를 한참 걸어들어가다보면 조릿대 사이로 '시안모루', 혹은 '북받친밭'으로 향하는 갈림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은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온 피난민들이 움막을 짓고 모여살았던 곳으로, 이덕구 부대가 잠시 주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 일대를 '이덕구 산전'이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당시 움막을 지었던 터와 음식을 차리는데 사용했던 깨진 솥과 식기들이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간단한 제를 올리며 이덕구 사령관과 함께 희생된 분들을 기억하였습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버린 것이
억울한 것이다!- 정유년 6월 목시
이덕구 사령관을 비롯한 인민유격대의 봉기는 새 세상을 열망했던 민중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꿈꾸다 쓰러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곳 산전의 흔적처럼 그 시절 그대로 시간이 멈춘 채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이덕구 산전 옆에 쓰여진 짧은 시가 4·3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제주4·3으로부터 74년이 지났습니다. 왜곡된 기록을 바로잡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4·3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주4·3특별법」이 정하는 국민화합, 그리고 진정한 화해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선 예외없는 희생자 인정, 그리고 피해회복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2년만에 돌아온 월간 일일기행이라 조금 부족했지만, 앞으로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혼자 오시는 분도, 친구와 함께 오시는 분들께 제주다크투어가 여는 월간 일일기행에 초대합니다. 제주4·3이 궁금한 시민과 함께 하는 평화기행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