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과 31일, 역사디자인연구소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다크투어가 주관하는 4·3평화기행에 함께 했습니다. 이번 기행에 참가하신 김진선님께서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전원 마스크를 쓰고 물리적 거리를 지키며 안전하게 여행했습니다.
‘제주 4·3 사건’이란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생존자분들의 총상을 드러낸 사진 기록들,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게 되는 괴롭고 슬픈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사건의 맥락은 사실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아마 감정적인 메시지들이 강렬하고, 오래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초기 활동가분들이 애를 쓰신 덕분에 그 정도라도 제 기억 한켠에 담겨 있었던 거겠지요.
그래서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백가윤 대표님의 사건 개괄 강의를 듣고 기행을 시작했습니다. 4·3 사건 자체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얽히고설킨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존재했습니다. 육지에 의한 수탈, 차별, 이념 차이로 시작된 갈등, 투쟁과 고문, 학살, 진상규명의 방해와 음해. 몇십년 간 이어진 학살로 인해, 현재 등록된 피해자들만 1만 4천 명이지만 실제 돌아가신 분들은약 3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고요.
기행 참가자 중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시는 선생님께서 지나가듯 ‘제주도에서는 마치 대만인들처럼 일제강점기에 대해 육지 사람들만큼 비판적이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건 그 기억을 전승해줄 중간 세대가 다 4·3사건으로 인해 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에 더해, 어차피 차별하고 수탈해가는 것은 일본이나 조선이나 비슷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도 역시 4·3사건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잔인한 일이 벌어져서, 많은 사람이 죽어서, 너무 슬픈 일이라서 과거사가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소해 보이는 차별, 혐오, 국가권력의 억압은 어느 날 불길을 만나기만 하면 4·3 사건과 같이 타오를 기름과 같은 것입니다. 여전히 국가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제2공항 공항건설과 같은 갈등이 생겨날 때 강자의 논리로 제주 도민을 억압하려 하고 있습니다. 4·3사건을 겪은 제주도 분들 만큼 공포와 트라우마를 느끼지는 않겠지만 육지에서도 ‘빨갱이’라는 단어는 상대를 비난할 때 자주 소환됩니다. 바로 지난 정권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려 시위에 참가한 분이 물대포로 인해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겪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알고 기억해야 합니다.
백가윤 대표님이 설명해주신 내용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제주도를 화해⸱상생의 상징으로 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진실, 정의, 배⸱보상, 재발 방지, 기억 이렇게 다섯 항목에 맞춰 4·3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아직 진실의 단계도 넘어서지 못한 것 같다고요.
실제로 기행이 끝난 뒤 개인적인 이동을 위해 택시를 탔을 때, 48년생이시라는 기사분께서 거듭 강조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폭도들도 같이 4·3 피해자라고 인정받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는 억울하지.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아요.’ ‘해결하려면 기억하는 분들이 남아 있을 때 하루빨리 낱낱이 밝혀야 할까요?’라는 저의 질문에는 ‘그렇게 해서 뭐해요. 같은 동네에 같이 살아갈 사람들인데, 얼굴 붉혀서 뭐해…….’라며 말을 흐리셨습니다.
이 기사분께서도 아마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커다란 역사적 흐름에 휘말린 개개인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정말 반성하고 사죄해야 할 주체는 국가권력이라는 것을. 상처 입은 사람들을 서로 분열시키고 싸우게 만든 국가의 책임임을 말입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북촌리 원혼 위령비 등 위령비 위에 태극기가 장식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설명해주시던 백가윤 대표님처럼 저도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왜 여기에 국가의 상징을 달아놓았는지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나라’에게 ‘빨갱이=죄인’이라 호명되어 가슴을 앓아온 한 생존 수형인분이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이제는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개인을 죄인과 폭도로 만들었다가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국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조일손지묘에는 한차례 세웠던 비석을 군사정권 때 부숴버린 것도 그대로 전시해두고 있었습니다. 이념에 따라 우리를 죽였다 살렸다 할 수 있는 국가를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그 힘을 올바로 쓰게 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인 우리가 끊임없이 감시하고, 계속 옳은 길을 고민하며 싸워나가야만 합니다.
계속해서 평화와 인권을 고민하며 진실과 정의, 기억을 위해 연대하고 있는 제주다크투어와 함께 4·3 기행을 진행할 수 있어서 정말 유익했습니다. 백가윤 대표님과 신동원 팀장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4·3 당시 사람들이 숨어있던 굴에도 들어가 보고, 생존자인 홍춘호 할머니의 증언도 들어보는 등 하나하나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저 혼자 찾아왔으면 진아영 할머니 생가에도 못 들어가 보았겠지요. (비디오로 진아영 할머니 생전 모습을 보고 있던 우리 일행을 바깥에서 부러운 듯 구경하다 떠나시던 커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낮에 한 번 들러본 것이 전부지만 음력 칠월칠석 절간고구마창고부터 섯알오름까지 걸어가는 희생자들을 위한 순례에도 꼭 참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4·3을 넘고 국경을 넘어 아시아 과거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하고 싶다는 제주다크투어의 미션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며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