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과 24일, 순천YMCA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다크투어가 주관하는 4·3 평화기행에 함께 했습니다. 순천은 여순항쟁이 일어난 지역으로 제주4·3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지요. 그렇기에 순천 분들과의 이번 기행이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기행 후기는 순천YMCA의 김근영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전원 마스크를 쓰고 물리적 거리를 지키며 안전하게 여행했습니다.
저는 제주도를 참 좋아합니다. 바다를 보며 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이 훤히 비치는 제주도 바다를 보면 제 마음도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 같습니다. 낮은 돌담을 따라 총총 길을 걸으면 휘파람새가 휘-잇 노래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할매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들리는 제주도 사투리도 좋았고요,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이 편안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그동안 제주를 여행하면서 4·3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다크투어 기행을 하면서 제주가 또 다르게 다가왔어요. 늘 제게 충전의 시간을 줬던 제주의 길목 길목이 사실 4·3의 현장이었던 거죠.
첫 행선지는 제주4·3평화공원이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위패봉안소를 실제로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다 함께 묵념하고 들어간 곳엔 4·3항쟁 희생자들의 위패가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수수 죽어갔다는 것을 눈으로 보니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일었습니다. 특히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해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을 위한 많은 표석들을 보며 갑자기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운 좋게 유골을 찾게 되면 표석 옆에 작게 푯말을 세워놓는다고 하는데, 푯말들을 찾기 어려워서 또 한 번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넋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백가윤 선생님으로부터 4·3의 전반적인 설명을 듣기 위해 근처에 있는 세월호 제주기억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4·3 평화기념관이 잠시 문을 닫았거든요. 혼자 공부할 때보다 당시의 배경과 상황들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건국 5칙’이었는데, 어제 세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혀 낡은 느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구호가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라는 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가 제주를 대신해 폭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는 제주와 군사기지뿐만 아니라 제주처럼 화장실에 돼지를 키우는 등 문화적으로도 많이 닮았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오키나와 평화기행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시청에서부터 제주항까지 걸으면서 4·3을 느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이 조금 야속하긴 했지만, 제주 골목 어귀를 이렇게 다녀본 것은 또 처음이라 새로웠습니다. 기록으로 남기려고 사진을 찍다 보니 조금 뒤처졌는데, 그때 만난 할아버지께서 어디서 왔냐고 여쭤보셨습니다. 전라도 순천에서 제주4·3 공부하러 왔다고 하시니, 대번에 4·3과 함께 여순항쟁을 이야기하시면서 많이 공부하고 가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로 여순을 이야기해주시니 너무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길에서 만난 누구라도 오늘처럼 제주와 여순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4·3은 동백꽃과 함께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그 내용은 아직도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제주에 와서 4·3을 주제로 기행을 다녀본 적은 없었는데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다니느냐에 따라 그 공간이 정말 다양하게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짧았지만 새롭게 느낀 것들이 많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느리게, 풍부하게 4·3을 기억하고 싶어요. 그리고 YMCA와 함께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순간의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풀어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