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동백꽃의 노래'를 만든 가수 최상돈과 함께 제주시내 다크투어를 진행했습니다. 일요일 오전, 삼삼오오 참가자 분들이 제주시청 앞에 모였어요. 기타 하나 둘러메고 옛 사진들을 들고 제주시내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시청을 지나 신산공원으로 걸어갑니다. 신산공원에는 6.25 참전탑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제주 사람들을 기리는 탑입니다. 신산공원을 벗어나 역사를 만나러 가려면 산지천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신산공원에서 조금 걸어가면 삼성초등학교가 나옵니다. 과거에 광양벌이라고도 불렸던 곳이지요. 4.3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주농업학교 인근입니다. 몇 발짝 더 가면 벚꽃길로 유명한 전농로가 나옵니다. 전농로는 제주농업학교가 있었던 곳이지요. 제주농업학교 터를 조금만 돌아보면 당시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9연대가 주둔하던 시기, 검은 천막들이 있던 운동장은 이제 주택 단지로 바뀌었습니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면 3.1절 기념행사의 함성이 울러퍼진 북초등학교에 도착합니다. 잠시 운동장에 모여 앉아 그날의 함성을 떠올려 봅니다. 최상돈 선생님이 기타를 꺼내 노래를 시작합니다. 북초등학교 교가는 '백두산'으로 시작합니다. 해방 이후, 또는 분단 이후 설립된 제주도 교가들이 대부분 '한라산'만 들어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됩니다.
잠시 횡단보도에 서서 맞은편에 있는 서북청년단 본부 터를 바라봅니다. 매일 거리를 오가며 보았던 건물들이 사뭇 새롭게 보입니다. 서북청년단은 당시 2층을 쓰고 있었는데 1층에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1층에서 제사를 지낼 때 바닥에 구멍을 뚫어 제삿상 위로 오줌을 갈겨댔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바로 옆에는 제주신보사 터가 있습니다. 무장대 관련 삐라들이 인쇄되기도 했고 당시 서북청년단들에게 신무사 경영권이 잠시 빼앗겨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서북청년단 건물 바로 옆이라 서북청년단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괴롭히기도 했던 곳입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옛 조일구락부 건물이 나옵니다. 당시 대부분의 행사가 진행되었던 곳으로 서북청년단도 이 곳에서 발족식을 했고 그에 앞서 건국준비위원회와 민족주의민주전선도 이 곳에서 발족식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극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롤러스케이트장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옛 건물을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제주도정에게 옛 조일구락부 건물을 매입해 역사를 보존하라고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오전 내내 걸었더니 배가 고파옵니다. 발길을 돌려 고기국수 집으로 향합니다. 참가자들이 모여 앉아 오전 기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차만 타고 다녀서는 알지 못하는 숨은 골목길들을 발견하는 매력을 제주시내 다크투어에서 흠뻑 느껴봅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가락샘터로 걸어갑니다. 예전에는 제주 시민들의 빨래터였던 곳. 제주시민들의 생명수였던 이 곳은 개발 광풍에 막혀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였습니다.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사진 속 멀리 보이는 나무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가락샘터에서 최상돈 선생님이 다시 한 번 기타를 꺼내듭니다. 위에 사진에 있는 가락샘터의 물 허벅을 진 소녀의 모습을 보니 선생님의 노래, 애기동백꽃의 노래에 나오는 님 마중 나갔던 이의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마지막 목적지, 주정공장터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49년 초, 귀순공작에 따라 하산한 사람들이 갖혀있던 곳. 이 곳을 떠난 제주도민들은 정뜨르비행장(지금의 제주공항)에서 학살되거나 산지항을 떠나 수장되거나 그도 아니면 육지 형무소로 이송되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 형무소로 보내지기 전, 마지막으로 바라본 제주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주정공장터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제주항입니다. 세월호를 맞이하지 못한 미안함이 가득한 제주항. 그 곳에서 다시 70년 전 제주 민중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해봅니다. 자주독립과 통일을 염원했던70년 전 제주 민중들의 함성이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의 이유, 그리고 그 안에서 아프지만 우리가 찾고 기려야 하는 의미들을 제주 시내 곳곳을 돌아보며 다시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