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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4일~15일, 전교조 인천지부 선생님들께서 제주다크투어와 함께 제주4.3 기행에 참여하셨습니다. "제주도민이 겪었던 4.3 항쟁의 역사와 마음 속 한을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아픔의 역사에서 희망의 출발로", "너무 뜻깊은 기행이었습니다" 라는 후기부터 "계속 제주다크투어를 응원합니다", "제주다크투어 건투를 빕니다!"라는 응원의 메세지까지. 저희도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힘과 용기를 얻은 기행이었습니다 ^^ 참석하신 분들 중 상인천중학교 한현숙 선생님께서 자세히 후기를 써주셨습니다. 허락을 받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① 아프지만 그날의 상처 잊지 않으리

② 억울한 죽음 아닌 의로운 죽음으로

무탈하게 일상으로 돌아와 월요일 출근을 맞이한 것이 감사하기만 하다. 아침에 거울을 보니 두 뺨과 코끝이 빨갛게 익었다. 제주 동백꽃 두 세 송이 내려앉아 있었다. 제주도의 바람이 아득하기만 하다.

바닥으로 떨어진 동백

금요일 저녁 제주행 비행기를 타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지친 일주일의 피곤을 안고도, 출제해야 할 시험문제를 머리에 가득 이고도,가족들과 함께 할 주말 시간을 살짝 미루고도 이 비행기를 타야할 이유에 대해 저마다 가슴에 물음표 하나 찍었을 것이다. 강풍에 밀려 비행기가 착륙을 못 하고 다시 떠오를 때는 불안한 마음에 잠시 잔망한 생각까지 들었다. 재난문자로 강풍주의보를 알리는 제주에서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일요일 저녁 비행기를 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제주 4•3기행'을 다녀오다
그리고 이렇게 다행한 마음으로 지금 ‘제주 4·3 기행’을 돌아보고 있다.

4·3에 아는 것이 느는 만큼 먹먹함과 부끄러움이 커져 아팠다. 억울하기 만한 죽음이 아닌 의로운 죽음이 되기 위해 우리는 4·3을 기억하고 배워야한다.상처투성이 제주를 여행의 흥겨움으로만 떠올릴 때가 죄스러웠다. 정의로운 세상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존경스럽고 감사했다. 또한 이들이 있어 든든했다.

오래 전 ‘현기영’의 ‘순이 삼촌’ 한 번 읽고, ‘지슬’ 영화 한 편 보고, 가족들과 우연히 들른 ‘4·3 평화공원’ 1회 방문이 ‘4·3’의 앎 전부인 내가 4·3을 알고자 이 기행에 참여했다. ‘전교조 인천지부 통일위원회 + 2030 위원회’가 주최하는 ‘함께 걷는 제주 4·3기행’ 이라는 70주년 기념행사에 함께한 것이다.

구름이 짙게 낀 4·3평화공원

‘제주 4·3 평화 공원’ 기념관에서 맞이한 아침은 우울하고 침울했다. 강풍주의보가 내렸다는 제주의 하늘은 오늘 방문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듯 근심스러운 구름을 띄어 숙연함을 더했고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 백비(白碑)가 누워있는 공간에서는 우리의 답답함과 한숨을 저 위 뚫린 구멍으로 모두 뿜어내어 ‘화해와 상생’의 맑은 하늘을 그리고 싶었다.

제주4·3평화공원 전시관에 누워있는 백비

제2차 세계대전 말 제주도는 일본군 7만 명이 배치될 정도로 섬 전체가 요새화(해안가 특공기지 설치, 비행장 건설, 거대한 진지 구축 등) 되었고, 여기에 강제로 동원되어 노역과 공출로 엄청난 고초를 겪던 중에 광복을 맞이했다. ‘자주독립국가’를 꿈꿨던 우리의 건국운동이 ‘모스크바 3상회의’(미국+영국+소련) 결정과 맞물려 어떻게 왜곡되고 언론 보도되어 남한에서의 ‘반탁운동’에 불을 지폈는지 격동하는 그 과정을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내용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군정경찰이 군중을 향해 쏜 총탄으로 무고한 희생자 6명이 발생한 ‘3·1절 기념대회’에서 시작되었다.

‘제주 4·3 평화 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오니 제주 ‘이석문 교육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념관 찻집에서 잠시 응원의 인사 말씀을 듣고 자리를 옮겼다. 찻집에 있던 깨끗한 무명 저고리에 동백꽃을 단 ‘순심이’와 ‘몽돌이’도 함께 데리고 나왔다.

제주4.3평화공원 내 카페에서 이뤄진 설명
동백꽃 순심이

‘제주다크투어’의 ‘최상돈’ 해설사님을 따라 ‘위령탑’과 상징조형물 ‘귀천’을 돌아보았다. ‘위령탑’ 멀리 보이는 하늘이, ‘귀천’에 담긴 ‘죽음’의 상징적 표현이 우리의 마음을 다시 엄숙하게 만들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무참히 희생된 안타까운 ‘죽음’들이 전통 ‘수의’로 아프게 표현되었다.

제주4.3평화공원 내 위령탑 귀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 전쟁·학살 등 인류의 죽음이나 슬픔의 비극적 역사적 현장을 돌아보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이라고도 불린다.

추모승화광장에 펄럭이는 만장

‘추모승화광장’의 펄럭이는 ‘만장’들이 비장미를 그리고 ‘위패봉안실’ 위에 앉은 까마귀 한 마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만큼 찹찹해진 마음이 그래도 ‘위패봉안실’ 내부에서 본 ‘대통령’의 조화와 제주 초등학교 아이들이 만든 고운 동백꽃을 보니 조금 가지런해졌다.

행방불명인 표석

‘행방불명인 표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4·3 중에 체포되어 육지 각 형무소에 수감된 후 끝내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의 추모공간이다. ‘경인지역 554기’라는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먼 낯선 타향에서 보고픈 가족들에게 보내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편지 글자들이 물기 머금은 채로 가슴에 더 아프게 들어왔다.

변병생 모녀 청동조각상

자리를 옮겨 마주한 기념 조각 ‘비설’은 충격적이었다. 토벌작전에서 군인들에게 쫓기다 젖먹이 딸을 업은 채 그대로 총에 맞아 희생된 ‘변병생’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청동조각상이다. 진입로 벽에 새겨진 제주 전래 자장가 ‘웡이자랑’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여 백대리석으로 표현한 하얀 눈밭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죽어서도 편히 눕지 못하고 저렇게 구부려져 발견되었으니 그 원통함을 무엇으로 풀 수 있을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이 무심히 아름답기만 했다.

4.3 70주년 해원상생굿

‘4·3 어린이 체험관’에서 ‘4·3 70주년 해원상생큰굿’이 벌어지고 있었다. 역시 화해와 상생을 위한 몸짓이었다. 끊임없이 호명되는 희생자의 이름들이 부디 원통함을 풀고 의로운 죽음의 이름으로 되불러지기를 함께 기도해 본다.

선흘리 동백동산 내 도틀굴

점심을 먹고 ‘도틀굴’을 방문하기 위해서 ‘선흘곶 동백동산’을 찾았다. 영화 아바타에 나올 법한 곶자왈 길을 따라 올라가니 ‘도틀굴’ 입구가 보였다. 그 좁고 구부러진 곳에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몸을 포개었을 ‘선흘리’ 마을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들을 추모하며 우리들은 바람소리 따라 노래를 불렀다. 여전히 오고 가는 길에 몇 송이 동백꽃이 가지에서, 숲길 바닥에서 빨갛게 드러내며 인사를 건넸다.

불칸낭(불타버린 나무)

‘선흘1리’ 복판에 자리 잡은 ‘불칸낭’(불타버리 나무)은 죽었으나 죽지 않은 4·3처럼 다시 피어나 언제 그랬냐 싶게 상처를 이겨내고, 새로운 생명까지 잉태하며 우람하게 녹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꺼멓게 그슬린 후박나무(또는 팽나무?) 안쪽 속살이 그 때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특한 ‘불칸낭’을 응원하며 우리도 나무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파이팅을 외쳤다

서우봉에서 바라본 함덕 해안

연합군 함정에 대한 일제의 끔찍한 ‘자살공격’을 위해 조성된 ‘진지동굴’로 가는 길은 우리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서우봉 둘레길’에 펼쳐진 하늘하늘한 유채 꽃밭과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죄다 그림 같은 바다 색깔은 도저히 무서움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음대로 흔드는 보리밭까지 합세한 서우봉의 멋짐은 우리 마음을 녹여버려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느라 행복한 웃음으로 잠시 소란스러웠다.

함덕 서우봉 진지동굴 가는 길
조천읍 함덕리 서우봉 진지동굴 가는 길
조천읍 함덕리 진지동굴

이 아름다운 길을 따라 끔찍한 폭력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러 떠나는 그들의 발걸음은 얼마나 참혹하고 슬프고 어리둥절했을지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서모오름’, ‘서모봉’이 일제의 잔재로 ‘서우봉’으로 잘못 불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바로 고치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었다.

북촌리 너븐숭이 기념관 앞에서 기념촬영

4·3 당시 9살이었던 ‘고완순’ 할머니의 증언을 듣기 위해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을 찾았다. 빨간 점퍼의 고운 차림으로 오신 할머니는 올 해 여든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셨다. 노인 회장으로 활동하며 책을 가까이 하고 올바른 삶에 대한 고민과 실천의 이어짐이 젊음의 비결임을 할머니 말씀을 들은 후 알았다. ‘서우봉’을 ‘서모봉’으로 칭하며 그 겨울의 아픔을 꺼내셨다. 끔찍한 그 기억을 더듬는 것이 송구스러웠다. 할머니 말씀을 들으니 기념관에서 보았던 것, 소설로 그려졌던 것이 현실로 살아나 그 끔찍함과 아슬아슬함에 몸이 떨렸다. 감기로 몸이 좋지 않으신 데도 청와대로 보낸 손 편지와 기념식에서 만난 대통령 이야기까지 곁들여 주시니 슬프지만 웃기도 하면서 할머니의 증언 말씀을 들었다. 응원하는 마음 가득으로 할머니께 박수를 쳐 드렸다.

북촌리 옴팡밭 표지

‘너븐숭이’ 기념관 주변에는 ‘순이 삼촌 문학비’와 1949년 1월 ‘북촌 대학살’ 현장의 한 곳인 ‘옴팡밭’이 있다.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는 이 밭 가운데는 그 때 희생된 어린이들의 작은 봉분들이 있는데 봉분마다 놓여있는 장난감, 양말, 아기 옷들이 그 날의 원통함을 더했다.

‘북촌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는 길에 의미심장한 문구를 보았다. 옆의 친구가 먼저 보고 알려준, 교실 창문에 적혀 있는 단어들은 ‘약속, 배려, 정직, 책임, 절제, 공정, 올바른 소유’ 등이었는데, ‘절제, 공정, 올바른 소유’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초등학교에 저런 단어들이 걸려있다니, 저런 교육을 중시하는 학교라면 당연 명문, 명품학교일 터이다. 목숨 바친 시련을 겪어 내고 깨달은 삶의 진수들을 모아 놓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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