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이튿날. 첫 번째 목적지는 조천읍 북촌리의 '너븐숭이 4·3 기념관'이었습니다.
'너븐숭이'이라는 이름은 '넓은 돌밭'이라는 뜻입니다. 북촌 주민들이 일을 하다가 돌아올 때 쉬어가던 넓은 팡(밭)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지요. 또한 이 장소는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을 가져온 북촌리 학살이 일어난 곳 중 한 곳이기 합니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은 그때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기념관 옆에 세워진 위령비 앞에 서서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그날의 비극에 대해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1949년 1월, 군인들은 북촌 주민들을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집합시켰습니다.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인 주민들은 '옴팡밭', 그리고 너븐숭이 일대로 끌려가며 무참하게 학살당했습니다. 500여 명의 북촌 주민들이 남녀노소 상관없이 여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길가를 따라 만들어진 자그마한 무덤들. 아직 이름도 짓지 못했던 아기들을 묻은 '애기무덤'들이 그때의 참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다음으로 일행은 북촌포구 길을 따라 서우봉으로 향했습니다. 저희의 다음 목적지는 서우봉 일제 동굴 진지였습니다.
서우봉과 바다가 맞닿은 해안을 따라 가다 보면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이 자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조성한 동굴 진지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우봉 등사면에 동굴식 갱도 18기와 벙커시설 2기, 총 20여기가 조성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왕(王)자형 동굴 진지는 제주도에 구축된 다른 진지들보다도 더욱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지들을 만드는 데는 당연하게도 제주도민들, 거기에 다른 지방에서 끌려온 사람들까지 동원되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던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의 흔적이 담긴 현장이었습니다.
서우봉을 내려온 뒤, 버스를 타고서 조천읍 선흘리의 '목시물굴'로 향했습니다.
목시물굴은 1948년 11월, 선흘리 일대가 토벌대에 의해 불탄 뒤 선흘리 주민들이 은신한 동굴 중 하나입니다. 입구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그마저도 바위와 나무뿌리에 가려져 언뜻 봐서는 발견하기 힘듭니다. 좁은 입구를 지나가면 제법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4·3 당시 목시물굴에는 200여 명이 넘는 선흘 주민들이 숨어 지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토벌대에게 입구가 발각되었고, 토벌대는 동굴 안에 수류탄을 던져대며 주민들을 끌어내 학살했습니다.
돌아갈 집이 모두 불타버린 선흘리 주민들에게 있어 이 동굴은 살기에는 불편하더라도 그나마 남은 안식처였을 것입니다. 이곳이 순식간에 수백 명이 불타 죽어가는 지옥으로 변했을 때의 참상과 절망감은 차마 상상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그저 동굴 안쪽으로 보이는 암흑처럼 마음이 무거워져만 갈 뿐이었습니다.
저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서 이번 평화기행의 마지막 목적지, 구좌읍 세화리의 '다랑쉬굴'로 향했습니다.
다랑쉬굴은 4·3당시 세화리 근방의 종달리, 하도리에서 도망쳐 온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던 장소입니다. 토벌대는 이 굴을 발견하고 주민들을 끌어내려 했으나 응하지 않자,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어 학살했습니다. 훗날 연구원들에 의해 다랑쉬굴이 발견되었으나 사회의 압력탓에 유해들은 급히 화장되고, 많은 유물이 동굴 안에 남겨진 채로 콘크리트로 입구가 봉쇄되었습니다.
다랑쉬굴의 희생자들은 분명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자입니다. 어두운 지하 속에 40년이 넘도록 묻혀 있다가 겨우 지상으로 나온 분들을, 마치 그분들이 죄인인 것 마냥 쉬쉬하며 다시 어둠속으로 덮어버리려 했던 것입니다. 겨우 찾아낸 가족, 조상님들의 유골을 화장할 수밖에 없었던 유족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랑쉬굴을 마지막으로, 이틀 간의 제주4·3 평화기행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제주도의 산과 바위 아래 숨겨져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국가와 이념이라는 명목 아래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단순히 좋은 체험으로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4·3 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한 국가폭력에 의한 또다른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저희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