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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틀 간 제주다크투어 신입활동가들의 제주4·3 평화기행 첫 동행이 있었습니다. 첫날 기행에 대한 후기를 전합니다.

첫날 첫 기행장소는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직전까지도 일본군이 연합군 상륙에 대비하여 주요 군사시설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비행장 부지, 일제 지하벙커, 19기의 콘크리트 비행기 격납고, 관제탑(급수탑) 등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은 군사시설로 역할하고 있지 않음에도 여전히 국방부에서 관리하고 있고, 일부를 주민들에게 임대하여 밭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군사적 기능을 하지 않는 만큼 이 부지가 평화공원 조성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이곳을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곳을 군사시설로 건설하기 위해 동원되고, 희생된 제주도민들의 아픔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하루빨리 평화공원 등으로 변화하여 제주도민과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알뜨르비행장에서 기행 일행들은 ‘일제 지하 벙커’로 향했습니다. 이곳 지하 벙커는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덤불에 덮인 작은 동산 같은 곳에 시멘트로 단단히 자리 잡은 지하 벙커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당시 연합군에 저항하기 위한 마지막 군사기지로서 제주 거의 모든 해안절벽에 굴을 파고, 지하 벙커와 고사포 진지를 만들었는데, 실제 땅을 파고 나르는 힘든 일은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고, 탄약이나 벙커 제작 등 기술적인 부분은 철저히 일본군이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제주도 대정읍 모슬포 일제 지하벙커 내부 사진. 2022년 2월 11일 제주다크투어가 핸드폰으로 촬영,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하여 제주 전역에 벙커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음.
제주도 대정읍 모슬포 일제 지하벙커 내부 사진. 2022년 2월 11일 제주다크투어가 핸드폰으로 촬영,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하여 제주 전역에 벙커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음.

지하 벙커에서 나와 밭길을 따라 비행기 격납고로 향했습니다. 여기에 숨겨졌던 비행기들은 일본의 자살공격을 위한 '제로센 전투기'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제주 비엔날레를 통해 제로센 전투기를 본떠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 작품 철골에는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의 메세지가 담긴 알록달록한 리본이 가득 달려 전쟁이 아닌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제주도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에 위치, 원래 총 20기의 격납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현재 총19기가 보존되고 있음. 제주비엔날레에 제작된 제로센비행기 모형에 리본이 달려있음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제주도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에 위치, 원래 총 20기의 격납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현재 총19기가 보존되고 있음. 제주비엔날레에 제작된 제로센비행기 모형에 리본이 달려있음

이후 발걸음을 옮겨 섯알오름 쪽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마주한 장소는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였습니다. 기행에 참여한 분들 모두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한 뒤, 섯알오름 학살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섯알오름 학살터는 원래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하여 만든 탄약고가 있던 곳인데, 해방 후 미군에 의해 폭파되었던 곳입니다. 미군정이 시작되고 제주 4·3이 끝날 무렵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제 강점기에 만들었다가 패기한 예비검속을 불법적으로 적용하여 200여명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더욱 참혹한 것은 학살 후 가족들이 시신을 찾아가지 못하도록 막아 6년 후에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유족들이 뜻을 모아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라는 뜻을 담아 '백조일손지묘'를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제주도 대정읍 섯알오름에 위치, 190며이 사살된 집단학살터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제주도 대정읍 섯알오름에 위치, 190며이 사살된 집단학살터

다음으로는 차로 40분을 더 이동하여 한림읍 '진아영 할머니 삶터'를 방문했습니다. 故 진아영 할머니는 제주4·3 당시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턱을 잃은 후유장애인이었습니다. 훼손된 신체부위를 가리기 위해 얼굴을 무명천으로 감싸고 살아오셨기 때문에 '무명천 할머니'로 불리기도 합니다. 진 할머니의 삶터는 시민단체가 모여 '진아영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구성하여 생가터를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방문해보니 진할머니가 생전에 사용하셨던 단출한 살림살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머물던 작은 방에 들어가 진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진아영 할머니께서 겪은 어려움은 신체적인 것 외에도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컸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고, 장애인을 돕거나 지원하는 사회정책도 많이 늘어났지만 진 할머니가 제주4·3 이후 견뎌온 세월 동안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데다가 장애로 인한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혐오가 얼마나 많았고, 지속되었을까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 이날 기행의 해설을 맡은 제주다크투어 대표가 진할머니에 대해 설명하고 있음. 한림읍에 위치하고 있음.
진아영 할머니 삶터, 이날 기행의 해설을 맡은 제주다크투어 대표가 진할머니에 대해 설명하고 있음. 한림읍에 위치하고 있음.

첫날 기행을 마치며, 누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죽음과 슬픔으로 만들었는지 원망 섞인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노를 잘 쌓아 제주다크투어가 꼭 해야 할 일들을 더욱 성실히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제주다크투어와 함께 할 기행 속에서 만날 과거, 진실 그리고 미래를 향햔 깨우침을 기대하며 첫 후기를 마칩니다.

둘째날 기행 후기도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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