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크투어가 진행하는 월간 일일기행에 참여했다. 4월 기행은 "김경훈 시인과 조천이우다"였다. 제주 4.3사건과 근현대사를 다룬 현기영 작가의 <제주도우다>의 배경이 된 조천리를 걸으며 작품 속 흔적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이다. 조천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조천지서 옛터, 조천중학원 옛터, (조천 만세동산), 조천 야학당, 조천리 집단수용소 옛터(정미소 자리) 등을 거쳐 조천 연대에서 마무리되는 투어이다. 특히 이곳 출신인 김경훈 시인이 진행하여 실제 조천리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현장에서 <제주도우다>의 소설 속 한 장면들을 읽어보는 귀한 시간도 가졌다.
토요일 한적한 조천읍 사무소에는 10여 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가까운 제주 시내에서부터 멀리 서울에서 온 분, 방송작가, 책방지기, 문화해설사 등을 포함해 다양한 분들이 모였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가운데, 프로그램은 100여 년이 훌쩍 넘은 조천초등학교(당시 조천공립국민학교)를 바라보며 시작되었다.
우리가 서 있는 조천읍사무소에는 “민족의 자존 조천”이라고 쓰여 있었다. 조천만세동산까지 포함해 조천에는 3.1운동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또한 민족해방투쟁의 본산이었던 만큼 독립투사들도 많고 그 정신이 내려오고 있는 곳이 조천리였다. 그 정신이 있었기에 4.3의 정신이 있는 게 아닌가 했다.
“역사는 단절되어 있지 않다. 계속 이어지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조천에는 3.1운동의 정신과 함께 4.3의 정신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3.1운동은 3.1운동이고, 4.3은 4.3이지.’라며 구분하신다고 했다. 그만큼 4.3은 아직은 주민 어르신들에게 숨기고 싶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역사라고 말이다. 4.3의 상처를 생각하면, 4.3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저녁때가 되자 마을 사람들이 학교 운동장에 가득 모여들었다. … 시신을 안치한 관은 조회대 앞에 놓였다. … 어둠 속에서 횃불들이 펄럭거렸다. … 누군가 일제 때 부르던 추도가를 불렀다.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우지마라 몸은 비록 죽었으나 독립정신 살아있다.” 쿵쿵쿵, 북소리가 크게 울렸다. … 왓샤! 왓샤! 왓샤! 조회대 위에서 김영환이 다시 외쳤다. “지축을 울려라! 우리의 행진을 저들은 두려워한다!”
<제주도우다>, 1권 65~70쪽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소설 속 한 대목을 읽는 가운데 김경훈 시인이 불러 준 추도가는 빗속에서 더 비장하고 애잔하게 들려왔다.
다음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김씨 일가가 살았던 동네를 살펴보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회화나무도 보고,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김명식 선생의 생가 자리도 보았다. 조천중학원 옛터를 찾아가 표지석이 서 있는 곳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조천중학원 옛터와 조천지서가 마주 보고 있었다. (지금은 조천보건소와 조천파출소가 마주하고 있다.)
조천지서 옛터는 조천중학원 김용철 학생이 고문받다가 사망한 곳이고, 그 앞밭은 1949년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조천면 내 관내 주민들이 학살당한 곳이다. 또 조천중학원 옛터는 4.3 사건이 일어나기 전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망한 김용철 학생이 다니던 학교라고 설명해 주었다. 근처에는 옛 조천극장 자리가 있는데, 마을 주민들이 학살당한 곳으로 죽음의 기운이 아직도 느껴지는 장소라고 한다.
비는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바람이 강한 조천포구로 내려갔다. 야학당과 비석거리에 서서 소설 속 장소들과 김경훈 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들었다. 조천 야학당은 1925년 항일운동가 김시용, 김시균 선생 등에 의해 설립된 교육시설이다. 잔뜩 흐리고 비가 흩뿌리는 조천의 장수물을 지나 연북정에 올랐다. 현기영 소설가가 <제주도우다>를 쓰기 위해 김경훈 시인이나 주민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천을 답사했는데, 작품 속 장소와 실제 현장을 돌아보면 소설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며, 특히 새콧당에 도착해 서로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오늘의 투어는 조천연대에서 마무리되었다. 김경훈 시인은 소설 <제주도우다>의 결말과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소설이 가지는 힘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항일운동과 4.3 사건의 인물에 대해 흔적을 추적하며 자료를 찾는 과정을 시인은 계속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또 최근에는 4.3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자료를 찾아내 출간까지 했지만 유족이 원치 않아 책이나 북토크 행사가 불발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는 속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며, 제주 4.3 사건은 ‘스며들 듯이’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4.3은 이렇게 현재진행형이다.
제주 4.3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들은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역사가 잊히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아직도 4.3의 상처를 고스란히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며들듯이” 역사를 증언하는 일, 그것이 오늘 다크투어에 참가해 우리가 배운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