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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권영화제와 함께 한 평화기행에서 홍춘호 할머니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인천인권영화제와 함께 한 평화기행에서 홍춘호 할머니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미군정이 들어오고,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3.1집회,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발포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빨갱이 섬으로 몰린 제주가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는 4·3. 집계된 사망자 수만 1만 4000여명이다. 이 집계조차 사건이 일어난 지 한참 뒤에나 진행 됐으니 당연히 더 많은 피해가 있었을 4·3.

​그런데도 4·3에는 아직 이름이 없다고 했다. 즉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이고, 책임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이번 4·3 투어에 앞서서 제주도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난개발에 맞서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의 입에서는 하나같이 4·3이 튀어나왔다. 4·3이후의 제주 사람들은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것을 꺼려 한다는 이야기, 자신의 말한마디가 옆사람을 죽이게 된 기억을 안고 있다는 이야기, 또한 제주에 대한 현재의 국가 폭력은 4.3의 연장선에 있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4·3의 폭력은 청산되지 못한 채, 해군기지, 공항 건설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계속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춘호 할머님의 증언을 들으니 제주의 아픔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던 것 같다. 왜 죽임당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살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머리를 구겨 동굴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그날의 고통이 이야기로 전해져 너무 아팠다. 제주의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또다시 그런 학살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아픔을 묻어왔지만, 묻은 채 살아가기에는 너무 아픈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고, 4·3의 책임자를 청산하고, 4·3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서 학살 피해자들의 넋이 조금이라도 위로되길 바라게 되었다.

​무명천 할머니(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방문도 기억에 남는다. 한 평생 턱없이 음식물을 소화하고, 병원을 다니며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의 무게를 감히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서 무언가를 말하던 영상 속 할머니의 모습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더 열심히 듣고 이해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말을 더는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고,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가 끝나고도 계속해서 화가 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던 지점은, 내 눈에 보이는 제주는 아직도 야자수가 가득한 대한민국 제1의 푸른 휴양섬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제주도는 이번 4·3투어를 기점으로 많이 달라졌지만,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눈에서 빗겨갈 생각을 하니 조금 우울해진다. 4·3투어가 계속해서 진행되어서, 그 동안 가려져 왔던 제주도의 아픈 모습들도 사람들이 직면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제주의 아픔이 치유되어, 피해자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평화의 섬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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