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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아주 우연한 만남으로 기회가 생겼고, 제주4·3과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5·18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의 급한 부탁으로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에 4월 3일 역사현장 기행 해설을 했다. 감사하게도 제주다크투어의 해설을 통해 4·3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며 선뜻 다가오는 5월 18일에 광주로 초대를 해주셨다. 또, 자유시간에 오래 이야기를 나누게된 김갑제 부상자회 광주지부장께서 제주다크투어 활동을 응원한다며 현장에서 선뜻 후원금까지 주시며 격려를 해주셨다. 사실 이때까지만해서 광주를 진짜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이후 김갑제 지부장님과 꾸준히 소통을 했고, 사무국 차원에서 예산이 가능한 범위에서 광주를 다녀오자는 결정을 했다. 우리가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동안 김갑제 지부장님께서 우리가 지낼 숙소를 잡아주셨고, 공식 기념식 초대장도 보내왔다.

5월 17일 오전 8시 30분,
광주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버스를 타고 국립5·18민주묘지로 향했다. 중간에 518번 버스로 갈아타 좌석에 앉았는데, 고령의 어르신들께서 앉을 좌석이 없기에 우리는 바로 일어나 좌석을 양보해드렸다. 그랬더니 주변에 계시던 분들께서 우리의 가방을 들어주겠다면 도움을 주셨다. 알고보니 모두 민주묘지로 행하던 분들이었다. 이렇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훈훈하게 도착한 민주묘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경건한 제례를 진행하고 있었다.

5월 17일 오전 9시30분,
이윤주 사무총장님과 만나 도착을 알리고, 합께 참배할 시간을 약속 한 뒤 그 전에 묘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추모탑 뒤에 있는 제1묘역으로 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묘역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중 유독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10여명이 팀이되어 소책자를 들고 다니며 이 묘역, 저 묘역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무엇을 하는지 엿봤더니 특정 묘역의 주인인 민주열사들의 생애나 희생 당시의 상황이나 의미가 정리된 내용들을 서로 설명하며 알아가고 있었다.
순간 '와' 저런 책자가 4·3 평화공원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가 역사적 사건의 전반적인 내용은 알아도 수많은 열사나 희생자 개개인의 역사나 아픔, 의미까지는 알기 어렵다. 그런데, 의미있는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기간에 추모행사에만 참석하는게 아니라, 직접 묘역을 다니며 개개인의 인생을 들여다본다면 우리가 기억할 그 역사의 이야기는 더 풍성해질 수 있고,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게다가 해설사도 필요 없다. 왜 우리는 이런 생각을 못했지? 하며 제주도로 돌아가면 4·3 희생자에 대해서도 이런 책자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5월 17일 오전 10시 30분,
묘역을 돌며 청소년, 대학생, 유족, 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46년 전 5월 18일을 기억하기 위해 묘역을 찾았습니다. 멋진 티셔츠를 맞춰 입고 온 대학생들이 인상 깊었고, 열사 묘비 뒤에 새겨져 있는 유족들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10시 30분에 시작된 추모식에 참여한 후 제2묘역까지 둘러본 후, 유족회 사무실이 있는 5·18기념문화센터로 이동했다.

5월 17일, 오후 1시30분,
5·18기념문화센터 지하1층에는 5·18 정신을 담은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전시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 헌법개정의 기회가 있었으나, 국힘당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무산이 되었다. 다음이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곧 개정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이 헌법에 반영되길 바란다. 한층을 올라가니 서고가 있었는데, 5·18뿐 아니라 국가공권력에 의한 과거사에 대한 많은 책자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시민들에게 대출하고 있었다. 제주 4·3에 대한 책자들도 굉장히 많았다. 광주에서 4·3 을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5월 17일 오후 4시30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광주5·18 역사의 전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기록관이 있는 금남로 일대는 차없는 거리로 바뀌어 여러 풍물패들이 모여 흥겨운 장단을 연주하고, 구경 나온 시민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고 있었다. 5·18뿐만 아니라 아리셀 화재 참사와 같은 다양한 재난피해를 알리는 부스도 눈에 띄었다.

5월 17일 오후 5시 18분,
5·18민주광장에서 전야제가 시작열렸다. 그날을 기억하듯 많은 시민들이 모였고, 한 방향으로 힘차게 휘날리는 깃발들과 풍물패들의 풍악으로 시작된 전야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마무리되었다.

2018년 5월 18일, 낮 12시
전일빌딩 245는 5·18 기록공간으로 헬기 사격 탄흔이 보존된 증언의 공간이다. 옥상에 오르면 5·18 민주광장 전체가 내려다보이고, 9층부터 시작되는 전시공간에는 당시의 헬기 탄흔이 잘 보이도록 전시하고 있다. 또한 역사와 관련한 여러 오해들을 해소할 수 있는 전시를 문을 열고 닫는 방식의 전시로 알리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과 마찬가지로 제주4·3도 역사를 왜곡하거나 혐오하려는 움직임이 많이 있다.

5월 18일 오후4시,
이번에 개관한 옛 민주도청, 옛 민원실, 옛 상무관은 5·18의 역사공간이자, 역사를 재현한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여전히 고증이 부정확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5·18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간접적으로 당시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옛 전남도청 입구 우측 바닥에는 민주열사 류동운, 이강수, 박성용 의 이름과 그들의 짧은 소개가 새겨져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각 장소에 맞는 공간으로 재현되어 있다.

옛 전남도청을 둘러보면서 두 인물이 눈에 들어 왔다.
전시에 소개된 내용처럼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 공포 속에서도 시민들의 편에 서준 안병하 전라남도 경찰국장"이 그 중 한 인물이다. 그는 "경찰이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계엄군의 발 포 명령을 거부했다. 정작 시민을 지켰던 그는 신군부에 연행되어 고문과 파면 등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경찰청에서 2017년부터 매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거나 무고한 생명을 구한 순직·공몰 경찰관을 선정하여 그 뜻을 기리는 공식 현양 제도로 '경찰영웅'을 선정했는데, 안병하 치안감(2017년)이 제도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안병하 경찰국장 다음으로 경찰영웅으로 선정된 인물이 문형순 서장이다. 1950년에는 군의 예비 검속자 총살 명령을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 거부하고 200여 명 이상의 무고한 양민을 살려냈던 당시 성산지서장이었다. 두 인물이 남들과 다른 선택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을 던 때가 모두 계엄시기이다.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경찰이 이를 거부하고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옛 전남도청 4층 바닥에는 민주열사 문재학과 안종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중 '문재학' 민주열사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인 동호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이다. 그는 당시 15세였고, 전남도청에서 시신 수습 및 유족 안내 활동 등을 하다가 5월27일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17일에 갔던 제1묘역에서도 가장 많은 학생들이 문재학 열사의 묘역을 다녀갔다. 새삼 문학의 힘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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