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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6. 유족 청구재심이자, 검찰 직권재심 재판의 공판안내
2024.07.16. 유족 청구재심이자, 검찰 직권재심 재판의 공판안내

2024년 7월 16일 오전 11시,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는 유족 청구재심이자, 검찰 직권재심 재판(사건번호 2023 재고합 32, 2024 재고합 15 병합)이 열렸고, 포고령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망 고문찬에게 재판부(방선옥 부장판사)는무죄를 선고했다.

망 고문찬은 4·3 당시 교사로 재직했다. 재판에서 제주지방검찰 소속의 검사가 밝힌 망인의 공소사실은 이렇다. 우선 포고령 제19호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는데, 1947년 3월 1일 세화초등학교 교정에서 거행한 무허가 집회에 참가하고, 같은 날 하도초등학교 4-6학년 아동 약 150명을 인솔하여 하도리·세화리에서 무허가 시위행렬을 감행했다는 이유였다. 또한 같은 해 3월 12일에는 구좌면 하도리 초등학교 직원실에서 망인 등 수명과 무허가로 학교 파업 단행을 결의한 후, ‘발포경찰을 처단하라, 피살당한 동포를 도와라, 학원의 자유를 보장라하’ 등의 결의문을 게시하고, 파업을 단행했다는 내용으로 일반재판을 받았다.

그는 이후 군사재판에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는데, 관련해서는 자세한 협의사실에 대한 기록은 없고, 망인이 1949년 국방경비법 제32조, 33조를 위반했다는 간첩죄 내용만 기록에서 확인된다. 그는 결국 이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검사는 이러한 공소사실이 있으나 관련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재판에 참석한 그의 유족 고00은 길게 적어온 소회의 글을 울먹이며 읽어 내려갔다. 그의 글과 말에 참으로 깊고 오랜 슬픔과 바램이 담겨있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사건의 피고 망 고문찬은 순수한 민간인이며, 교사로서 평온하게 직무에 전념하던 중 강제 납치되었고, 그 행적에 무죄를 주장하였음에도 1949년 6월 28일 군사재판은 사형을 판결하였고, 집행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임에도 본인은 4·3 연좌제에 걸려 검찰직에도, 교정직에도 임용되지 못하자 한동안 방황하였습니다.
올무에 걸리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찾아갔으나, 알루미나 방열복을 입지 않고는 1,600도의 쇳물을 다룰 수 없는 현장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야간근무에는 열기와 졸음을 참느라 체제를 비웃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여합니다.
귀향해서 4·3의 흔적을 돌아보던 중에 가장 극적인 화해와 상생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에서 봤습니다.
“여기 고개를 숙이라”는 4·3 비문에는 “섬나라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여기와 옷깃을 여미라. 그러니 이 돌 앞에서는 더 이상 원도 한도 말하지 말자.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다만 섬나라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한 번쯤 여기 와서 고개를 숙이라.”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 일생의 소망이던 피고인의 묘비 뒷면에 무죄 판결문을 새기고, 그 판결문을 올려 낭독해 드리려는 바램을 이루어 주십시오.
이 나라 역사를 바로 세워주신 판결을 기대합니다.
이제는 75년의 얼룩을 해원하고, 상생하며 대통합으로 나아가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리고 제 후손들에게는 나치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왔던 폴란드의 어느 역사학자가 한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살게 하겠습니다.
“과거란 아무리 어두운 것일지라도 청산할 수 없다. 쓰라린 과거는 그것이 쓰라릴수록 사나운 개와 같다고 생각하여 늘 데리고 다녀야 한다. 다시는 물리지 않도록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2024년 7월 16일 고00
- 망 고문찬의 유족 고00님 제공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고 재판은 종료되었으나, 망인의 유족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는지 한동안 재판정에 남아있다가 변호인이었던 임재성 변호사, 이번 유족 청구재심을 돕고 있는 양동규 4·3도민연대 대표와 함께 법정을 떠났다.

75년 전 시작된 4·3의 멍에는 죄없이 처헝되었던 고 고문찬에게서 끝나지 않고, 그의 조카, 조카의 가족들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유족인 그의 조카가 남긴 글에서 우리는 4·3을 꼭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이 평화를 지속하고, 아직 이루지 못한 평화를 찾기 위해 우리는 4·3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관련기사] 4.3 때 사형당한 교사, 75년 만에 무죄 판결받아

오마이뉴스, 김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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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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