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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청년단 특별중대 옛터

  • 제주4·3 유적지 안내판이 설치되었지만 유적지에서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 곳
  • 성산동국민학교 건물 형태가 남아있어 꼭 보존했으면 하는 제주4·3 유적지
  • 인근 마을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죽음을 맞기 전에 대기하는 곳

<4·3유적지 시민 안내판>

제주4·3 기간 중 수많은 주민을 학살한 서북청년단(서청) 특별중대가 민간인의 피해가 가장 컸던 초토화 작전 전개 시점인 1948년 11월경부터 약 3개월간 주둔했던 곳이다. 원래는 성산동국민학교 건물이었다.

이곳에 주둔했던 서청 특별중대의 규모는 30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까지 된다는 증언이 있다. 이들은 이곳 성산동국민학교에서 숙식하며 바로 옆 감자창고에 붙잡아온 성산면, 구좌면 주민들을 취조 및 고문하였고, 터진목 등으로 끌고 가 학살했다. 군복을 입었지만, 일부 지휘관을 제외하고는 계급장도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품 갈취와 횡포를 부리며 토벌의 전위대 역할을 하던 극우 청년단이 이번엔 진짜 무장을 한 채 나타난 것이다.

한편, 서북청년단(회)은 남과 북이 나뉘는 시기에 한반도의 서북지역 즉, 평안도·황해도·함경도 지역 사람들이 남한지역으로 내려와 결성한 반공청년단체이다. 이들은 북한지역에서 친일파 청산과 토지의 무상몰수·무상분배 등 정치적 변화에 내몰려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이라 좌익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다. 이들은 '제주는 빨갱이의 섬'이라고 교육받아 제주도민을 죽이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제주에는 1947년부터 서북청년회 단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제주도민들을 학살한 가장 대표적인 주범이다. 이들은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신분으로 주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며 수많은 주민을 학살했다.
지금은 1956년에 신축된 학교 건물의 틀과 바닥, 복도 등의 형태가 남아있지만 매년 무너지고 있다. 주민들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감자창고는 허물어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참조

<어디에 있나요?>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179-4
  • 찾아가려면: 성산중앙로 중간에 있는 '성산K마트' 주차장을 지나 뒤에 신축된 빌라건물로 다가가면 건물 우측에 성산동국민학교 옛터이자 서청 특별중대 옛터가 있습니다. 현재 안내판은 빌라 좌측길로 선산포 자연산회센타 쪽으로 나가면 큰 길가(성산등용로17번길)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시민지킴이단이 이곳을 조사 유적지로 선택한 이유>

  • 서북청년단 특별중대 옛터에는 4·3유적지 안내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터에서는 안내판이 보이지 않고, 안내판에서는 건물터가 보이지 않아 실질적인 안내판의 역할이 미미합니다.
  • 제주4·3유적지 중에 4·3 당시의 건물은 아니지만 학교의 흔적이 남아있어 보존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제주다크투어와 4·3유적지 시민지킴이단 2기는 서청 특별중대 옛터가 이미 1기 시민지킴이단이 선정한 유적지 임에도 이곳이 늦지 않게 보존되길 바라고, 안내판에 지대로 된 곳에 설치되길 바라며,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담은 시민행동을 진행합니다.

<제주4·3과 서북청년단 특별중대 옛>

  • 당시 대한청년단 훈련부장임이었던 이기선 씨는 “서청 특별중대는 과거 감정이 있던 주민들에게 멋대로 죄명을 씌워 처형했다.”면서 “나도 몇 번 끌려가 손과 발이 묶인 채 장작으로 맞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고문이 심했다.고 증언했다.(「4·3은 말한다」5, 68쪽)
  • 1949년 1월 2일에는 송기공(宋基公, 33) 강춘신(康春新, 24) 강승홍(20) 임재삼 등이 희생됐다. 1월 중순께는 임영전(林永傳, 24) 홍두종(洪斗宗, 16)이 터진목으로 끌려가 학살됐다. 현순녀(玄順女, 여, 48)는 닭을 내놓으라는 서청의 요구를 거부했다. 앙심을 품은 서청은 1월 19일 현순녀가 통금시간을 어겼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 초소 부근에서 총살했다.(「4·3은 말한다」5, 68-69쪽)
서청은 참으로 지독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경찰이 나서서 일시 가두기까지 했겠습니까. 주정공장 창고 부근에는 부녀자와 처녀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청은 여자들을 겁탈한 후 고구마를 쑤셔 대며 히히덕거리기도 했습니다.
- 성산면 대동청년단장이었던 고성중씨 증언
「4·3은 말한다」5, 69쪽
1948년 겨울에 서청으로 구성된 특별중대(대장은 최소위, 부관은 강아무개)가 성산포서교에 주둔. 30∼40명 정도로 3개월쯤 머물렀다. 서청 특별중대는 군복을 입었으나 계급장은 달고 있지 않았다. 늘 이동하며 다닌 듯했다. 학교 창고를 유치장으로 사용했는데, 이곳에서 항상 50∼60명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수감되어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
- 당시 성산포서교 교사 홍경토의 증언
제주4·3아카이브
1948년도에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서북청년단들이 여기 와서 자기들 수입이 없으니까. 이승만 초상화 만들어서 팔러 다녔습니다. (중략) 가서 사라고 하니까 안 사줘 사람들이. 안 사준 젊은 청년들을 다 눈여겨 뒀다가 1949년도에 총 38명을 학살합니다. 그 초상화 팔아주지 않은 사람들을 다 잡아다가 죽인거라. (중략) 지금 성산에 가면 옛날 성산국민학교 자리에 지금은 가장 최근에 횟집 하는 데가 있는데, 그 뒤에 보면 숲으로 우거진 건물 잔해가 있어요. 그게 교실이라 교실. 그리고 그 앞에 보면 5층 짓는 집이 있는데 그게 그 당시 감자창고라. 지금 공사중이에요. 거기가 감자창고에요.
- 정순호씨 증언
성산일출도서관(2021), 「터진목을 아시나요」, 37, 43-44쪽
끌려가서 갔다가 엄청 고생했다는 사람 많지. 우리 어머니도 거기 끌려가서 엄청 고생했대. 응. 거기 남편 내놓으라고. 거꾸로 매달아서 뜨거운 물을 코로 다 집어넣고. 그런 고초 많이 받았다고 하대. 그건 직접 우리 어머니한테 들었고.
- 오종구씨 증언
성산일출도서관(2021), 「터진목을 아시나요」, 65쪽

<제주4·3과 서북청년회(단)>

  • 서청(서북청년회) 이북출신으로만 조직된 반공청년단체이다. (중략) 북한 공산당 집단에 쫓겨 급히 도망쳐 나와 빈털터리가 많았다. 처음에는 태극기나 이승만 사진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1947년 하반기부터는 경찰, 행정기관, 교육계에서 근무하는 단원들이 늘어났다. (중략) 서청은 당시 이승만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미군 정보보고서는 서청이 “‘반민주적’이라고 의심되는 인사들에 대해 정력적으로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며 ‘빨갱이 사냥’에 매달렸다”고 지적하고168) “이승만의 지시에 따라 미 소 공위에 협력하 거나 반대시위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제주4·3사진상조사보고서 143쪽)
  • 서북청년회는 4 3사건 발발 전부터 도민들과 갈등을 빚어 사건 발생의 한 원인으로까지 지목 받아 왔는데, 이승만과 미군은 강경작전을 앞두고 서북청년회를 아예 군 경에 편입시켰 다. 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대량 주민희생을 초래하는 결과를 빚었다. 서북청 년회 위주로 경찰이 재편됐고, 군대에는 ‘서청중대’가 따로 편성됐다. ( 제주4·3사진상조사보고서 266쪽)
  • 여순사건 직후의 상황으로 1948년 11 12월 두달 사이에 최소한 1,000명 이상의 단원들이 경찰이나 경비대원으로 급히 옷을 갈아입고 진압작전의 한복판에 선 것이다. 이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제주도는 그야말로 ‘서청판’이 되고 말 았다. 이들이 전율할 학살극을 벌여도 이를 제재할 기관은 없다시피했다. 이와 관련 미 고문관이었던 피쉬그룬드는 “미국에서 경찰관은 그 지역 출신이 하는데 왜 북한 에서 탈출한 서북청년회가 제주도에서 경찰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 다.96) 그러나 서청의 배후에 바로 미군과 이승만이 있었다. 미군이 제주도 서청을 후원했다는 근거는 미군 스스로의 정보보고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 제주4·3사진상조사보고서 267쪽)

<서북청년단 특별중대 옛와 관련된 4·3유적지>

<4·3유적지 시민지킴이단 활동>

  • 2022. 10. 12. 시민지킴이단 2기 4조 1차 사전답사
  • 2022. 10. 23. 시민지킴이단 2기 4조 2차 사전답사
  • 2022. 10.~12. 유적지 자료조사
  • 2022. 12. 17. 시민지킴이단 2기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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