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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4·3특별법'으로 표기) 은 2000년에 제정되었습니다. 1978년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으로 제주4·3을 세상에 알린 이후로도 20년이 지나 겨우 관련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당시 「제주4·3특별법」의 목적은 "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제1조)"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더 흐른 뒤인 2022년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회복 및 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함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 함"으로 개정되었습니다. 2000년 정부가 제주4·3에 대해 매우 시혜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면, 2022년이 돼서야 조금 더 책임의 주체로서 적극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법조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2000년 제정된 「제주4·3특별법」의 의의를 몇가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제주4·3의 기간을 1948년 4월 3일이 아닌, 1947년 3월 1일(군정경찰의 발포사건 발생)부터 1954년 9월 21일(한라산 금족해제)로 정해 진상조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4·3폭동' 으로 불리던 역사의 성격을 '제주4·3사건'이라는 공적 용어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후대에 이르기까지 '폭도'로 낙인 찍었던 제주4·3 피해자와 유족들이 '희생자', '희생자유족'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제주4·3사건에 발생한 국가폭력의 피해에 대해 도민과 유족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습니다.

물론, 제정 된 「제주4·3특별법」의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제주4·3에 대한 성격 규명이 미뤄졌고, 정명이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제주4·3으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회복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주4·3 기간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주도한 책임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부재했습니다. 반면, 무장대 활동을 했던 피해자나 그 유족은 「제주4·3특별법」이 정한 국민화합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습니다. 「제주4·3특별법」이 정한 '제주4·3사건'의 기간이 1954년 9월 21일까지로 한정되면서 이후 발생한 간첩조작사건, 생존자나 유족들의 후속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회복조치의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한계를 개선하고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뿐 아니라, 제주 나아가 전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 법조계, 학계가 함께 연대하여 대안을 제안하고 구체적인 전부개정안을 마련하였습니다. 정치권도 이를 수용하여 2017년 12월 19일 당시 오영훈 국회의원이 「제주4·3특별법」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하였습니다. 이후 「제주4·3특별법」개정을 위한 결의대회, 국회의원 면담, 토론회, 평화행진, 호소문 전달, 기자회견 개최 등 다양한 입법 활동이 전개했으나 아쉽게도 2020년 종료되는 20대 국회에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21대 국회가 시작되고 다시 전부개정안이 발의되었고, 2021년 2월 26일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21년만에 전부개정된 「제주4·3특별법」으로 한국전쟁 전후 기간에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분에 대한 최초의 피해회복 조치가 법제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주4·3 기간동안 일반재판 수형인은 특별재심으로, 군사재판(군법재판)을 받았던 수형인유족에게 직권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의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제주4·3 이후 한국전쟁까지 해방 이후, 정부의 행정기능이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한 제주4·3유족의 잘못된 호적이 정정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었습니다. 끝으로 제주4·3에 대한 추가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반면, 여전히 「제주4·3특별법」에 담지 못한 과제들이 많았고, 법조문의 한계로 실질적인 피해회복조치에 한계가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6개월 간 연구용역을 거쳐 「제주4·3특별법」개정안이 다시 발의되었고, 2022년 1월 11일 「제주4·3특별법」의 추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이 개정안을 통해 국가배상금에 대한 지급 기준, 상속 개시 시점, 형사보상청구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 배상금 지급 방식 등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입법과정이 그러하듯 새로운 법의 제정도 어렵지만 법개정도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게다가 법 제정과 한, 두 차례의 개정으로 이해당사자 그리고 국민의 모든 요구를 담아낸 법안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제주4·3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계속 있다면 「제주4·3특별법」의 개정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정을 거듭하며,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제주4·3'의 역사를 더 정명하게 기록하고 기억하는 앞으로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를 위한 「제주4·3특별법」 그리고 제주4·3의 과제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제주4·3의 정명을 위한 운동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이 제주4·3 70주년이었던 것 같은데, 곧 80주년이 다가옵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제주4·3의 생존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 제대로 된 정명의 길이 마련되길 희망해봅니다.

「제주4·3특별법」으로 국가폭력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반면, 제주4·3 당시 미군정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주4·3 기간 초기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으므로 제주4·3의 발발과 도민의 무자비한 학살 과정에 미국의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제주4·3 관련 국가폭력을 주도했던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단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표적인 책임자로 이승만, 송요찬, 박진경, 조병옥 등 학살과 폭력을 실질적으로 지시한 책임자데 대해서는 처벌과 단죄의 역사를 남겨야합니다.

또한, 배제된 또는 인정받지 못한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구제 그리고 회복 조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주4·3 피해의 대부분은 군경에 의해 발생했지만 무장대에 의한 희생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정부는 제주4·3으로 피해를 받은 민간인 뿐아니라 군경과 그 유족까지 피해회복의 대상으로 인정을 하면서도 무장대 희생자 유족에 대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4·3특별법」이 정하는 국민화합 그리고 진정한 화해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예외 없는 희생자 인정, 그리고 피해회복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제주4·3사건 기간 이후에 발생한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인정이 필요하고, 혼인특례 도입 등 「제주4·3특별법」개정으로 폭넓은 가족관계 정정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며, 트라우마센터 등 희생자 및 유족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진행될 제주4·3의 역사가 과거로 퇴행하거나, 혐오와 낙인의 역사로 기억되지 않도록 교육, 여행,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승되어야 합니다.

이외에도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된 과제들이 많습니다. 「제주4·3특별법」이 단순히 국회의원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입법활동을 해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며 교육 후기를 마칩니다.

사담이지만 활동가가 되기 이전 4년 동안 국회에 근무 경험이 있다보니 입법과정의 어려움, 한계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현장에서 당사자, 전문가, 시민과 함께 여러 입법과제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절실함을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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