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호의를 베풀 때 하는 표현,
당연한 일을 했기 때문에 감사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5월 3일, 제주지방법원 제주4·3 직권재심 재판을 이끈 장창수 판사는 이날 무죄선고를 받은 수형인 가족의 감사인사에 이렇게 답변했다.
참으로 당연한 말인데, 제주4·3의 피해자와 유족 대부분은 법정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한다.
지난 70년이 넘는 세월, '폭도', '폭도의 자식', '빨갱이' 소리 들으며, 숨죽여 살아온 그들에게는 너무 긴 공포와 암흑의 시간들이었다는 증거다.
유족들 중에 한세대만 거치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내 가족 중에 제주4·3 희생자가 있는지 최근에야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모두 쉬쉬하면서 살았다. 혹여 아직 많은 날을 살아가야 할 자식들에게 피해가 될까 다들 억울한 줄 알면서도 꼭꼭 숨겨야만 했고, 내 아방, 어멍이 죄도 없는데 잡아간 것이 국가인줄 알면서도 모진 세월 숨죽여 살아왔다.
그러나 제주4·3은 명백한 국가 폭력의 역사이며, 국가를 앞세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국민의 인권과 생명을 마구잡이로 빼앗은 범죄다. 그렇기에 판사는 오히려 당연한 일을 했으니 고마워 말라고 거듭 밝힌다.
판사는 이런 취지의 발언도 했다.
'모든 재판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특히, 형사사건은 피고인의 죄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
분명, 대한민국 헌법 아래 사법부가 다루는 모든 재판은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간 방청했던 제주4·3 직권재심재판 모두가 '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라는 표현이 거듭된다. 날조된 혐의에, 제대로 된 재판절차도 거치지 못하고 제주의 청년들이 그렇게 끌려가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이날 무죄선고를 받은 제주4·3 수형인 중의 자녀인 김00님은 본인이 5,6세 때 아버지가 대정의 면장이었고, 당시 마을의 치안유지를 위해 경찰서장, 민보단장 등 소위 마을의 지도층과 함께 밤낮없이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본 기억이 많지 않지만 사진이 몇 장 남아 그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매일 마을을 함께 돌보던 다른 책임자들에 의해 아버지가 잡혀가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 당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억울하고 화가 나고,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 날까지 살아오셨단다. 수소문 끝에 대구형무소에서 아버지의 기록을 찾았으나 사망시점에 대한 기록이 없어 매년 아버지의 생일에 맞춰 기일을 챙겨왔다며,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애써준 변호사, 검사, 판사님께 감사드린다는 말로 본인의 소회를 마쳤다.
또 다른 수형인의 동생 김00님은 제주4·3 기간에 부모가 돌아가시고, 형마저 잡혀갔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본인도 당시 어렸지만 형도 어려서 본인까지 건사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20년 동안 형이 끌려간 줄도 모르고 여러 친척집을 전전하며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살아오다가 형을 찾기 위해 수소문해보니 재판을 받고 목포형무소로 갔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어 목포로 찾아갔다고 한다. 목포에서는 당시 형이 소년이었기 때문에 인천형무소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천에 가니 형의 기록을 찾았다고 했다. 병사로 돌아가셨다고 하고, 그 전에 2번이나 제주로 통보했던 기록이 있었는데, 제주4·3으로 당시 가족이 살던 마을이 없어져 아무도 형을 찾아가라는 통보를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힘이 없어서 기대가 없었다며, 지금이라도 이렇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냈다.
장창수 부장판사는 이번 4·3 재심 전담재판부의 재판장으로 원래 다른 지역 발령을 앞두고 제주4·3 직권재심을 위해 제주에 남아있는 분으로 알고 있다. 그는 늘 담담하지만 묵직한 발언과 함께 재심재판을 이끌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제주4·3 수형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고, 재판 이후에도 남아있는 여러가지 제주4·3 이슈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또 70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수형인들의 가족에는 '이제 좀 편해지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위로를 전한다. 제주4·3의 역사를 바로잡고, 기억하는 시민단인 제주다크투어도 장창수 부장판사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정부,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일임에도, 그 당연한 것이 이루어지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오랜 기간 억울하게 죽은 부모형제를 마음 놓고 그리워할 기회까지 빼앗긴 채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아직 멈출 수가 없다. 왜! 70년이 지나, 명예를 회복할 당사자 모두 죽고서야 '무죄'를 선고하느냐고 따져도 국가는 할 말이 없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제주4·3의 아픔과 피해를 회복하는데는 몇 갑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디 재심뿐이겠는가. 세대를 거듭하며 제주4·3의 후유증은 지속할 것이다. 그러니 제주4·3은 과거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