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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2일(화) 제주지방법원(장찬수 부장판사)은 제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으로 수형인 30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본 재판에 참석하여 무죄선고 받은 제주4·3 희생자 유족의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그 소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직권재심 재판을 앞두고 변진한 검사가 유족들에게 판사의 진술기회 제공의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편안하게 고르면 됩니다. 잘 못 고라도 이상한 것 절대 없습니다. 예전에 부모나 형제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면 얘기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전에 무슨 일 있었는지 잘 아는 유족 거의 없습니다." 라며 유족들의 걱정을 덜어주려 했습니다. 무죄판결 받은 소감, 유족으로서의 어려움 등을 얘기하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4·3관련 군법재판 수형인들은 제대로 된 재판이나 변호를 받지 못했고, 죄를 지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습니다. 본래 군법재판은 군인들이 대상인데도 당시 민간인을 대상으로 군법재판을 열어 유죄를 선고하고 전국의 형무소로 보내거나 처형을 집행한 것은 여러가지로 불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오늘 무죄선고를 받은 희생자의 경우 농사를 짓다가, 소개령에 이사를 하다가, 소개령에도 마을에 남앗다가, 교사로서 수업을 하다가, 민보단 훈련부장 역할을 하다가, 주정공장에서 퇴근하다가, 결혼한지 3일 만에 '갑자기' , '아무런 이유 없이' 군경에 끌려간 분들입니다.

망 양00님의 외조카 김00님은 4·3 이후에 태어나 자세히 모르다가 외할머니께서 외삼촌 두 분에 대해 이야기하여 알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외가댁은 3남1녀였고 큰외삼춘은 1940년대 초에 일본으로 건너가 소식이 없었고, 나머지 2분의 외삼촌은 4·3 시기 소개령 때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작은 외삼촌은 열흘 후에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막내 외삼촌은 행방불명되어 2000년대 들어서 재판을 받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00님의 어머니는 평생 미혼모로 살다가 2년 전에 돌아가셨고, 그간 외할머니의 돌봄을 받고 살다가 2년 동안 치매 뒷바라지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외가댁에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왔어도 유족으로 등록도 되지 않지만, 재판에 참석할 기회가 생겨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무죄판결이 내려진다면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원통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어질 것이라며 재판부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망 고00님의 조카 고00님은 아버지 형제 중에 둘째 큰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고, 셋아버지는 인천형무소에 잡혀가 행방불명되어 생일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여건이 좋지만 4·3 당시만 해도 제사를 하는게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00님의 아버지는 일본에 있어 본인이 30대부터 제사와 벌초를 모두 해오고 있으나 희생자의 직계 가족이 아니다 보니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본인도 고령이라 자녀들이 제사와 벌초를 하는데, 법적으로는 연결이 안되니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하여 재판정에서 이야기 해봤다고 하셨습니다.

망 강00님의 아들 강00님은 노형동에서 태어났고 외가는 외도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만삭으로 친정에 가 있는 동안 아버지가 노형에서 잡혀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는 중에 다 총살되어 죽었고, 살아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9촌 삼촌이라고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 어머니 마저 돌아가셨고, 이후 외도에 있는 제주보육원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야간학교를 다니며 어렵게 졸업을 하니 9촌 삼촌이 찾아와 아버지 제사 등을 맡으라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정말 어렵게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1969년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집안 제사를 맡아 왔고, 결혼해서 6남매를 키워 이제는 다 분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9촌 삼촌이 호적을 신고할 때 나이도 3살이나 낮추고 친자임에도 양자로 등록되어 있다며, 안타까운 사연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망 진00님 조카 진00님은 큰어버지는 결혼 3일만에 잡혀갔다며, 큰어머니가 남편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 했는데 , 배를 타고 섬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 돌아와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큰어머니 묘가 있지만 호적에 올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큰아버지는 행방불명 되었고 겨우 생일을 알아내어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큰아버지의 생일과 큰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같다고 합니다. 큰아버지가 죄없이 잡혀갔는데, 이제 무죄를 선고 한다니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발언을 끝내셨습니다.

강00님의 딸 강00님은 너무 어릴 때 아버지가 잡혀가서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아버지의 신체라도 찾았으면 좋겠어서 진술을 요청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제사는 생일로 하고 있고, 형제도 없이 어머니와 본인 둘이서 함께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이제 4·3공원에 비석도 세우고 무죄선고도 받아 좋은데, 꼭 아버지의 신체를 찾고 싶다는 바람을 남기셨습니다.

이날 재판 방청석에서 취재를 하던 허호준 한겨레 기자에게도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는 "4·3 발생 70여년, 진상규명 운동이 시작된지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재심재판을 하게되니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진전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 라고 발언했습니다. 이어서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문 재판" 이라며, "훗날 이 재판에 대해 많은 글을 써내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4·3 연구자보다 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재판부, 검찰, 변호인들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활동을 보면서 깊은 경의로움과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허영선 제주4·3연구소 소장은 "야만의 시대가 저지른 죄를 이 법정에서 다시 한 번 심판하면서 정의가 살아있는 오늘을 보여주는 것이 이 법정인 것 같다" 라고 했습니다. "내란죄, 국방경빕법으로 희생자들이 하늘로 떠났고, 육친들은 그들의 뼈 한줌을 찾지 못해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시내는 늘 변하며, 오래 살아 이런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무죄를 선고받고 오늘 밤부터 편히 주무시라는 판사의 이야기를 들을 날이 올 것이라 상상했겠나.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벅차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4·3연구소장으로서 바라는 것은 단 한사람이라도 억울한 희생자가 없이 (중략) 모두 다 포용할 수 있는 법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발언을 마쳤습니다.

정찬수 부장판사는 30명의 4·3희생자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조금이라고 마음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재판을 마쳤습니다.

<알림>

이후 진행된 군사재판 수형희생자 68명에 대한 재심재판 내용은 7월 12일에 발표한 '[논평] 검찰은 특별재심을 4·3희생자 검증도구로 활용말아야'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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