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1일(화) 제주지방법원(장찬수 부장판사)은 일반재판 특별재심을 통해 수형인 1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본 재판에 참석하여 무죄선고 받은 제주4·3 희생자 유족의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그 소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날 제주4·3희생자 측의 변호인은 희생자 유족들이 지난 수개월간 충격과 고통 속에 지내야만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후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제주4·3 당시 일반재판을 받은 수형인 14명의 재심건에 대해 지난 3월 제주지방검찰청이 항고를 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절차적 완결성과 정당성'을 이유로 항고했고, 이후 제주지방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모두 반박하고 기각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이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절차입니다. 그러나 70년 넘는 세월을 침묵하며, 온갖 모욕을 당하던 희생자 유족에게는 굉장한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제주4·3희생자인 일반재판 수형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발언했다. 검찰이 이번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제주4·3희생자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 위로를 하고자 한다면 지난 3월의 항고는 없었어야 합니다. 이미 오랜 기간 제주4·3의 피해로 고통스러웠던 이번 제주4·3희생자 유족에게 검찰의 항고는 단순한 절차적 항고가 아닙니다. 이날 변호인이었던 문성윤 변호사은 유족들에 대해 "그간 주의의 냉대와 트라우마를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었으며, 국가에 의한 2,3차 가해를 당해왔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번 재심결정이 어렵게 이루어져 안도했으나, 검찰이 재심결정에 불복하고 항고한다는 소식은 이미 7-80대 고령의 유족들에게는 충격이었고, 밤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불안을 느끼는 두려운 나날 들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 지체 된 정의는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국가 폭력, 씻기지 않은 낙인 앞에 법적 안정성만을 중요시 한 검찰의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재판에 참석한 망 현봉진님의 손자분은 할아버지는 여전히 행방불명된 상태지만, 앞으로 더 정의롭게 처리될 것이라고 믿겠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망 박경생님의 딸 박00님은 오랜 세월을 기다려 왔다며, 8살에 아버지가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80대 중반이 되어 재심신청을 어렵게 했는데, 검찰이 항고를 했다고 하여 힘들었다는 심경을 밝혔습니다. "왜 우리 아버지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자식 된 도리로서 할머니, 어머니 묘소 앞에 가서 이제는 안심하시라고 말씀드리며 술 한잔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남을 원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말씀으로 소감을 마쳤습니다.
망 이남구님의 외손자 강00님은 본인이 과거에 경험했던 피해 경험을 설명하며, 과거 조부모님들이 겪어야 했던 피해가 어땠을지를 생각하게 된다며, 4·3희생자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어릴 적부터 겪었던 낙인 경험을 밝혔습니다. 이어 재심재판을 항고한 검찰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판사의 제지를 받다 결국 법정을 떠나야 했습니다. 유족들에게 제주4·3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망 김천종님의 아들 김00님은 지난 74년 동안 힘들었고, 죄인으로 살아왔다며, 오늘 무죄선고를 받아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망 강상휴님의 아들 강00님은 육지형무소로 간 아버지를 빼내주겠다는 브로커에게 돈을 줬으나 6·25가 터져 행방불명 되었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셨습니다.
망 고한수님의 딸 고춘자님은 당시 6세였는데, 순경들이 어느 날 와서 남자 어딨는지 물으며 때렸고 이를 피해 숨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죽창인 것 같은데, 그것으로 푹푹 찔렀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함께 살아남은 남동생이 있는데, 집안에 다른 남성 어른이 없어 호적에도 올리지 못했고, 배불리 먹이지 못해 안타깝게 죽었다고 했습니다. 극악무도했던 시절, 죄 없는 사람들 억울하게 간 것이 가슴이 아프다며 앞으로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약 없이는 잠이 들 수 없이 살고 있다며, 무죄를 받았으니 앞으로는 베푸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며 말씀을 마쳤습니다.
망 김영문님 손자 김00님은 그간 가족들이 연좌제로 피해를 많이 봤다며, 조부나 제주4·3에 대해 잘 모르다가 특별법 제정 전후로 조부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조부께서 마을 훈장을 하셨는데, 갑자기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형무소에 있다는 편지도 받았었다고 합니다. 부친께서는 낮에는 산에서, 밤에는 나와서 지내라는 조부의 말씀을 따르다 한국전쟁 때 학도병이 되셨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종종 '빨갱이' 소리도 들었는데, 앞으로 더 많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소감을 마쳤습니다.
제주다크투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