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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오리오름 중턱에 있는 공터에서 문상길 중위 위령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사진은 최상돈, 김강곤 선생님이 문상길 중위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개오리오름 중턱에 있는 공터에서 문상길 중위 위령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사진은 최상돈, 김강곤 선생님이 문상길 중위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지난 9월 23일, 제주다크투어는 아주 특별한 답사를 했습니다. 바로 제주4·3 학살 책임자 중 한 사람인 박진경 연대장을 암살한 문상길 중위의 궤적을 되짚어 본 건데요.

답사가 진행된 이날은 문상길 중위가 유명을 달리한 지 꼭 73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문상길 중위는 1948년 9월 23일 오후 3시 35분께 경기도 수색의 사형집행장에서 향년 스물셋의 나이로 총살을 당합니다. 상관을 살해했다는 이유에섭니다.

도대체 73년 전 그날, 제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길을 나서며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이번 답사는 특별히 오랜 시간 제주4·3에 대해 천착해 온 가수 최상돈 선생님과 김경훈 시인이 함께 해 시와 노래로 채워졌습니다. 최상돈 선생님과 함께 산오락회로 활동하시는 음악가 김강곤 선생님과 작가님 등도 동참했습니다.

제주농업학교 옛터 일대에서 힘찬 발걸음을 옮기는 답사팀
제주농업학교 옛터 일대에서 힘찬 발걸음을 옮기는 답사팀

처음 발걸음을 옮긴 곳은 제주농업학교 옛터였습니다. 이곳은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 등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한 거사’를 감행한 장소입니다.

평화적인 노선을 취했던 김익렬 9연대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박진경 연대장은 전임자와 달리 부임 초기부터 강경한 진압 작전을 전개한 인물이었습니다. 취임 초기 기자들과 가진 자리에서 '제주도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민 30만 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라고 발언했을 정도로 과격한 지휘관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당시 미군정의 입맛에 맞았던 걸까요. 영어 구사 또한 능숙했던 박진경 연대장은 선배 기수마저 제치고 초고속 대령 승진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 승진 축하연이 있은 다음 날 새벽 박진경 연대장은 자신의 숙소에서 부하들에 의해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제주4·3 당시 제주농업학교 일대를 촬영한 항공 사진
제주4·3 당시 제주농업학교 일대를 촬영한 항공 사진

제주농업학교 옛터는 박진경 연대장의 숙소를 비롯해 9연대가 주둔했던 공간입니다. 학살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 제주농업학교에는 천막 수용소가 세워져 주민들을 구금하고 학살하는 죽음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박진경이 암살을 당한 장소는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몇몇 자료 등을 토대로 현재 삼성초등학교 정문 앞쪽에 있었던 건물이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당시에 있었던 건물이 없어진 상태이고 문구점과 학원 등이 들어선 상가 건물이 있습니다.

제주4·3 당시 항공사진을 보면 당시 건물 사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사진 속 붉은 동그라미가 박진경 연대장의 숙소이자 암살을 당했던 장소로 추정됨.)

박진경 연대장이 암상 당한 숙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삼성초등학교 앞 터
박진경 연대장이 암상 당한 숙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삼성초등학교 앞 터. 옛 사진 속 빨간 동그라미 부분.

사진 속 운동장 옆에 세워진 4개 동의 군 막사(사진 속 파란 동그라미)가 있는 자리도 직접 눈으로 봤습니다. 지금은 주택가가 되어 당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주농업학교 내 군막사에 세워졌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
제주농업학교 내 군막사에 세워졌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 옛 사진 속 파란 동그라미 부분.

1907년에 세워진 '사립 의신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제주농업학교는 처음에 지금의 오현단 부지에 세워졌다가 1909년 제주공립농림학교 인가를 받고 이후 1940년 제주공립농업학교(5년제) 승격 후 전농로 일대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4·3을 맞게 됩니다. 이후 1977년에 전농로가 개설되면서 지금의 한라수목원 옆쪽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 과정에서 교명은 제주고등학교로 개칭됩니다.

옥성정 옛터를 둘러보고 있는 답사팀
옥성정 옛터를 둘러보고 있는 답사팀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제주시 구도심권에 위치한 옥성정 옛터였습니다.

옥성정은 박진경 연대장이 암살당하기 전날인 1948년 6월 17일에 축하연이 벌어졌던 장소입니다. 박진경은 제주 부임 한 달 만에 미군정으로부터 제주 토벌의 공로를 인정받아 중령에서 대령으로 특진합니다. 주한 미군 보고서에는 박진경을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지휘관'이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당시 미군정이 제주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려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옛 제주읍 안에 있는 이 건물은 아직도 골조가 남아 있습니다. 2층 외벽에 출입문이 달린 기묘한 형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옥성정이 있는 일대는 일명 ‘성안’ 혹은 ‘성내’라고 불립니다. 4·3 당시 제주도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당시 이곳에는 제주도청과 제주읍사무소가 있었던 것은 물론 갑자옥이라는 유명한 모자점을 비롯해 식산은행 등 금융업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제주 유일의 극장인 조일구락부와 언론사 제주신보사도 있었습니다. 이 장소에도 4·3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는데요. 기회가 닿을 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별도봉 일제동굴진지를 찾아 숲길을 헤쳐 나가는 답사팀
별도봉 일제동굴진지를 찾아 숲길을 헤쳐 나가는 답사팀

이어 찾아간 곳은 별도봉에 있는 일제동굴진지였습니다.

말 그대로 숲길을 헤치고 도달한 일제동굴진지는 군대 내 좌익 동조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불법적인 '숙군' 학살이 자행되었던 장소입니다.

사실 문상길 중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있었던 해방정국에서 군인의 신분으로 부당한 국가폭력에 항거하여 인민유격대(무장대)의 편에 선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찾았습니다.

4·3 당시 '숙군' 학살이 자행됐던 별도봉 일제동굴진지
4·3 당시 '숙군' 학살이 자행됐던 별도봉 일제동굴진지
별도봉 일제동굴진지 내부 모습
별도봉 일제동굴진지 내부 모습

당시 이 장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분의 증언에 따르면 총살을 하던 군인들은 '적기가'라는 노래를 부르며 총을 발포했다고 합니다.

이 장소에서는 2007년 초 유해발굴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총 8구의 유해가 수습되었습니다. 해방된 나라에서 같은 군인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이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잠시 멈춰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별도봉 일제진지동굴에는 유적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요. 여러 개의 안내판이 있었으나 어떠한 안내판에도 군의 불법적인 학살에 대한 내용을 명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별도봉 일제동굴진지 안내판을 확인하는 답사팀. 여러 개의 안내판이 있었으나 어떠한 안내판에도 군의 불법적인 학살에 대한 내용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별도봉 일제동굴진지 안내판을 확인하는 답사팀. 여러 개의 안내판이 있었으나 어떠한 안내판에도 군의 불법적인 학살에 대한 내용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개오리오름에서 한라산 방향을 바라보는 답사팀
개오리오름에서 한라산 방향을 바라보는 답사팀

마지막으로 찾은 장소는 개오리오름이었습니다.

개오리오름은 인민유격대 이덕구 사령관이 최후를 맞은 곳이라고 알려진 곳입니다. 개오리오름에 올라 한라산 방향으로 몸을 돌리면 한라산을 비롯해 물장오리오름, 평안오름, 살란이오름 등 인민유격대의 주요 활동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한라산과 여러 오름들이 산재한 모습은 이 세상 경관이 아닌 것처럼 장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문상길 중위가 사형을 당한 경기도 수색을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곳 개오리오름에서 조촐하게 위령제를 지냈습니다. 김경훈 시인은 추모시를 낭독했습니다. 최상돈 선생님은 용진가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용진가는 문상길 중위와 함께 총살된 손선호 하사가 형 집행 직전에 불렀다고 전해지는 노래입니다.

김경훈 시인이 문상길 중위에 대한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습니다.
김경훈 시인이 문상길 중위에 대한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습니다.
문상길 중위를 기리기 위해 올린 위령제
문상길 중위를 기리기 위해 올린 위령제
“우리가 박진경 연대장님을 사살하였으나 본인 개인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여긴다. 이 법정은 미군정의 법정이며 미군정장관 딘 장군의 총애를 받은 박진경 대령의 살해범을 재판하는 인간들로 구성된 법정이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중략) 이 법정의 성격상 당연히 총살형이 선고될 것이며 우리는 그 선고에 마음으로 복종하며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중략) 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하여도 하나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재판장은 장차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을 하여주기를 부탁한다.”
- 문상길 중위 법정 진술 中

문상길 중위는 법정 진술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순순히 인정합니다. 다음은 법정에서 문상길 중위가 한 발언으로 전해지는데요. 스물셋 청년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암살을 감행해야 했던 그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끝으로 문상길 중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인상 깊은 구절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암살은 살인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비극을 막고 자신도 죽음으로 내몬 암살은 무엇인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답사팀이 제주농업학교 옛터에서 모여 답사 일정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문상길 중위를 발자취를 따라 유적지를 답사하는 답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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