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한 '국·내외 과거사 관련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교류사업(이하 교류사업)'에 참여해 지난 1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광주와 순천, 대전 일대의 다크투어 유적지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사업은 4·3이 제주섬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제주도 밖에 있는 4·3 유적지와 4·3과 깊은 연관이 있는 여·순항쟁 유적지에 대해 알아보고 전국 과거사 단체와의 연대 강화를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소속 단체 관계자와 4·3 해설사 등이 참여했습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쁜 걸음으로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옛터와 광주경찰서 옛터, 광주형무소 옛터를 돌아봤습니다.
광주에서 오랫동안 역사를 연구해 오고 있는 현지 연구자에 따르면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옛터는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부터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이 벌어지기 전인 1946년 5월까지 조공 전남도당 본부가 자리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정판사 위폐사건 이후로는 미군정의 탄압이 격화되어 광주 시내에 정식 본부를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고 합니다. 조공 전남도당의 초대 도당위원장은 유혁이었고, 당시 농림부장이 제주 출신 윤석원이었습니다.
조공은 이후 1946년 11월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과 합당해 남조선노동당으로 거듭납니다. 4·3에 관해 설명할 때 등장하는 남로당이 바로 이 정당인 것이죠. 남로당에 관한 이승만 정부 및 미군정의 탄압은 1948년에 발발한 제주4·3과 10·19 여순항쟁을 계기로 극에 달합니다. 이 즈음부터 남로당 전남도당은 시내를 벗어나 입산하여 활동을 벌이게 됩니다.
현재는 의류매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어 발길을 옮긴 곳은 광주경찰서 옛터였습니다. 조공 전남도당 옛터로부터 도보로 10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경찰서가 있었던 곳으로 많은 항일 독립투사들이 고초를 겪었던 곳입니다.
앞서 조공 전남도당에 대해 설명해 주셨던 연구자분에 따르면, 4·3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에서 부인부를 이끌었던 고진희 위원장이 한국전쟁 발발 즈음하여 이곳 광주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역사적 인물이 최후를 맞이한 공간인 것이죠.
고진희 위원장은 4·3 무장봉기가 발발한 이후인 1948년 8월 21일부터 6일간 북조선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 인민대표자회의'에 안세훈, 김달삼, 강규찬, 이정숙, 문등용과 함께 제주도 인민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아울러 최고민인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안세훈, 김달삼, 강규찬, 이정숙과 함께 대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건물(무등빌딩)이 들어서 있고, 이 건물 한쪽으로 이곳이 광주경찰서 자리였다는 것을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광주형무소 옛터에도 다녀왔습니다.
광주형무소에도 전국의 다른 형무소와 마찬가지로 4·3 당시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 구금되었던 수형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집단학살이 되었는데요. 현재까지 약 200명가량이 이렇게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인근에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에서 세운 간단한 안내판이 있는데요. 지난 9월에 왔을 때 누구의 소행인지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에도 안내판은 훼손된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순천에 있는 여러 유적지도 둘러봤습니다. 그동안 여수는 몇 번 다녀왔지만, 순천에 있는 유적만을 다녀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순천 유적지 답사는 순천문화재단의 박병섭 이사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여·순항쟁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연구활동을 하신 박 이사님은 기행단을 이끌고 순천 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순천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순천 팔마공원에 있는 여순항쟁탑이었는데요. 이곳은 지난 2006년 4월 1일 시민들의 힘으로 건립된 이 탑은 여순항쟁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항쟁의 의의와 통일의 의지를 상징화한 탑이라고 합니다.
순천에서 여순항쟁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활동을 벌이고 있는 활동가분들과도 만남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두 지역의 연대와 결속을 강화해 과거사 문제에 대응하자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놀라웠던 점은 바로 이 탑 옆에 호남호국기념관이라는 곳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문을 연 이 기념관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국영웅'을 기리는 호남 유일의 기념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한 무리의 학생들이 이 기념관에서 나오고 있었는데요. 바로 옆 여순항쟁탑에는 잠깐이라도 머물렀는지 조금 궁금했습니다.
여순평화공원과 동천제방에도 다녀왔습니다. 여순평화공원(여순10·19평화공원)과 동천제방은 순천교를 사이에 두고 자리한 곳입니다. 순천교 옆으로 조성된 동천제방 일대는 여수 주둔 14연대 봉기군과 응원경찰이 순천 내에서 처음으로 전투를 벌인 교전지입니다.
이 전투에서는 봉기군이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여순평화공원에는 여순항쟁을 설명하는 안내판과 평화를 바라는 소망탑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순천에 가실 일이 있다면 꼭 방문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매산등 학살지에도 갔습니다. 이곳 역시 처음으로 찾는 곳이었는데요. 이곳은 1948년 10월 22일 국군이 이른바 '순천탈환작전'을 벌이면서 민간인들을 학살한 장소라고 합니다. 당시 26명의 민간인이 봉기군 협조 혐의로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후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정리위원회는 12명의 희생자를 밝혀냈습니다. 이곳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순천대학교도 여순항쟁과 관련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당시 순천농림중학교였던 이곳은 진압군의 주둔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제2여단 소속의 제2연대, 제3연대, 제12연대, 제15연대가 주둔했다고 하는데요. 민간인을 고문 취조하고 건물 뒤편에서 학살했다고 합니다. 순천경찰도 이곳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박병섭 이사님은 순천YMCA 회관에서 여순항쟁에 관한 강연도 해주셨는데요. 평소 여순항쟁에 관해 궁금했던 내용을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사뭇 친숙해진 대전에도 다녀왔습니다. 대전은 한국전쟁 등 과거사 관련 진상규명 및 연구활동이 활발한 지역 중 한 곳인 듯합니다. 심규상 오마이뉴스 기자님이 기행팀과 함께 움직이며 대전 내 유적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대전에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최대 7천명가량의 민간인이 학살된 골령골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4·3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수형피해자 수백 명이 학살된 장소입니다.
지난 10월 방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있었던 교회 건물이 철거된 상태였습니다. 앞으로 이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될 예정입니다.
기행팀도 당연히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조촐하게 제물을 차려 위령제도 지냈습니다. 마침 현장에 유족분이 오셨는데요. 최근 아버지가 이곳에서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는 이분은 우리가 차린 제단 앞에서 절을 하시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대전현충원에도 방문했습니다. 4·3 당시 학살을 주도했던 군 지휘관의 무덤을 찾고, 제주도 출신 항일지사들의 묘소도 찾아뵈었습니다. 제2연대 옛터도 다녀왔습니다. 이곳에는 제2연대 창설기념비가 있었는데요. 2009년에 세워진 시설물에는 "제주도 공비", "여수.순천 반란" 등 시대를 역행하는 표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지점입니다.
기행팀은 2박 3일 간의 짧은 일정 동안 광주와 순천, 대전의 유적지들을 돌아왔습니다. 몇몇 분들은 모든 유적지들을 처음 방문해보는 경험이었을 것이고, 어떤 분들에게는 꽤 익숙한 곳을 다시 찾는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제주다크투어가 실질적으로 이번 여정을 기획하고 준비했는데요. 이 기행을 준비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4·3이 우리 모두의 역사가 되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4·3을 알려 나가고 기억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