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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오리오름 중턱에서 볍씨학교와 강정내일노래단, 산오락회가 '이덕구 산전' 노래를 합창하고 있습니다.
개오리오름 중턱에서 볍씨학교와 강정내일노래단, 산오락회가 '이덕구 산전' 노래를 합창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13일 <이덕구 100년 예술동행> 행사가 제주도 내 일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를 비롯해 제주민예총,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제주대안연구공동체, 마중물이 공동 주최한 행사입니다. 제주특별자치도생태관광지원센터, 제주투데이, 그린힐사운드에서도 행사를 위해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우리 제주다크투어는 공동 주최 단체로 이날 함께했습니다.

올해는 제주4·3 당시 인민유격대 2대 사령관을 맡았던 제주의 마지막 장두 이덕구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날 행사는 이덕구 사령관이 태어나고 자란 고장은 물론, 그의 영혼과 육신이 서려 있는 여러 장소들을 돌아보며 삶의 궤적을 되짚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행사는 시, 소설 낭독, 기악, 합창, 안무 등 다양한 퍼포먼스가 함께하여 더 큰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종형, 김경훈 시인, 박연술 무용가, 산오락회, 마로, 볍씨학교 학생과 선생님, 제주작가회의 회원분들이 행사에 동행하였습니다.

동행의 출발지는 관덕정이었습니다. 이곳은 4·3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덕구 사령관이 최후를 맞은 후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전시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겨울 계절이 무색하게 따뜻한 기온 속에서 이덕구의 생애를 짚어가는 길에 나섰습니다.

지난 12월 13일 <이덕구 100년 예술동행> 행사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제주시 관덕정 앞 광장에 집결했습니다.
지난 12월 13일 <이덕구 100년 예술동행> 행사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제주시 관덕정 앞 광장에 집결했습니다.

관덕정에서 도보로 향한 곳은 산지천이었습니다. 산지천에는 이덕구 사령관의 시신이 화장된 계곡이 있습니다. 지금의 산지천은 하천정비 사업 등으로 콘크리트 벽이 세워져 있지만,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내천을 따라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이덕구 사령관의 시신이 화장된 곳은 산지천 본류에 세워진 오현교 다리 인근입니다. 오현교에서 내려다보면 하천 양가로 나무가 우거진 깊은 계곡이 나오는데 바로 그곳이 이덕구 사령관의 시신이 화장된 장소이자 그의 시신이 유실된 곳이라고 합니다. 화장된 그의 유해는 폭우에 불어난 냇물에 휩쓸려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이종형 시인의 시 낭송과 산오락회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원도심을 걷다가 옛 오현중학원 옛터도 지나쳤는데요. 이곳에서는 1947년 3·1절 28주년 기념대회의 본대회에 앞서 학생투쟁위원회가 사전 집회를 열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제주시 원도심 다크투어 유적지 지도)

<이덕구 100년 예술동행>에 동참한 이종형 시인이 산지천 오현교 인근에서 시를 낭송하고 있습니다.
<이덕구 100년 예술동행>에 동참한 이종형 시인이 산지천 오현교 인근에서 시를 낭송하고 있습니다.

이어 이덕구 사령관의 생가 터가 있는 조천읍 신촌리로 이동했습니다. 신촌리는 이덕구 사령관의 일가가 살았던 곳입니다. 현재는 터만 남아 있습니다. 이덕구 본인의 집터를 비롯해 이호구(큰형), 이좌구(작은형) 선생 등 바로 근처의 있는 형제들의 집터도 함께 가보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이덕구 사령관의 후손인 이명자 선생님의 생생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이명자 선생님은 이덕구 사령관의 큰형인 이호구 선생의 직계 손녀입니다. 이 선생님은 가문이 벌였던 항일운동과 학교 설립 등 마을 발전에 힘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적은 전혀 기록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하셨습니다. 이명자 선생님은 "숨죽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여태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다"라며 이런 취지의 행사를 열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경훈 시인은 이명자 선생님의 말을 이어 받아 "4·3의 정신은 자주독립과 해방, 통일이었다. 이는 항일운동의 맥을 이은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소년 이덕구의 놀이터였을 신촌리 포구 바닷가를 배경으로 시 낭송과 노래 공연도 진행됐습니다.

이덕구 가족묘도 방문했습니다. 정성스레 마련한 제물을 올렸습니다. 알지 못했던 이덕구 사령관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폭도'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몰살을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 국제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덕구 100년 예술동행>에 동참한 산오락회가 신촌리 포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덕구 100년 예술동행>에 동참한 산오락회가 신촌리 포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덕구 가족묘를 방문해 정성스레 마련한 제물을 올렸습니다.
이덕구 가족묘를 방문해 정성스레 마련한 제물을 올렸습니다.

다음으로는 개오리오름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덕구 사령관은 개오리오름 인근 어딘가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동행 참가자들은 이 오름 중턱에 자리한 작은 공터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바라보니 장엄한 산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옛날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촬영지였던 물장오리오름를 비롯해 평안오름, 살란이오름, 사라오름, 관음사 너머 어승생오름 등 많은 오름들과 한라산이 어우러진 모습은 장관 그 자체였습니다. 이곳이 4·3 당시 인민유격대의 주 무대였다고 합니다. 그들의 방대한 활동 반경을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정부를 위해 종횡무진 산길을 탔을 그들의 발걸음을 상상해봤습니다.

이곳에서는 산과 오름을 배경으로 멋진 무대가 꾸며졌습니다. 마로의 사물놀이 공연에서부터 제주작가회의의 문학 작품 낭송, 박연술 무용가의 검무, 산오락회 노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제주작가회의 김창집 작가는 그의 소설 ‘장두-섬에서 태어난 죄’의 마지막 부분을 낭독하며 감동을 더했습니다. “우린 아직 죽지 않았노라”로 시작한 볍씨학교와 내일강정노래단, 산오락회의 ‘이덕구 산전’ 합창은 동행 참가자들의 가슴을 울리며 큰 박수를 이끌어 냈습니다.

마로가 개오리오름 중턱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마로가 개오리오름 중턱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박연술 무용가가 개오리오름 중턱에서 검무를 추고 있습니다.
박연술 무용가가 개오리오름 중턱에서 검무를 추고 있습니다.
제주작가회의 회원들이 문학 작품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제주작가회의 회원들이 문학 작품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대표적인 다크투어 유적지인 알뜨르 비행장과 신축제주항쟁(이재수의 난)의 주역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제주대정삼의사비를 방문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에서 열린 중국 난징대학살 83주기 추모식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대정삼의사비 인근에서 신명나는 마로의 풍물 공연과 신재균 배우의 ‘장두’ 시낭송을 보며 이날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이덕구. 제주4·3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4·3을 온전히 알고 기억하기 위해 그에 관한 연구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를 조명하는 연구나 활동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덕구에 대한 단행본 한 권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온 수십 년 세월은 그에 대한 교묘한 흔적 지우기와 왜곡된 인식만을 남겼을 뿐입니다. 이는 4·3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꿋꿋이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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