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7월 12일 재판에서 군사재판 재심청구인 68명 중에 제주4·3 희생자 4명에 대한 추가심리를 법원에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법원은 김종민 전 제민일보 기자를 증인으로 채택하여 7월 26일에 추가심리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다가온 7월 26일(화) 오전 10시 30분, 추가심리 재판의 취재열기는 어느 때보다 높았고, 4·3 유족 및 관계자의 방청도 크게 늘었습니다. 검찰이 군사재판 수형인 4명에 대해 추가심리 요청을 한 것에 대해 많은 4·3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검찰의 사상검증 행태를 규탄하며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김종민 님은 제주다크투어의 자문위원입니다. 그는 1987년 제민일보에 입사하여 1988년 3월부터 2000년까지 4·3취재반에 소속되어 제주4·3 역사 전반을 취재하고 「4·3은 말한다」는 제목의 연재를 통해 4·3의 진실을 알려왔습니다. 2003년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현재는 2021년 7월부터 4·3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는 농사꾼이라고 본인을 소개했습니다.
검찰은 증인 선서를 마친 김종민 위원에게 위원회가 4·3희생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제외 기준 논의과정, 군법재판 수형인에 대한 희생자 결정과정과 기준, 군사재판 당시 근거에 의한 형량 구분 가능성, 기존 희생자 중 무장대 활동자 포함 여부 및 이들을 희생자 인정 및 불인정 사유, 이번 특별재심 청구인 4명에 대한 구체적인 희생자 결정 사유 등에 질문하였습니다.
김종민 위원의 답변을 요약하면 이러했습니다.
-「제주4·3특별법」에 따라 위원회에는 군·경이 추천한 위원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200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기각)을 토대로 희생자 제외 기준안을 마련하였음. 그러나 누구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근거로 입증될 때에만 제외 기준을 적용하였음.
- 그러나, 증인은 이러한 제외기준 마련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음. 「제주4·3특별법」은 「형법」과 같은 침해적 규율이 아니라, 억울하게 희생당한 제주도민을 위한 수혜적 법률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희생자를 제외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함. 다만, 당시 이를 결정한 권한이 있는 위치가 아니었으므로 그 과정을 지켜봤음.
-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는 존재하며, 이들의 유족 중에는 대법원까지 항소하여 결국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있음.
- 군법재판 희생자에 대한 취재를 할 당시에는 이들이 군법재판을 받았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웠음. 4·3 당시 군책임자들을 찾아 확인했고 군법회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음. 이후 진상조사보고서에도 군법회의가 정상적인 절차로 볼 수 없다고 기록됨. 구체적인 불법 군법회의의 증거는 몇몇 수형인희생자 유족이 형무소로부터 받은 엽서가 있어서 실제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음. 이후 추미애 국회의원과 함께 국가기록원에서 제주4·3 군사재편 수형인 명단을 확보하여 더욱 명확해짐.
- 국방경비법 자체가 관습법이었지, 당시 구체적인 법률이 제정되어 있지 않았음. 하여 관련 무효행정소송 모두 패소했음. 정상적 법률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헌재에서도 기각한 것임. 군법회의는 법적으로 맞지 않음.
- 당시, 수형인에 대한 형량 부여는 명단만 보아도 매우 엉터리였음을 쉽게 알 수 있음. 주소, 한자이름, 나인까지 동일한 이름이 두 번 기재된 사례가 있고, 별지도 원형량 기준으로 작성돼야하나, 감형된 형량으로 작성되어 있음. 추측 컨데, 사후에 작성된 것으로 봄. 죄질에 따른 형량이 아니라 형무소에 보내진 후에 형량이 형무소 기준에 맞춰 일괄적으로 작성된 것임.
- 수형인희생자 제외기준에 적용되는 분들은 <미군보고서>, <4·3무장투쟁사> 등을 교차하여 총 32명 정도로 제한할 수 있음. 70년 전이 지금과 같이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고, 통행이 자유롭지도 않았음. 때문에 당시의 무장대 및 제주 남로당의 수괴급 인물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음. 일부 이상한 단체들이 제출된 무장대 또는 남로당 조직도나 명단은 신뢰하기 어려움. 아예 터무니없이 작성한 것 같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기존의 자료들을 짜집기해서 작성한 것이지,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 볼 수 없음.
군법회의 특별재심, 왜 희생자 선정 적절성 여부 재심이 되었는가
앞의 모든 증인심문과정의 필요성 여부를 떠나서 이번 추가심리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분명 지금 진행되고 있는 특별재심은 「제주4·3특별법」제14조에 따라 군법회의 수형인 명단에 속한 제주4·3희생자 및 그 유족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법재판이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법률적으로 법적근거 없이 이루졌으며, 절차적으로도 조건을 갖추지 못한 매우 불법적인 방식의 처벌과 학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죄를 입증할 증거, 정당하고 충분한 재판과정, 영장에 의한 구속 등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모두 불법인 역사에 대해 그 희생자와 유족에게 재심을 통해 무죄선고를 함으로써 그 명예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고자하는 정부의 조치입니다.
이미 제주4·3희생자로 인정된 분 중에 군법회의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재심인데, 왜 검찰은 당시 군법회의에서의 죄 등을 따지지 않고, 국무총리 산하의 위원회가 이미 심의한 4·3희생자 인정여부의 적절성을 검증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검찰의 심리요청이 사상검증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불법적 군법회의가 진행될 당시의 죄목, 증거 등과는 무관하게 제주4·3사건 종결 이후의 희생자의 삶까지 왜 검증하려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검찰은 이번 과정을 통해 희생되신 분들이 다시는 이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재심을 통해 이를 더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위원회의 검증은 완벽할 수 없으며, 검찰은 우리나라 최고의 검증기관으로서 이를 검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검찰은 4·3희생자 인정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을 가졌다면 정확한 증거를 확보하여 이를 검증할 권한은 재심이 아닌 다른 사법적 절차를 거쳐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습니다. 희생자 인정 적정성이 재심의 과제가 아닙니다. 국회가 정말 수년의 입법활동을 거쳐 「제주4·3특별법」개정하여 특별재심 조항을 추가한 것은 국가가 매우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처벌하고 생명을 앗아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재심을 하는 것이지, 그 민간인의 희생자 선정여부의 적절성을 검증하라는 취지가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왜 검찰은 입법취지에 반하면서 까지 제주4·3 수형인 희생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것일까요?
검찰이 지키고자 하는 국민은 누구입니까?
검찰 홈페이지에서 검찰은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국가 최고 법집행기관으로서, 각종 범죄로부터 국민 개개인과 사회 및 국가를 보호하는 것을 기본 임무"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제주4·3 당시 검찰을 포함한 정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불법적 군법회의에 의해 무수한 국민의 안녕과 인권이 짓밟히는 아픈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검찰이 그 역사의 과오를 인정한다면, 제주4·3 군법회의 수형인 희생자에 대한 사상검증은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념적으로 여전히 국가 전복세력의 색출을 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출처가 분명한 증거와 관련 법에 근거한 적절한 사법적 절차를 밟으십시오. 검찰은 「제주4·3특별법」이 정한 취지와 내용을 훼손할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검찰이 재판 말미에 판사에게 출처가 불명확한 자료들을 검층하기 위한 심리 기간을 더 늘려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장찬수 부장판사는 "지난 70년 동안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자료를 어떻게 확인할 것이냐"라며 검찰측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이번 수형인들이 확실한 검증과정을 거친 재심이 진행되어야 또 다른 의혹제기를 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출처도 확실치 않은 자료를 가지고 왜 제주4·3 수형인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하려는지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