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화) 오전 10시 30분,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는 제주4·3수형인희생자에 대한 군사재판 직권재심 18차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1948년 내란죄로 기소된 고(故) 한평원님 등 4명과 1949년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기소된 고(故) 김은도님 등 26명, 총 30명에 대해 전원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망 오성용님의 조카 오OO님은 "큰아버지(망 오성용님)은 21살 때 대구형무소로 끌려갔다가 마산형무소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4·3때 큰아버지를 찾으러 가셨다가 돌아가셨습니다. 4·3으로 가문이 풍비박산나서 큰아버지의 시신도 찾지 못했습니다. 마산형무소에서 보낸 날짜를 기준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망 현봉원님의 5촌조카 현OO님은 "현봉원님은 제게 당숙 되십니다. 아버지께선 당숙과 형제처럼 지내셔서 그분 얘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듣기로 4·3때 가시마을의 피해가 심했는데, 당시 당숙께서는 열 여섯정도 되셨습니다. 피신하다가 잡혀가서 인천형무소에 가셨다가 6·25때 행방불명되셨습니다. 동네가 그 때 초토화되고 지금은 몇 가구 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진작 내려가셨지만 큰할머니께서는 혹시라도 아들이 돌아올까 봐 동네를 못떠나고 계속 계셨습니다."라고 사연을 전했습니다.
망 오방순님의 딸 오OO님은 "나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신지도 모르고, 8살때 부산 남의 집에 보내버리니까 부산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집에 들어와 평생을 고생하며 살았고, 죽으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어도 그게 허락이 안됩니다. 이번에 아버지 비석에 가서 제사를 지내려다, 글을 몰라서 남의 비석에 가서 술을 올리고 왔습니다." 라며 한 맺힌 사연을 전했습니다.
망 한기섭님의 5촌조카 한OO님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던 엽서가 기억납니다. 마산형무소에 계시던 셋째 할아버지(망 한기섭님)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당시 두려운 마음에 '마산형무소'라는 글씨를 지우개로 지웠습니다. 셋째 할아버지의 딸들은 4·3이후 육지로 떠나고 그 이후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재심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알리고 싶지만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망 김평수님의 사위 한OO님은 "장인(망 김평수님)께서 딸(한규숙님의 아내)을 낳고 혼인신고도 못한 채 4·3때 붙잡혀 가시고, 어머니(장모)는 재가를 해서 가버려서 남겨진 딸은 장인의 어머니께서 키우셨습니다. 입적을 할 데가 없으니까 장인의 어머니는 손녀를 친척의 딸로 출생신고 하였습니다. 호적상으로 아내는 장인의 5촌 조카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학교조차 다녀보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자라 저와 결혼했습니다. 장인이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르고 제사는 생일날에 지내다가, 아내가 '아버지 제사 때 어머니도 같이 모시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동네사람들에게 물어서 장모가 재가한 집을 찾았지만 이미 생사를 달리하셨고, 재가한 집에는 자녀가 없어 제가 직접 장모님의 제사를 모시겠다고 그 집안 사람들에게 계속 사정했습니다. 그 집안 사람들의 허락을 얻어 행방불명된 장인 헛묘 옆에 장모의 묘를 이장했습니다. 장인이 오늘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며 기구한 사연을 전했습니다.
장찬수 부장판사는 "유죄를 받으려면 그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의심이 안 들 정도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되는데, 이 서른 분에 대해 그런 증거가 전혀 없습니다"고 말하며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이날까지 직권재심을 통해 총 490명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날 재판에서 장찬수 부장판사는 직권재심 무죄판결의 후속 절차인 형사보상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형사보상이란 국가가 수사, 재판 등 형사사법권의 행사를 잘못하여 부당하게 미결구금이나 형벌의 집행을 받은 피해자에게 국가가 해당 손해를 배상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4·3 군사재판은 국가기록원에 형무내용 등 자료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보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장찬수 부장판사는 "직권재심을 기다리고 있는 유족들이 많아 최대한 서두르고 있습니다. 재심 절차에서 상세한 심리가 이뤄지면 형사보상 등 절차가 빨라지겠지만, 재심 절차가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재심 절차에서 상세한 심리가 이뤄지면 형사보상 등 절차가 빨라질 것이고, 세세한 심리 없이 재심이 진행되면 형사보상 절차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라며 "직권재심 이후 절차의 편의성만 좇으면 재심 자체가 지연될 수 있습니다. 유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군사재판 직권재심의 속도를 내는 것과 동시에 형사보상 절차가 조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