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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5일 김잔디 사무국장과 송진희팀장은 제주다크투어 대표이고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 부회장인 양성주 대표에게 '제주 4·3 특별법과 현안' 대한 교육받았다.

제주 4·3특별법에 대한 교육

김종민 자문 위원님의 “4·3이후 50년”*에 의해 4·3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4·3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거 같다.

1. 아무런 잘못 없는 양민학살

부모가 총살을 당할 때 맨 앞줄에 서서 박수를 치고 만세 부를 것을 강요 당한 주민들 , 굴 속에 숨었던 가족들이 아기울음 소리 때문에 들켜 몰살당하는 모습을 요행히 밖에 나왔다가 숨 죽여 흐느끼며 바라봤던 사람들 , 토벌대가 인근을 지날때 들킬까 두려워 우는 아기의 입을 틀어막았다가 자기 자식 질식사 시킨 어머니 , 이들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3때 빨갱이라는 손가락질 하나에 무수한 사람들이 즉결 총살 되었고, 월북한 사람들의 가족은 요시찰 인물이 되었다 공안기관에서는 일상업무 이지만 이런 일들이 도민에게는 얼마나 위축 시켰는지 연좌제와 관련한 피 해의식에서도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많은 증언자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억울하게 희생됐음에도 토벌대의 손에 죽었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은 물론자식들의 장래까지 막혔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제주도의회 4·3특위가 피해 조사를 벌일 때 신고를 기피하는 사람이 많았다.

반발심도 적당히 당해야 생기는 걸까, 너무도 참혹한 희생이 있었으나 반세기 동안 그 억울함은 외면당해 왔다. 주민들은 처절하게 좌절해 허무주의에 빠졌고 큰 피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 김종민, 4·3이후 50년, 2017, 『제주 4ㆍ3연구』, 역사비평사.

서로의 살림살이가, 숟가락 이 몇 개인지 다 알고 지낸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공동체 사회가 무너져 버린 그런 일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나의 아빠, 오빠, 동네 삼촌, 이모, 할머니, 어린 아기, 이런 분들이 눈앞에서 죽어가고 없어지는 일들이 7년 7개월 동안의 삶을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다.

그 이후의 삶 또한 가슴에 빗장을 걸들 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말하면 자식들이 연좌제니 또 다른 불이익을 받을까 봐 어떻게든 숨겨야 하는 세월을 또 보내고 지내신 거다.

이렇게 잘못 없는 자식들이 또 힘들게 살아온 세월이 있을 것이다.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세월이라고 생각된다.

2.역사 왜곡

역사 왜곡의 핵심은 한국 ㆍ현대사를 흑백논리로 단순화시켜 4·3을 '북한의 사주에 의한 공산폭동' 으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저지른 4·3의 참혹한 양민 학살극을 덮기 위해서 이런 논리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듯 하다.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굳어진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 란 무조건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 김종민, 4·3이후 50년, 2017, 『제주 4ㆍ3연구』, 역사비평사.

교육을 받으면서 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이것으로 어떤 일 등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었다. 제주도의 당한 일들이 빨갱이 집단이라서 그렇다고 나라에서 이야기 한 일들인 것이 된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말 할 수 있겠는가? 이 역사 왜곡은 이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 길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지난 1948년 4월3일 일어난 제주4·3항쟁은 5.10 남한 단독선거에 항거,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정당한 반미투쟁이었다.

4·3은 한국현대사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 김종민, 4·3이후 50년, 2017, 『제주 4ㆍ3연구』, 역사비평사.

반드시 고쳐야 할 일이고 반드시 명예회복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다.

3.해결해야 할 과제

4.3은 제주공동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도민의식을 크게 변화 왜곡시켰다. 그러나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연구는 극히 드물다.

4·3초기 무장대는 경찰 .서북 청년단이나 대동 청년단 등 우익단체원 그리고 토벌대에게 협조하는 우익 인사와 그들의 가족을 지목해 살해했다 이런 저런 형태로 무장대에게 희생된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약 1/10에 해당된다. 제주에서는 무장대의 살해 사건이4·3 문제 해결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4·3이란 숫자로서만 사건을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사정도 여기에 있다.

한.미 간의 비밀협약에 따라 미군은 1949년 6월까지 한국의 군대와 경찰을 지휘 ,통제 했다며 따라서 1945년 점령부터 1949년 6월말 철수 할 때까지 제주섬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극과잔혹 행위에 대해 미국은 단지 윤리적 책임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법률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 김종민, 4·3이후 50년, 2017, 『제주 4ㆍ3연구』, 역사비평사.
제주 4·3 이제 75주기를 맞아 4·3특별법을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좀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고 그 시대를 같이 아파하고 지내왔던 모든분들에 억울함이 없어지고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나아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 양성주, 4·3 유족 입장에서 바라본 제주4·3 특별법 전부개정의 의미와 과제.

제주도 도민의식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아픔을 알고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 시대의 무장대 든 토벌대이든 경찰이든 모두 우리의 가족들이었다. 그 아픔은 똑같다.

권력을 행사하는 그 누군가의 잘못은 우리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꼭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제주 4·3 하고는 연관이 전혀 없는 저는 제주 4·3에 대해 제주도민으로서 알아야 할 것은 아픔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아픔을 잘 나누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진정 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이익으로만 셈하지 말고 진정으로 아픔을 공유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된다.

2023년 3월 15일, 제주다크투어 사무실에서 활동가 교육 중에.
2023년 3월 15일, 제주다크투어 사무실에서 활동가 교육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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