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말] (사)제주다크투어는 지난해 11월 제주도 내 다크투어 유적지 100곳을 대상으로 그곳에 조성된 안내판 내용을 분석 관리상태를 점검하는 활동을 펼치고 이에 대한 결과는 <유적지 안내판 조사보고서>로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고 제주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주요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앞서 조사한 유적지 중 역사성, 보존의 시급성이 높음에도 유적지 안내판이 존재하지 않거나 안내판 내용이 부실한 10곳의 유적지를 선정해 시민들과 유적지 안내판을 만들어 보고 이를 알리는 시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는 지난 24일(토) 제주4·3 유적지 시민지킴이단과 함께 서귀포 4·3 유적지를 답사했습니다.
제주4·3 유적지 시민지킴이단은 그동안 제주다크투어가 조사한 제주4·3 관련 유적지 가운데 안내판이 존재하지 않거나 내용이 부실한 4·3유적지 10곳을 선정하여 안내판이 세워질 수 있도록 시민들과 함께 진행하는 캠페인입니다.
유적지 시민지킴이단원들은 첫 현장 답사에 앞서 2회에 걸쳐 제주4·3 유적지에 관한 사전 조사와 안내판 문구 구성 등을 위한 사전 모임을 하고, 지난 10일 제주시내권 4·3유적지 네 곳을 답사했습니다. (링크 : 지난 답사글 보기)
이날 답사에서는 마침 희생자 위령제가 열렸던 삼면원혼 위령제와, 토벌대의 손에 잡힌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학교를 기습했다가 도리어 함정에 빠져 전사한 무장대의 시신이 묻힌 '송령이골'에 다녀왔습니다.
◆시신이라도 찾았으면 원이 없을 텐데
사실 삼면원혼 위령제단(주소 : 서귀포시 하원동 762-1번지)은 저희가 애초에 선정한 유적지 10곳에 포함되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나 50년 이상 희생자 위령제를 열지 못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희가 선정한 유적지 10곳과 비슷한 성격을 띱니다.
삼면원혼 위령제는 제주4·3 기간 중 자국 군대와 경찰에 의해 희생된 서귀포지역(서귀면, 중문면, 남원면) 예비검속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매해 음력 6월 15일에 열리고 있습니다. 음력 6월 15일은 희생자들이 집단학살 당한 날로 추정됩니다.
예비검속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가 적과 내통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4·3 관련자들과 요시찰인문 등을 비밀리에 잡아들이고 학살한 조치를 말합니다.
위령제의 명칭이기도 한 '삼면원혼(三面寃魂)'은 예비검속으로 희생된 서귀면, 중문면, 남원면 등 세 개의 면(三面) 지역 주민의 원통한 혼(寃魂)을 의미합니다.
서귀면 등 세 지역은 당시 서귀포경찰서 관할지역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서귀포경찰서에 의해 서귀포 절간고구마창고에 구금되었다가 해병대로 넘겨져 집단학살됩니다.
당시 유족들은 유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찾지 못합니다. 그저 먼 바다에 수장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2004년에 세워진 위령제단 내 내력비에도 이와 같은 내용으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수십 년 만에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견됩니다. 지난 2007년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쪽 끝 지점에서 발굴된 유해가 DNA 감식 결과 서귀포지역 희생자인 것으로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삼면지역 희생자였던 것이죠.
이날 위령제에는 고령의 유족들이 참석했습니다. 헌화와 분향을 마친 유족들은 고인의 이름이 새겨진 위패에 술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 위패가 모셔진 희생자는 80여 명에 불과합니다. 전체 피해자가 2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체 희생자 규모조차 확인할 길이 없어 위패조차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찰 등 학살 책임이 있는 당국은 희생자 명단에 관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제주다크투어와 시민지킴이단은 삼면원혼의 해원을 위해 직접 준비한 제주(祭酒)를 올리고 헌화했습니다.
시민지킴이단 박대현 씨는 "제주에 있는 위령비를 보면 대다수가 위령비 윗부분에 무궁화나 태극기가 새겨져 있거나 태극기가 걸려 있는 국기게양대가 설치되어 있다"며, "역설적이지만 이런 위령비의 모양은 부당한 국가공권력 희생자들의 유족에게 안도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가족을 잃은 이후에도 본인들의 결백을 증명해야 했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무궁화와 태극기를 둘러야 마음이 편해지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침묵해야 하는 ‘송령이골’
시민지킴이단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있는 송령이골(주소 :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1974-3)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송령이골은 1949년 1월 12일 의귀국민학교에서 벌어진 군 토벌대(2연대)와 무장대 간의 전투에서 전사한 무장대원들의 시신이 집단 매장된 곳입니다.
이 시기는 4·3의 전개 과정 중 '학살의 국면'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주민이 희생되었던 시기입니다.
당시 의귀국민학교는 군 토벌대의 주둔지였습니다. 1948년 12월 26일부터 학교에 주둔한 토벌대는 주둔지 인근에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전개해 주민들을 찾아 학살했습니다.
일부는 바로 죽이지 않고 주둔지인 의귀국민학교로 끌고 왔습니다. 그렇게 단기간 토벌대에 의해 잡혀와 학교에 감금된 주민이 1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토벌대는 어떠한 기준도 없이 학교에 갇힌 사람들을 수시로 지목해 총살을 자행했습니다.
무장대는 수용된 주민들을 구하고 토벌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1949년 1월 12일 새벽 학교를 기습합니다. 그러나 기습계획을 미리 알고 있던 토벌대는 옥상에 기관총을 설치하는 등 만반에 준비를 한 채 전투에 돌입, 무장대 측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이른바 '의귀전투'라고 불리는 이날의 전투로 무장대원 51명이 전사합니다. 군 토벌대 측 4명이 숨을 거둡니다.
무장대원들의 시신은 학교 인근에 버려져 몇개월 동안 방치되었다가 토벌대의 지시로 의귀마을의 외진 곳에 있는 '송령이골'로 옮겨집니다.
무장대원들의 시신은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방치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04년 도법스님을 단장으로 하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송령이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관리가 이뤄지기 시작합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은 송령이골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표지판을 세우고 천도재를 지냅니다. 이후 매년 8월 15일이면 제주도 내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송령이골 벌초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송령이골이 있는 의귀마을에 4·3길이 개통되는데, 4·3길의 코스 중 하나로 송령이골이 편입됩니다.
그러나 의귀마을 주민들과 4·3유족들은 4·3과 관련해 무장대와 연관이 있는 송령이골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특히, 희생자 선정과 관련해 무장대와 엮인다면 여전히 4·3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주4·3특별법 상에는 무장대와 연관이 있다고 희생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존재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시민지킴이단원은 무장대의 시신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얕은 봉분 앞에서 사전 자료 조사를 통해 구성한 유적지 안내판을 들고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송령이골에 대해 설명해 주신 양봉천 전 현의합장묘 4·3 유족회장님은 "이제까지 송령이골과 관련해 무장대원들의 죽음을 '전사(戰死)'라고 표현한 것은 시민지킴이단이 처음"이라며, "지금도 송령이골에 대해 말하는 게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오늘 시민지킴이단이 이 답사를 온 것이 의미가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올해 2월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진정한 봄이 왔다'라는 말이 한동안 회자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늘진 곳이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송령이골이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주4·3이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송령이골에 묻혀있는 무장대의 죽음 또한 기꺼이 받아안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