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제주다크투어는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 다녀왔습니다. 작년부터 받고 있는 제주 4.3에 대한미국과 국제연합의 책임을 묻는 10만인 서명 전달식을 하기 위해서였는데요. 4.3희생자유족회 국제팀과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국제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주다크투어도 서명 용지 전달을 위해 함께 힘을 보탰습니다.
제주4·3에 대한 미국과 국제연합의 책임을 촉구하는 10만인 서명은 온라인에서 받은 5천여 명의 서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각종 행사와 거리 서명, 4·3평화기념관 방문객 서명, 단체별 서명 등 오프라인에서 일일이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서명을 받은지 약 1년 만인 2018년 10월 25일 현재 109,996명으로 10만인 서명 목표를 넘겨 이날 전달식과 함께 미국대사관에 전달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4·3에 대한 미국 책임을 촉구하는 서명에 동참한 것은 4·3에 대한 미국 책임이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명지 전달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서명에 참여했던 유족들과 청소년들이 서명에 함께한 계기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자발적으로 4·3에 대해 공부하고 학교 안팎에서 4·3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던 강서학생자치연합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기자회견에 함께했는데요. 강서학생자치연합 회장인 마곡중학교 서지혜 학생은 “4·3의 진실을 공부하고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어서 같이 4·3을 알리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며 “우리나라가 평화와 인권을 더 존중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함께 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마곡중학교 학생들은 올해 초, 사무실로 4·3 서명을 보내서 사무국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
기자회견을 마친 후, 5박스의 서명용지를 들고 대표단이 주한 미국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대사관에 이렇게 서명 박스를 전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경호가 삼엄한 가운데 제주4·3희생자유족회 오임종 회장권한대행과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정연순 상임공동대표,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강호진 집행위원장 그리고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가 함께 서명용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번 10만인 서명 전달은 제주 4.3에 대한 미국 책임을 묻는 활동의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제주다크투어는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와 함께 제주 4.3을 국제사회에 알려나가는 사업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제주4·3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10만인 서명을 전달하며
미국 정부에게 보내는 성명
우리는 오늘 제주4.3항쟁 당시 발생했던 대규모 인권유린과 주민 학살에 대한 미국과 국제연합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10만인 서명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고자 주한 미국대사관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1년 전인 2017년 10월 17일과 올해 4월 7일에도 이미 서명의 이유를 담은 성명을 대사관에 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미국 정부로부터 어떤 책임 있는 답변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오늘 우리는 서명지를 전달하면서 다시 한번 제주4.3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환기하고 합당한 조치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를 지배하던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고 나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과 북을 점령하였습니다. 조선(한국)은 패전국이 아니었고, 1천 년 이상 한반도에서 통일된 국가를 유지해온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점령은 일본군을 무장해제하고 식민통치체제를 해체하여 한국인의 독립 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한정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처음부터 군정을 실시한다는 포고와 함께 한반도 남쪽에 진주하였습니다. 미군정은 경찰을 비롯한 통치기구에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들을 재등용하였고, 미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한국 내 정치세력 관계를 폭력적으로 재편했습니다. 그리고는 일부 우익세력과 손잡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강행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인의 열망과 배치된 것일 뿐만 아니라 국제법상 점령의 원칙도 명백히 위배한 것입니다. 제주4·3과 관련한 미국의 가장 포괄적인 책임은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한국 민중들이 저항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미국의 점령체제와 점령정책 자체에 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친일파 청산과 통일 독립 국가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기 위해 1947년 3월 1일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미군정이 파견한 경찰이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던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미군정 경찰의 발포와 인명살상은 제주도에서 미국이 구체적으로 책임져야 할 첫 번째 사안입니다.
이 사태에 대해 미군정이 경찰의 잘못을 인정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했다면 무장충돌과 대규모 희생이라는 비극적인 사태가 뒤따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군정 경찰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총파업으로 항의하자 이를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로 단정하고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벌였습니다. 1년 사이에 2천 5백여 명이 체포·감금되었고 그 중 몇몇은 경찰서에서 고문당해 사망했습니다. 결국, 제주도의 일부 젊은이들이 무장봉기에 나서게 만든 이 대탄압이 미국이 책임져야 할 두 번째 사안입니다.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가 발발한 후에도 참극은 피할 길은 있었습니다. 당시 제주 주둔 국방경비대 9연대장이었던 김익렬 중령은 4월 28일 무장대 사령관 김달삼을 만나 무장해제를 포함하는 평화협상에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5월 1일 미군정 경찰의 통제 하에 있던 우익 청년단체 회원들이 오라리 마을에 불을 질렀고, 미군정은 이를 무장대 소행으로 몰아 평화협상을 파기했습니다. 더구나 당시 미군이 이 장면을 항공에서 영상으로 촬영하여 선전에 이용했습니다. 미군에 의해 기획된 위장작전(false flag)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건 직후인 5월 5일 딘 군정장관을 비롯한 미군정의 수뇌부는 제주에서 모여, 강경진압 방침을 결정하고 평화적인 해결을 주장하던 김익렬 중령을 해임했습니다. 무장봉기 발발 이후 평화적 해결의 길을 거부하고 무력충돌의 격화와 대규모 희생을 낳을 수밖에 없는 강경진압정책을 선택한 것이 미국이 책임져야 할 세 번째 사안입니다.
미군정의 강경진압정책은 실패했습니다. 5월 10일 남한에서만 치뤄진 총선거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지역 두 개의 선거구에서 선거가 무산되었습니다. 그 직후인 5월 12일 미 극동사령부는 제주도에 구축함을 급파하였습니다. 또 미군정은 5월 20일 경 미군 제6사단 제20연대장 브라운 대령을 제주도 최고 지휘관으로 파견하여 진압을 지휘하게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외국의 '전투 현장'에 미군 지휘관을 진압작전 책임자로 파견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원인에는 관심이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라고 말한 브라운 대령은 2주 안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제주도의 서쪽으로부터 동쪽 땅까지 모조리 휩쓸어 버리는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브라운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한 달 동안 수천 명을 연행하고 상당수를 사살한 이 작전은 오히려 주민들을 산으로 내몰아 대규모 희생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이 책임져야 할 네 번째 사안입니다.
1948년 8월 15일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봄까지 이른바 초토화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중산간에 있는 수백 개의 마을이 불태워지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대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다음의 일이지만, 미국은 이 대학살에 대해서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1948년 8월 24일에 체결된 한미군사협정에 따라 미군사고문단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보유하였고, 진압작전을 위해 미군의 무기와 정찰기 등을 지원했습니다. 로버츠 고문단장은 제주도에 파견한 고문관 버제스 대위를 통해 제주도 작전에 관한 모든 상황을 보고 받아 매주 정기적으로 주한미군사령관에게 보고했으며, 이범석 총리나 신성모 국방부장관의 군 작전에 관해 일일이 관여하였습니다. 로버츠 고문단장은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후 12월 1일 국방부 참모총장에게 계엄령에 관한 문서를 보내 계엄령이 실시될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초토화 작전으로 대량학살이 절정에 이르렀던 1948년 12월 18일 이승만 대통령, 이범석 국방장관, 채병덕 참모총장 등에게 서신을 보내 그 작전을 집행하고 있던 송요찬 중령이 ‘대단한 지휘력을 발휘했다’고 높이 평가하고 대통령의 성명을 통해 일반에 알리라고 권고했습니다. 이에 채병덕 참모총장은 훈장을 수여할 것이라고 답신했습니다. 이처럼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갖고 있던 미 군사고문단이 무차별 대량학살을 제어하기는커녕 초토화 작전에 직·간접으로 개입하여 학살을 부추겼다는 사실이 미국이 책임져야 할 다섯 번째 사안입니다.
진실은 일단 드러나기 시작하면 자신의 길을 갑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에는 시한도 없습니다. 미국은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계 미국인 12만 명을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에 대해 44년 만에 사과하고 보상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100년도 더 지난 선주민 학살에 대해 사과하는 결의안이 포함된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2007년 국제연합 제61차 총회에서 ‘선주민 인권선언’을 채택할 때에도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4개국이 반대했지만, 2009년 호주와 뉴질랜드, 2010년 캐나다에 이어 미국도 2011년에 여기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올해 70주년을 거치며 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은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제주4·3과 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제주4.3은 냉전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한반도 남쪽에 대소전진기지 역할을 할 친미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반인륜적 인권유린 사태입니다. 당시 제주 인구 27만 중에서 3만여 명이 희생된 대비극입니다. 이제 냉전은 끝났습니다. 탈냉전 시대는 인권과 평화에 기초한 정의로운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냉전 시대의 어두운 유산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오늘 제주4·3에 대한 미국과 국제연합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서명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면서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 미국은 제주4·3학살에 대하여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하라.
- 미국은 한국 정부 및 시민사회와 함께 제주4·3에 대한 미군정과 미군사고문단의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하라.
- 미국은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제주4·3에 대한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에 상응하는 피해회복 조치를 시행하라.
2018년 10월 31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 /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