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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70주년인 올해는 여순 항쟁 70주년이기도 합니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로 출병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여수 제 14연대 군인들. 그리고 이어진 학살.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순항쟁에 대한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은 갈길이 멀어 보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지난 10월 13일~14일 <열린 군대를 위한 시민연대>에서 기획한  “학살을 거부한 군인들-여순항쟁” 기행에 참가했습니다. 여순 항쟁 당시의 학살터, 봉기의 현장 등 제주와 너무나도 비슷한 현장들을 방문했습니다. 

여수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격납고의 흔적
여수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격납고의 흔적
여수 일제강점기 격납고 건너편에 있는 부서진 비행 활주로의 모습
여수 일제강점기 격납고 건너편에 있는 부서진 비행 활주로의 모습

제주와 마찬가지로 여수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격납고가 남아있습니다. 길을 건너 바로 앞에는 뚝 끊긴 비행장 활주로가 있습니다. 부서진 활주로를 보면 당시 격납고에서 나온 비행기가 바다 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근이, 70년 전 여순 14연대가 제주도민들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킨 장소입니다.

현재 한화케미칼 여수공장 자리. 멀리 보이는 왼쪽 굴뚝 아래가 봉기의 장소이다.
현재 한화케미칼 여수공장 자리. 멀리 보이는 왼쪽 굴뚝 아래가 봉기의 장소이다.

제주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없다며 봉기를 거부한 여수 군인들. 그리고 그 봉기에 자리에는 현재 우리나라 최대의 군수업체 중 하나인 한화의 공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전초기지로 활용 된 곳, 해방 이후에는 제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학살을 거부한 군인들의 정신이 남아있는 곳에 또 다시 평화를 깨트리는 군수업체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여수의 형제묘
여수의 형제묘

제주의 백조일손지지와 비슷하다 하여 여수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적지 중 하나는 '형제묘'입니다. 당시 종산국민학교(현 중앙초등학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 중 125명이 1949년 1월 13일, 이 곳에서 희생되었습니다. 시신을 켜켜이 쌓아 불을 지르고 그 위를 큰 돌로 눌러놓아 유족들은 타버린 시체에서 신원을 파악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 위에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었습니다. 70년 전, 항쟁의 불씨를 꺼트리기 위한 국가 폭력은 여순과 제주에서 잔학하게도 똑같이 나타났습니다.

만성리 학살지에 있는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만성리 학살지에 있는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뒷면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뒷면

형제묘에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만성리 학살지가 나옵니다. 이 곳에는 자그마한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가 있습니다. 골짜기 안에 있는 이 곳에서 당시 수백명이 희생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2009년,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집니다. 그 뒷면에는 여순 항쟁에 대한 자세한 설명 대신 말줄임표만 새겨져 있습니다. 비석을 세울 당시인 2009년, 여수시가 논란의 여지가 많다며 '학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자 유족들이 그렇다면 아무말도 쓰지 말고 말줄임표만 남겨 억울한 심정을 표현하자고 한 결과입니다. 2009년이면 제주 4·3특별법이 통과되고,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온지도 한참 지난 때인데 군대 내에서 일어난 여순 항쟁은 여전히 금기어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항쟁과 반란 사이에서 만난 여순항쟁> 주철희 박사 강연
<항쟁과 반란 사이에서 만난 여순항쟁> 주철희 박사 강연

여순 항쟁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여수에서 나고 자란 전문가, 주철희 박사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70주년을 맞는 제주 4.3도 올해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는 정명(正名), 바로 이름을 바로 찾는 일입니다. 여순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여순 반란, 사건, 항쟁.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려왔던 여순에 대해 주철희 박사는 여순은 '항쟁'이 맞다고 힘주어 이야기 합니다. 항쟁의 정의란 "지배권력의 부당한 억압 또는 불법적 행위에 대한 집단적 대중적 실천"이고 당시 제주 도민들을 학살할 수 없다며 군대의 부당한 명령에 거부한 여순 14연대 군인들의 행위는 항쟁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당시 여순 14연대가 봉기를 일으키며 발표한 글에 나와 있습니다. 

애국인민에게 호소함

우리들은 조선 인민의 아들, 노동자, 농민의 아들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명이 국토를 방위하고 인민의 권리와 복리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제주도 애국인민을 무차별 학살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출동시키려는 작전에 조선 사람의 아들로서 조선동포를 학살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 인민의 복지를 위하여 총궐기하였다.
1. 동족상잔 결사 반대 2. 미군 즉시 철퇴

제주토벌출동거부병사위원회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하는 여수. 그 곳에서 제주도민으로서 빚진 마음으로 여수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70년 전, 제주의 학살을 거부하며 끈끈한 연대의 마음으로 봉기를 일으켰던, 여순 항쟁의 정신을 온 몸으로 느끼고, 온 마음으로 연대하고 돌아왔습니다. 올해 초, 제주다크투어와 함께 제주 4·3 유적지들을 둘러본 전남 시민분들이 저희 손을 잡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제주 4·3이 70주년이라면 여순도 70주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제주를 기억하듯이 여순도 꼭 기억해 달라고 힘주어 이야기 하셨습니다. 제주 4·3에게 있어 여순은 끈끈한 연대의 현장입니다. 제주다크투어도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여순을 함께 기억하며 활동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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