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은 말한다' 는 총 5권까지 출판되었으며, 제민일보에 '4·3은 말한다' 의 제목으로 연재한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의 활약으로 제주4·3사건 진상조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대한 자료, 증언 등을 시기별, 지역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 이어 두번 째로 열린 이번 강독모임은 4·3기념사업위원회의 동아리 지원을 받아 기존 출판된 5권에 출판되지 못한 6권까지 2주에 1권씩 읽고, 최소 2회 이상의 현장답사와 저자와의 간담회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번까지 기존에 출판된 5권의 강독을 모두 마칠 예정입니다.
강독모임에서는 몇 주 전부터 답사 장소를 논의하다가 1, 2권에서 대부분 언급되는 제주 원도심의 4·3 유적지를 답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답사를 내부 구성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초대하여 진행하고, 무더운 날씨를 고려하여 오후 늦게 답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검토결과, 제주원도심의 4·3유적지는 20여 곳이었습니다. 각 장소별 답사 담당자를 정하고,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답사를 위한 사진자료, 유적지에 대한 정보를 담은 자료집을 간단하게 준비했습니다.
7월 9일(토) 답사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만난 강독모임 구성원들은 답사지 근처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그간 책을 읽으며 느낀 부분을 나누고, 달빛답사를 준비했습니다. 30분 전에 관덕정에서 달빛답사를 신청하신 분들을 기다렸습니다. 촉박한 홍보기간에도 8명의 시민들이 답사에 동행했습니다. 원도심 주민, 4·3의 역사를 알고 싶어 참여하진 분, 가족과 함께 참여하신 분 등이 함께 모였습니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은 오후 7시 제주 원도심 4·3유적지 달빛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답사 만남 장소이면서 답사의 첫 장소인 '관덕정'은 4·3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제주원도심 대표 관광이지만, 과거 오랫동안 제주 관공서, 금융, 문화, 교육의 중심에 위치한 시민의 광장이었습니다. 제주4·3의 역사가 시작된 1947년 3월 1일, 북국민학교를 중심으로 3만명에 가까운 제주도민이 모여 '3·1절 기념행사'를 진행했고, 행사 이후 해산하는 도민들은 자연스럽게 가두행진을 하며 동과 서로 무근성을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국민학교에서 관덕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6살 아이가 기마경찰의 말 발굽에 치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항의하는 사람들을 피해 제주경찰서로 향했고, 이후 폭동으로 오인한 응원경찰의 무자비한 발포에 6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는 '3·1절 발포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제주경찰서가 바로 지금의 관덕정 옆 목관아 입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당일 발포된 총에 부상을 입거나 돌아사진 분들 대부분이 관덕정 건너편 식산은행(현 농협 관덕로점) 근처에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보니 목관아에서 식산은행은 상당히 먼 거리로 당시 폭동을 일으킨 특정 시민을 향한 발포가 아닌, 무차별적인 발포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답사에 참여하신 분들로부터 예전에는 관덕정 앞 광장에 분수대가 있었고, 목관아 외대문 자리에 경찰서가 있고, 그 옆에 우체국은 아직도 같은 자리에 있다는 설명도 함께 들었습니다.
식산은행 옆 호텔 주차장은 미 CIC( Counter Intelligence Corps, 방첩대) 건물 옛터입니다. CIC는 '3·1절 발포사건'과 '3·10 총파업' 직후에 제주에 상주하기 시작했으며, 제주의 정치적 판도, 정치단체 활동 등을 담은 정보를 수집하고 직·간접적으로 제주도정, 제주4·3의 역사에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제주4·3 군경의 토벌작전 초기에 공로를 인정받아 제주로 부임된 지 한달 반에 중령에서 대령으로 승진한 국방경비대 박진경이 당시 승진 축하연을 열었던 곳이 옥성정 입니다. 관덕정을 바라보고 왼쪽 길로 들어가면 길 중간 왼편에 옥성정 옛터가 있습니다. 당시 제주시에서 가장 2층 규모의 요정이었으며 박진경 대령 진급 축하연에는 다른 식당의 요리사까지 출장을 올 정도로 성대했다고 합니다. 축하연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한 박진경 연대장이 다음날 새벽 부하들에 의해 총살을 당했습니다. 박진경 연대장은 취임 초기 기자들과 가진 자리에서 '제주도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민 30만 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라고 발언했을 정도로 과격한 지휘관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 등이 피살을 실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답사는 북초등학교로 이어졌습니다. 북국민학교는 1907년에 세워진 제주도 최초의 공립학교입니다.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렸던 장소입니다. 당시 민중들은 3·1 혁명정신을 계승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통일 민주국가를 세우자는 취지를 내세워 기념식을 진행하고, 이후 해산을 하며 행진했다고 합니다.
북초등학교를 바라보고 우측 실내골프장 건물(구 농협은행) 자리는 제주경찰감찰청 옛터입니다. 제주경찰감찰청은 제주지역 경찰의 지휘부로 4·3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게는 4개 관할 경찰서를 진두지휘해 무장대의 진압 작전을 수행했던 곳입니다.
관덕정에서 우체국 방향으로 더 가다보면 '칠성로길' 있고 양 옆으로 '칠성로 쇼핑타운'이 있습니다. 우체국 바로 옆 쇼핑타운 입구 왼쪽에상생모루 건물(구 감협)이 있는데, 이 자리에 갑자옥이라는 모자점이 있었고, 쇼핑타운 우측 상가에는 중앙이발소와 제주약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3곳은 모두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꿈꿨던 제주도의 민주주의 민족전선 간부들이 모임을 갖던 장소였습니다. 갑자옥 이상희 사장은 서울신문 제주지사장으로 1948년 10경 희생되었습니다. 중앙이발소 주인 김행백은 민전 선전부장이었고, 제주약방 김두봉 약사는 제주도립병원 약제과장을 맡기도 했으며 3·1 사건 후 앞장서 파업을 주도하고 이후 입산하여활동을 하다 붙잡혀 처형 당했습니다. 칠성로길 내부로 더 들어가면 우측에 하이파OA 가구총판 상점이 나옵니다. 이 상점은 옆 상점들과 가벽을 세워 운영되고 있는데, 모두 한걸물로 당시 2층에 제주신보사가 있었습니다. 현재 칠성로에 유일하게 예전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주신보’는 해방 이후 제주도의 유일한 언론매체습니다. 4·3 발발 후 편집국장 등이 군이나 서청에 끌려가 죽거나 수난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4·3 역사에 있어서는 당시의 진상규명에 가장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칠성로길과 중앙로가 만나는 쇼핑타운 끝에는 현내 네셔널지오그래픽 의류매장이 있는데, 이곳의 일부와 중앙로를 포함한 곳 건물2층에 서북청년단 본부가 있었습니다. 4·3 당시 서북청년단은 군경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제주도민을 학살했습니다.
칠성길로를 벗어나 중앙로를 따라 중앙사거리에 다다르면 왼편에 제주청년센터 건물이 나옵니다. 이곳이 제주도 인민위원회 옛터입니다. 해방 이후부터 3·1절 발포사건이 있기 전까지 항일 운동가들과 지역유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제주도의 치안공백을 최소화했으며, 특히 교육분야에서 집중해서 활동했던 조직입니다. 이념적 경계가 거의 없었음에도 4·3 전개과정에서 인민위원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대거 희생되었습니다. 인민위원회 옛터 좌측에 스타벅스와 그 건너편 PAT 의류매장이 있는 자리가 4·3 당시 9연대 헌병대와 정보과가 있던 곳입니다.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연행하여 고문하거나 학살했던 9연대 조직들입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업보육센터가 있던 자리가 과거 제주도립병원이 있던 곳입니다.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주변 발포사건으로 발생한 부상자를 근처 도립병원으로 옮기던 와중에 당시 도립병원에 입원해있던 응원경찰이 이를 오해하여 의료진과 환자 그리고 도민을 향해 발포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로 인해 행인 2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조병옥 경무부장(지금의 경찰청장)이 제주도에 방문하여 3·19 담화문을 통해 경찰이 도립병원에서 2차 발포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나 관덕정 앞에서의 발포는 정당방의였다는 억지주장을 했습니다.
제주도립병원옛터 서쪽 끝 길에서 관덕정 방향으로 내려가면 조일구락부(구 현대극장) 옛터가 나옵니다. 이곳은 당시 제주도의 큰 행사를 개최하는 대표적인 실내공간으로 1947년 2월 23일 민주주의민족전선 제주도위원회의 결성식 개최되었고, 같은 해 11월 2일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 결성식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비교적 최근까지 건물이 남아있었으나 보존되지 못하고 2020년에 철거된 것으로 압니다.
달빛답사의 마지막 답사장소는 제주읍사무소 옛터(관덕정 서측 노외공영주차장)였습니다. 칠성로길을 지나면서부터는 해가 사라지더니 답사를 마칠 때가 되니 어두운 밤이 되었습니다. 다행이 원도심은 늦게까지 하는 상가들이 많아서 답사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답사를 하면서 4·3관련 유적지는 아니지만 예전에 원도심 길목에 어떤 상점들과 건물들이 있었는지 답사참여자들이 설명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서로 모르던 것들을 알려주며 4·3의 역사를 기억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답사나 여행길에도 함께 동행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기고 답사를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