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영역으로 건너뛰기

2023년 7월 11일 오후2시 30분,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는 제36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재판이 열렸다. 이날 오전에 있었던 재판과 같이 일부 수형인 피해자는 형제 또는 부부였는데, 안타깝게도 4·3때 군사재판을 거쳐 육지형무소로 갔다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상천리 출신의 망 김성교와 김정교는 형제관계이다. 망 김성교는 국방경비법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마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한국전쟁 무렵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당시 마포형무소의 탈옥수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여 추정되었다고 한다. 그의 형제 망 김정교는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이들의 조카 양00는 이날 재판에 참석하여 "저는 4·3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제가 태어나고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나를 안아본 후 집을 나섰는데 그 이후 행방불명됐다. 외할아버지는 총살, 외삼촌은 육지형무소 끌려가서 행방불명되었다. 결국 양가가 자손이 끊겻다. 그래서 4·3하면 한이 맺힌다. 어릴 때부터 국민학교 정문 구경도 못했 봤다.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한이 깊다. 우리 어머니도 홧병으로 평생을 앓다가 7년 전에 돌아가셨다."라면 한 맺힌 소감을 밝혔다.

망 강원기와 가시리 출신 망 송갑정은 처남과 매부 사이였다. 망 강기원은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사형 선고를 받아 마포형무소에 있다가 한국전쟁 무렵에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망 송갑정은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있다가 1950년 7월 27일 군경에 인도된 후에 총살로 사망했다.

재판에 참석한 망 송갑정의 손녀 송00은 "15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제일 기뻐할 것 같다. 눈물로 평생을 사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끌려가는 바람에 평생을 숨어 살았다. 돌아가시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재판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 산소에 들려서 가겠다" 라는 소감을 남겼다.

망 김태민은 내란죄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관련자료를 찾지 못해 육지형무소에 보내져 행방불명 된 것으로만 추정된다. 그의 딸 김00은 재판정에서 "우리 집안에 아버지를 포함해 형제 세 분이 4·3때 돌아가셨다. 우리 아버지는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왔다. 집안이 괜찮았는데, 온 집안이 이상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혼자 키우기 어려워, 부산에 가서 일을 하시고, 우리는 할머니에게서 자랐다. 아버지는 끌려간 이후로 집도 불태워졌다. 굉장히 힘들게 살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 이 자리에 오니까 아버지가 보고싶다" 며 울먹였다.

망 안두병은 토산리 출신으로 4·3때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1949년 6월 28일 사형을 언도받았는데, 기록이 없어서 실제 사형이 집행된 것인지, 행방불명된 것인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양자 안00은 "4·3은 역사로 묻어두기엔 가슴이 아픈 사건이다. 나는 이제 79세이다. 그나마 전해 들은 얘기로는 나의 양부는 5촌지간인데, 어릴 적부터 대를 잇는다고 양자로 들어갔다. 지난 과거는 과거고, 이런 자리 마련해줘서 감사하다. 불효의 마음을 닮아 불러본다. '안두병 아버지!'"라고 발언을 마쳤다.

망 이원창은 광령리 출신으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마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한국전쟁 무렵에 행방불명 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심재판에는 그의 동생 이00이 배석하여 "그때 당시는 나이도 어리고 하니까 몰랐는데, 이번에(재심재판 과정) 자세하게 알았다. 오빠가 마포형무소에 있다가 편지 한 장 딱 받아보고 끝이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대한민국 법이 너무 고맙다. 이제는 4·3평화공원에 오빠의 표석까지 세워졌고, 비석 뒤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정말 고맙다" 라고 소감을 남겼다.

망 현수희는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인천형무소에 수감했다가 1949년 9월 27일 사망했다. 그의 조카 현00는 법정에 참석하여 "큰아버지는 결혼도 하기 전에 돌아가셔서 영혼결혼식을 했다. 시신이 없어서 묘가 없었다. 큰고모가 지금도 살아 계시다. 좀 크고 나서 4·3사건 때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내용을 듣고 나서, 세대 차이는 많이 나지만,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굉장한 고초와 아픔을 겪었구나 생각했다. 오늘 재판 결과에 큰고모가 제일 기뻐하실 것 같다. 큰아버지 잡는다고 큰고모도 고문을 당하셨었다"라는 사연을 밝혔다.

이날 방청석에는 양성홍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회장이 배석했다. 그는 판사에게 발언 기회를 구하여 "오늘 재판을 기점으로 무죄판결 받은 분이 1,031명이 되었다. 행불인희생자의 거의 절반이다. 유족들은 같은 마음이다. 우리가 이런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해서 이것이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되어 전 세계에 이런 아픔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라며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관련 글들

국내외 연대활동
2024.11.12.

[공동기자회견] 전쟁 프로세스를 평화 프로세스로! 윤석열 정권의 정책 전환을 촉구한다

자세히 보기
제주다크투어 이야기
2024.10.30.

참 정부가 무도하고 너무 악질이다

자세히 보기
제주다크투어 이야기
2024.10.30.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재판 있을 수 없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