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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5일 오전 11시,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는 제50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재판(사건번호 2024 재고합 9)이 열렸고, 이미 망인이 된 30명의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들은 제주 전역에 거주하는 평범한 도민으로 토벌대에 연행되어 적법한 절차를 보장 받지 못하였으며, 사형 또는 무지징역을 선고 받고 수감되어 열악한 형무소의 사정으로 옥사했거나 행방불명 되었다.

망 박창송은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손자 박00은 "아버지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옛날에는 자식들에게 얘기하지 않으셨다. 중학교 다닐 때, 경찰관들이 집에 가끔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 살면서도 연좌제의 영향으로 공무원은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망 김창희는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희생되었다. 그의 조카 김00은 "우리 부친에게 들은바로는 , 어렸을 적에 연좌제로 많은 피해를 봤는데, 백부는 선흘리에 살다가 보리밭을 갈러 갔다 왔는데, 누가 올라고 해서 나가서 나갔다더라. 이틀 있다가 누가 작은 아버지께서 함덕 해수욕장에 누워있다 하더라. 지게를 들고, 작은 아버지를 가마니에 말아서 이틀을 산에 올라가서 묻었다고 부친이 벌초할적에 말씀을 하셔서 들었다. 4.3 피해를 입으신 분들도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판사의 좋은 판단을 부탁한다.

망 강주남은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대전형무소에 보내졌고 행방불명되었다. 이날 재판에는 그의 외조카 김00과 외조카손자 김00이 참석하여 망인과 망인의 동생이자 김00의 모친이 겪은 가슴아픈 사연을 증언했다. 외조카 김00은 시에 심정을 담아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의 가슴앓이 병

4.3이라는 저주스러운 시운이 준
격한 설움은 한이 되어 
오목가슴에 가슴앓이 병 깊이 심고
한세상 살다 가신 어머니

초토화작전으로 마을은 불타고
외삼촌이 경찰에 붙잡혀 가자
외할머니는 남은 가족들
작은이모 외숙모 두 살과 여섯살 외사촌 오누이를 데리고 
이웃 노인들과 더불어 귀한 목숨 부지하려고
마을 근처에 있는 빌레못굴에  숨어들었네

동백이 빨갛게 피어나고 하얀 눈발 날라던 날
하늘도 태양을 가리고 검은 구름을 드리운
무자년 을축월 병오일

마을을 수색하던 토벌대에 빌레못굴이 발각되어 
나오면 살려준다는 회의의 말을 믿고
굴에서 나온 30여 명의 촌민들을 향해 무참히 총질하였지

눈망을 초롱초롱 할머니 품에 안겨 울부짖는
두 살배기 외사촌 동생은 억센 손아귀에 발목 잡혀 
돌담에 팽개쳐 핏덩이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네
맨 뒤에 기어 나오던 외숙모와 외사촌 누이는
총소리와 울부짖는 소리에 놀라 굴속 깊숙이 숨어버렸지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식도 못 차리고
살던 집 훤히 보이는
동산 밭 언덕바지에 묻을 때
어머니는 몇 번이나 혼절하였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외숙모와 외사촌 누이를 찾았지만
굴속은 얽히고설킨 미로로 높낮이가 매우 심해
20여 년도 더 지난 70년대 초엽 동굴탐사대에
나란히 누운 하얀 백골로 발견되어 할머니 옆에 묻혔네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실 낱 같은 희망으로 기다리던
대전형무소로 끌려간 외삼촌은
6.25때 행방불명으로 소식이 끊김으로
단란했던 친정 여섯 명의 식구를 삽시간에 잃어버리는
처참한 운명의 중심에 서게 되신 어머니

육신은 땅에 묻었지만
가족들 혼백은 가슴에 묻어
새벽녘이면 가슴을 쓸어안고
평생의 고질병을 안고 
눈물과 한숨의 세월을 살다 가셨네

시대의 소용돌이에 
이유도 없이 가족을 잃은 숱한 유족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수십 년 간이나 말 못하고 가슴앓이로 살아왔는지
핏빛 같은 동백꽃처럼 멍울진 아픔
이제는 해원의 빛 비춰주기를
어머니 떠나신 날 기도하네
- 망 강주남의 외조카 김00

망 강주남의 외조카 손자 김00의 증언이 이어졌다.

처음에 4.3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울 때는 이 내용이 아니었다. 북한의 김일성과 연관된 것이라 했었다. 진실을 알고 보니 그게 아니어서 가슴이 찢어졌다. 2살 아이가 돌에 내쳐서 살점이 다 트더 지고 뼈가 흩어져 수습도 잘 안 되었다고 하더라. 할머니께서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고자 하는게 많았는데, 아버지께서 말씀을 못하게 했다. 가해자는 아이러니 하게도 아는 사람이다. 4.3 당시 외가는 식당을 운영했는데, 무전취식하던 경찰이었다고 하더라. 그 경찰이 그렇게 했다는 것 자체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은 비극이 일어나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안 볼려고 한다. 6.25 이후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4.3이다. 할머니만 남겨 놓고, 가족이 몰살했다는 기록을 확인하는 순간 억장이 무너졌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올바른 판결 부탁드린다.
제주다크투어 방청 채록

이날 재판을 진행한 방선옥 부장판사는 30명의 망인이 된 피고인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어서 "2019년에 제주에 부임에 와서 4.3을 알게 되었다. 집 근처에 4.3유적지를 가보자 해서 처음 가본 곳이 '빌레못굴'이었다. 4.3 당시 추운 겨울에 이 길을 걸어갔겠구나 생각하면서 굴을 찾아 걸어갔다. 동굴 앞 안내판에는 오늘 증언한 시의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너무 끔찍했다. 그곳이 집 근처다보니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참 힘든 삶을 살아오셨겠구나 생각했다. 유족들이 어떤 위로의 말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해드렸고, 유족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라며 재판을 종료했다.

[관련기사] 빌레못굴에서 온 편지

오마이뉴스, 김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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