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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직권재심이 부산에서?

설을 며칠 앞둔 2024년 2월 6일(화) 15시에 제주4·3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군법회의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 재판이 있었는데, 그동안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렸던 것에 비해 예외적으로 부산의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개최되었다. 한 명의 생존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을 위해 제주지방법원이 옮겨 온 것이다.
직권재심 대상자인 오00씨는 작년에야 4·3희생자로 신고 되었는데 군법회의 수형인 중에 아직 신고를 하지 못한 258명에 대해 4·3유족회 차원에서 일관 신고를 했을 때 비로소 신고를 했지만 여전히 4·3희생자로 결정은 되지 못한 상태이다. 직권재심수행단(단장 강종헌)에서 직권재심 대상자에 대한 신원을 확인하면서 어렵게 오00의 신원을 어렵게 확인하였다. 하지만 오00씨는 1927년 생으로 나이가 95세이 이르러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서 거동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잘 들리지도 않고, 앞을 보는 것도 힘들어 하는 상황이었다. 직권재심재판부(강건 부장판사)는 부산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직권재심재판을 하는 것으로 전격 결정하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피신 중 붙잡혀

피고인 오00은 당시 남원면 소재의 초등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이었는데 산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자고 협박에 못 이겨 산에서 생활을 하던 중 경찰에 붙잡혔고, 지서에 잡혀가서 모진 폭행과 고문을 받은 후에 군인들에게 인계되어 1949년 7월 2일 국방경비법위반죄로 15년 형을 선고 받고 같은 해 7월 22일 대구형무소에 입감 되었다. 대구형무소에 수형인이 넘쳐날 때 1950년 1월 17일 부산형무소로 이감이 되었다가 1950년 10월 4일 마산형무소로 이감되었고, 1952년 3월 1일 3·1절 특별사면으로 7년 6개월로 감형이 되었다. 1954년 10월 26일 부산형무소로 다시 이감이 되었다가 1956년 2월 27일 형기종료로 출소 하였다.

묻어버린 고향제주

오00씨는 출소 후 자신에게 상처를 안겨 준 고향제주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육지에서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다.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으며, 교사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씨와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후 미술협회 등에서 활동하였고,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자녀들은 아버지 오00가 제주 4·3과 관련하여 수형생활을 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아버지가 제주에 관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서 제주를 고향으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에 공헌하고파

직권재심 담당 검사(검사 왕선주, 검사 이인원)는 피고인 오00이 당시 국방경비법 제32조, 33조의 위반 공소사실로 기소되었지만 이에 해당하는 증거는 제출할 것이 없다고 하였고, 재판부는 혐의사실에 대해 입증에 대한 책임을 검사에게 있음으로 아무런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공소장과 공소사실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하면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선언하였다.
오00씨는 “재판을 위해 멀리서 부산까지 찾아와 주신 것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하면서, "몸이 불편하여 자유로이 대화가 되지 못해 죄송하다"라며 좋은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와 고생하신 직권재심합동수행단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에 이바지 하면서 살아 갈 것”이라고 답변을 마무리 하였다.
오00씨의 딸도 재판 현장에 참석하여 방청하였는데 “아버지의 고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 “출장재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내려 준 관계자 분들께 감사”하다면서, “고향이 제주임을 앞으로 밝히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아직도 4·3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

많은 기자들이 현장을 찾아서 재판현장을 취재하였는데 오00씨는 마지막까지 실명을 밝히는 것을 거부하면서 “지금까지도 조용히 살았는데 나머지 삶도 조용히 살고 싶다”라면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였다. 출소 이후에 한번도 고향을 찾지 않았던 트라우마가 생을 마감을 앞두고도 지워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한편, 강건부장판사는 “이번 무죄판결을 통해 오00어르신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였는데, 법원의 인사이동으로 강부장판사에게는 이날이 마지막 직권재심 재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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