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크투어는 지난 7월 15일 저녁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 제주평화인권센터와 함께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의 신간《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북토크 행사를 열었습니다. 후기는 박래군 소장님의 발언을 위주로 정리하였습니다. 요조님을 비롯해 현장에서 다양한 질문과 의견으로 알찬 북토크를 만들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인권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니 대한민국의 역사가 다시 쓰여야 한다는 게 제 결론이었습니다.”
지난 7월 15일(수)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북토크에서 저자인 박래군 인권활동가(인권재단 사람)가 털어놓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이날 북토크에는 박래군 인권활동가, 가수이자 작가인 요조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사회는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가 맡았습니다.
행사에서는 제주4·3과 소록도, 세월호 참사,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습니다. 패널들은 여전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많은 분을 초청하지 못했지만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실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로 북토크를 생중계했습니다. 객석과 온라인 생방송에서도 많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4·3에서 세월호까지 이어지는 혐오의 역사에 대한 우려를 나누며 서로 간의 연대로 혐오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번 책의 첫 장은 제주4·3입니다.
왜 4·3을 가장 앞에 배치했냐는 질문에 박래군 활동가님은 ”제주4·3에서부터 대한민국의 역사와 인권의 역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현재까지 한국 사회 내 인권의 구조와 지형,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막강한 법률인 ‘국가보안법’이나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부정한 권력의 무기로 사용되어 온 ‘빨갱이’ 담론의 뿌리를 좇다 보면 제주4·3에 다다른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없어져야 할 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구상한 2011년도에 인권현장 기행의 첫 시작을 제주4·3에서부터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맞는 결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는 제주4·3의 정명(正名)과 관련해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많다. 이분들이 목소리를 내셔야 한다. 이것들이 세상에 나온 이후에야 4·3의 정명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소록도’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소록도는 오랜 기간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섬입니다.
위에 집단 ‘거주’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 섬에 시설이 만들어진 1910년대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한센인들은 뭍과 분리된 채 섬 안에 격리되었습니다. 일제가 만든 시설은 해방 후 한국 정부가 이어받아 그대로 ‘관리’했다고 합니다. 1984년 교황께서 다녀간 후에 조금씩 나아졌다고 하지만 2000년대 이전에는 섬을 벗어나기 위해 외출증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목소리가 작은 자들에 대한 차별의 관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센인 남성들을 거세하거나 한센인 여성들을 상대로 낙태를 자행하는 검시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진으로 본 수술대 위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망에 몸부림쳤을지 생각했습니다.
책에 인용된 한센인 시인 이동의 <단종대> 일부가 그 절절함을 더했습니다. 단종대의 단종은 말 그대로 종(種)을 끊는다(斷)는 뜻입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이동, <단종대> 중에서
끔찍한 역사를 갖고 있는 소록도 내 시설이 한국의 복지시설의 원형이라고 합니다. 인권 차별의 상징과도 같은 이 시설을 본떠 뭍에서의 시설들이 만들어진 것이죠. 최근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재조명을 받게 된 ‘형제복지원’ 시설도 소록도 시설을 원형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는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계승됐던 것입니다.
“목숨값이 너무 싼 사회…4·16 이후에는 바뀌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패널들의 말이 느리고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아마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을 얘기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겠지요. 제주4·3이나 소록도는 간접적인 경험이었다면,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동시대에 직접 겪은 일이니까요.
특히,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초반부터 현장에서 활동을 해왔던 박래군 활동가님의 얘기는 더욱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세월호 초기 1년 6개월 동안 혼자서 울면서 버티고 술을 마시며 견뎌야 했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세월호 관련 사진을 띄우고 조곤조곤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험 많은 활동가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래군 활동가님은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게 4·16연대와 운동을 한 사람들이 가진 생각 중 하나다”라며, “목숨값이 너무나 싼 사회, 안전은 비용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연간 1만5천 명이라고 합니다.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도 연간 2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제주4·3이 벌어진 7월 7개월 동안 3만여 명이 학살된 것을 생각해보면 현재의 한국 사회가 건강한 사회는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단원고등학교 기억교실이 기존 단원고 교내에서 자리를 옮겨 안산시교육지원청 인근에 터를 잡는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교실에 있던 책·걸상, 분필, 달력, 에어컨 등 2학년 10개 반과 교무실을 그대로 옮겨 복원한다는 계획입니다. 현재는 공사가 진행 중이고 내년 4월쯤에 정식 개관한다는데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얼마 전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에 대한 내용도 다뤘습니다.
박래군 활동가님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한탄하셨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있는 법이 우리는 일부 세력 때문에 이제야 국회에서 발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미국에서는 유튜브 등에서 인종주의적, 나치즘적인 차별적 콘텐츠를 올리는 것이 제재 대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렇지 못한 실정입니다. 4·3 등 우리나라에서 자행된 국가폭력도 정치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법안 하나 생긴다고 해서 모든 차별이 한순간에 없어지진 않겠지만, 차별을 없애는 하나의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이런 후기 글을 쓸 때는 항상 끝마무리가 고민입니다. 뭔가 그럴듯한 말을 남겨야 할 거 같거든요. 고민을 하다가 이번 북토크의 가장 핵심을 되는 말이 있어 인용합니다. 《우리에겐 기억할 역사가 있다》 책 가장 뒷부분에 나온 글귀인데요, 행사장에서 요조님이 이 부분을 낭독하기도 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일부는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렇지만 훨씬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역사적 사실들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는 한 그 역사는 반드시 바뀌게 되어 있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고 권력이 도전받을 때 역사는 다시 쓰인다. 우리는 지금 범죄가 정당화된 권력의 역사를 지우고, 더디더라도 인권의 역사를 새로 써가는 과정에 있다고 믿는다.”
기억을 기록하는 힘을 믿으며 활동하고 있는 제주다크투어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