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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가 제주 MBC 라디오 제주시대 '오늘의 시선' 코너에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로 도민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1월 29일 방송된 첫 시간은 <교과서를 통해 본 제주 4·3의 기억>이라는 주제 아래 최근 바뀐 4.3 관련 고등학교 교과서 집필 기준이 주는 의미를 짚어보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일본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은 오키나와의 다케토미정 이야기와 최근 논란이 되었던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회의 이승만 결의안 이야기까지 시민의 힘으로 역사를 바로잡은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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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방송에서는 <교과서를 통해 제주4·3의 기억>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습니다

[대담 내용]

윤: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으로 찾아옵니다.

오늘은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와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백: 안녕하세요, 백가윤입니다.

윤: 본인 소개를 좀 해 주시죠.

백: 저는 제주다크투어 대표를 맡고 있는 백가윤이라고 합니다. 제주다크투어는 비영리 사단법인이구요. 아울러 40여 개 제주도 내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고 있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에서 국제연대위원장도 맡고 있습니다.

윤: 네, 반갑습니다. 제주다크투어 이제 출범한지 3년차를 맞았다고 하죠?
청취자들께 잠깐 제주다크투어 지난해 활동 중 몇 가지를 소개해 주신다면?

백: 올해로 3년째를 맞았고요, 2019년 가장 많은 활동은 아무래도 4·3평화기행이겠죠, 2019년에 저희 단체와 함께 4·3 유적지를 둘러보는 평화기행에 참가하신 분들이 국내, 국외를 통틀어 약 1,500명 정도 됩니다. 인상 깊었던 점은 4·3 70주년에 한 번 오셨던 분들이 다른 단체를 데리고 오시거나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둘러보고 싶다며 오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작년에는 무엇보다도 유엔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을 제주까지 모시고 와서 국내 과거사 단체들과 함께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이 특히 의미가 있었고요. 그 인연으로 9월에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함께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해 4·3을 직접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윤: 참 다양한 활동을 하셨네요, 그럼 오늘 백 대표님 첫 시간인데요, 백 대표님께서 준비해 오신 <첫 시선>이 뭘지 궁금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건가요.

백: 네, 제가 4·3과 과거사 문제에 대해 현장에서 활동도 하고 공부도 하다 보니 첫 시간은 <교과서를 통해 본 4.3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해 왔습니다.

윤: 네 그렇군요, 최근에 4·3에 대한 교과서 기술 방식이 변화되는 등 과거와는 확실히 변화가 예상되는데요. 저희 방송시간에 다루긴 했었습니다만 한 번 더 달라지는 4·3교과서 내용을 압축해서 설명해 주시죠.

백: 기사도 많이 나왔고 방송을 통해서도 보셨겠지만 올해, 그러니까 2020년부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4·3이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무장봉기” 내용으로 기술될 예정입니다. 벌써 1월이다 보니 교과서들이 시중에 나왔는데요. 제주교육청이 제안한 4.3 집필 기준이 반영되어 4.3 관련 서술 분량이 늘었다고 합니다. 동아출판사는 “냉전과 분단, 탄압에 대한 저항”이라고 서술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여전히 저희 기행을 오시는 분들 중에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4·3을 '폭동'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다고 기억하는 분들이 아직도 계시다는걸 생각하면 이번 교육부 지침은 큰 한 걸음이라고 볼 수 있지요.

윤: 사실 이렇게 4·3교과서 내용이 대폭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교육청뿐만 아니라 4·3 단체들의 노력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들어가서 4·3을 교과서 등을 통해서 기억해 온 내용이 변화가 있었을 텐데요. 어떻습니까? 백 대표님 과거 4·3에 대한 교과서 변천과정 소개해 주실까요?

백: 교과서에 기술된 4·3은 특별법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요. 특별법이 만들어진 해, 그러니까 2000년 이전에 4·3은 모든 교과서에서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1960년대 2차 교육과정에서는 “소련이 북한에 괴뢰정권을 세우고, 대한민국을 파괴하기 위해 일으킨 폭동 중 하나‘로 되어있고 1970년대인 4차 교과과정에서는 ’북한 공산자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후에도 ”폭동을 일으킨 공산주의자들이 경찰과 민간인을 학살했으나 군경의 진압작전과 군인의 협조로 평화를 되찾았다“는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분위기와는 정말 다르죠.

윤: 4.3 특별법이 1999년 12월 제정되고 2000년에 공포가 됐는데요, 그러고 보니 올해가 4·3특별법 공포가 된 지 20년째이기도 하네요, 특별법 제정 이후 4,3 교과서의 변화는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백: 아무래도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가 발표되다 보니 그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이 변화되게 됩니다. 특별법이 통과되었을 때는 7차 교육과정 기간이었는데요. 그 때는 제주 4·3이 좌우대립과 사회혼란의 심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 이후부터는 전개과정과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에 초점을 맞춰서 기술되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2000년 이전보다는 그 전개과정이나 이유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지요.

윤: 그런데 4·3 특별법 제정 이후인 박근혜 정부에서는 4·3을 폄훼하려는 교과서 논란도 있지 않았습니까?

백: 그렇죠, 4·3의 경우에도 2013년, 박근혜 정부 시기에 교학사에서 출판한 교과서는 “제주4·3폭동 진압과정에서 많은 경찰과 우익인사가 살해당했고,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됐다"는 기조로 4·3을 기술하면서 유족회를 비롯해 제주 시민사회단체가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4·3만이 아니라 과거사 전반에 대한 왜곡된 사실 등을 담은 국정교과서 채택 논란으로 당시 사회적 파장과 반발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실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하는 것 자체가 국제기준이나 권고에 위반되는 것인데요. 유엔은 단일 역사 교과서의 위험성과 다양한 역사 교과서 발행 보장을 계속 권고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 유엔은 베트남 정부에게 “역사에 있어서 단 한 개의 객관적 사실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국정 역사 교과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지요. 다행히 국정교과서 시도는 철회되었지만 시민들이 제대로 감시하지 않으면 역사가 뒤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윤: 그렇군요. 자 그러면 실제 백 대표님이 진행해주셨던 4·3 평화기행과 관련해서 전국에서 교사분들도 오셨을 텐데요, 어떻습니까? 실제 4·3 유적지 현장을 찾았던 교사들의 반응은?

백: 저희가 올해 초에 작년 사업을 평가하면서 저희 평화기행에 어떤 분들이 가장 많이 오셨나 돌이켜보니 바로 선생님들이시더라고요. 아무래도 교육 현장에 계시다보니 이런 역사 문제에, 특히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달할지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윤: 4·3 유적지 가운데 교사분들이 특히 관심을 가졌던 곳도 있을까요?

백: 북촌 너븐숭이에 가면 현기영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한 공동체가 멜싸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말이야. 이념적인 건 문제가 아니야. 거기에 왜 붉은색을 칠하려고 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누이가 능욕당하고, 재산이 약탈당하고,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친구가 고문당하고, 씨멸족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항쟁이란 당연한 거야.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 게 인간이란거지.” 이 이야기를 읽고 4·3의 정신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4·3때 많은 분들이 희생당한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는지, 당시 사람들이 외쳤던 구호는 무엇인지 그 배경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윤: 교과서라는 게 어떤 역사적 기억에 대한 세대전승의 중요한 매개체일 텐데요, 해외에서도 교과서 논란이 있었을 텐데요. 이웃 일본의 오키나와도 교과서 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백: 오키나와는 제주와 매우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2차 세계대전 막바지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자 일본군이 오키나와에서 ‘옥쇄작전’을 진행하면서 당시 약 1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오키나와 현민의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 일본군의 집단자결 명령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2007년 문부과학성이 역사 교과서에서 ‘일본군에 의한’이라는 주어를 삭제하도록 하면서 마치 오키나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혹은 미군에 의해 살해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도록 해 큰 논란이 됐었습니다. 오키나와 현지 사람들은 오키나와는 집단자결이 아니다, 집단학살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윤: 중앙정부와 지역주민간의 역사의 기억에 대한 해석차이가 심각하게 나타났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오키나와 주민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백: 우리나라는 각 학교별로 교과서를 채택하는데 일본은 지역의 교육위원회가 교과서를 채택합니다. 우리로 치면 제주시, 서귀포시 교육청이 그 지역 교과서를 채택하는 셈인데요. 오키나와에 다케토미정 이라고 하는 우리로 치면 제주도의 우도 같은 곳에서 바로 이 교과서 문제가 불거지게 됩니다. 2011년, 다케토미정이 속해있는 아에야마 지역에서 극우 계열의 이쿠호사 교과서를 채택하기로 한거죠. 참고로 다케토미정은 오키나와에서도 가장 전쟁의 피해가 극심했던 곳입니다.

윤: 지역 교육위원회가 채택한 교과서를 지역 주민들이 반발해도 괜찮았었나요?

백: 네 여기가 놀라운 부분인데요. 2011년 다케토미정은 아에야마 지역에서 채택한 이쿠호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고 위에서 말씀드린 오키나와 주민들의 집단자살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는 도쿄서적 교과서를 채택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자 당시 아베 정권이 다케토미정 결정이 위법이라며 원칙적으로 무상 지급하게 되어있는 교과서를 다케토미정에만 지급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지역 주민들이 그렇다면 우리 돈으로 교과서를 사서 우리 지역 학생들에게 지급하겠다며 자체적으로 도쿄서적 교과서를 구입해 학생들에게 지급하게 됩니다.

윤: 그렇다면 2020년 다케토미정의 교과서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백: 2014년 교과서무상조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교과서 선택을 시, 군 단위에서 시정촌으로 세분화 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 조항 덕분에 다케토미정은 야에야마 지구에서 독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윤: 오키나와도 기억을 둘러싼 교과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있었네요, 자 그럼 교과서 야기는 아니지만 지난주죠, 하와이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백: 지난 1월 중순이죠,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회가 이승만 대통령의 날 제정 결의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저희 단체 페이스북으로 하와이에 있던 미국 활동가가 제보를 해왔는데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호놀룰루 시의회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정말 결의안이 올라왔더라고요.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 정착한 2월 3일을 ‘이승만의 날’로 기념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윤: 호놀눌루 시의회에 직접 결의안이 제출됐던 거군요,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백: 호놀룰루 시의원 9명 중 2명이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는데요. 이승만 대통령 관련 내용 가운데 4·3이나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 이야기는 당연히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고, 대통령직에서도 자진해서 사임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4.19혁명을 통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것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지요.

윤: 그렇다면 4·3 단체들을 비롯해 과거사 단체들로서는 반발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요.

백: 소식을 듣고 마음이 다급해져 15일-16일 하루 동안 호놀룰루시의회 결의안 철회 촉구를 요구하는 서한문을 쓰고 연명을 받았는데 무려 국내외 250여 개 단체가 참여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주말 동안 정말 많은 단체가 연명 의사를 밝혀주셔서 저도 깜짝 놀랐는데요. 무엇보다도 우리 4·3 희생자유족회를 비롯해서 한국전쟁 유족분들이 정말 많이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저한테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 꼭 막아야 한다고, 애써달라고 부탁하신 여순항쟁 유족회 어르신도 계셨어요.

윤: 그렇게 해서 서한문 등을 전달하고 결국 호놀룰루 시의회에서 결의한 처리는 어떻게 됐나요?

백: 호놀룰루 시의회 공식 회의가 열렸던 1월 21일 의회에서 결의안은 공식 철회되면서 일단락이 됐습니다. 한국에 있던 저희뿐만 아니라 하와이 현지 활동가들, 현지 교민들 등 각계각층 다양한 분들이 많이 애써주신 결과입니다. 특히 하와이 활동가들은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오래 전부터 연대해 오면서 이미 제주4·3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결의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더 빨리 파악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윤: 일단은 다행이네요, 어떻게 보면 시민들의 힘으로 이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보이네요, 다시 4·3과 교과서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4·3에 대한 교과서의 새로운 기술을 계기로 4·3을 다음세대에 전승하기 위한 과제 같은 게 있을까요?

백: 이번에 4·3을 ‘통일정부 구성을 위한 무장봉기’로 기술하기로 한 것은 굉장한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4·3이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7년 7개월 동안 일어난 복잡한 사건이니만큼 그 배경과 발발의 이유 등을 제대로 파악해야지만 그 희생의 원인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제주 4·3에 대해 “많은 희생이 있었던 사건” 이라고 뿐만이 아니라 왜 4·3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와 함께 4·3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윤: 네,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 나누겠습니다.

오늘 첫 시간이었는데 어떠셨나요.

백: 첫 시간이라 부족한 점이 많았을 텐데 잘 이끌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더 알찬 이야기로 찾아올 수 있도록 잘 준비해 오겠습니다.

윤: 지금까지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님과 함께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 네, 감사합니다.

제주MBC 라디오제주시대

2020년 1월 31일, 제주MBC 라디오제주시대 <오늘의 시선>에서 백가윤 대표의 대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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