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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가 제주 MBC 라디오 제주시대 '오늘의 시선' 코너에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로 도민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지난 7월 8일 방송에서는 <과거사법 개정안 국회 통과와 외국의 과거사 청산 사례>을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대담 내용]

윤 :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으로 찾아옵니다. 오늘은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백 : 안녕하세요. 백가윤입니다.

윤 : 원래 여름 방학 때 제주 다크투어를 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요즘 제주 4.3 유적지를 보기 위해 제주를 찾는 분들의 수는 어떤가요?

백 : 아무래도 코로나 19도 잠잠해질 것 같더니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장마도 시작되는만큼 기행을 오시는 분들이 작년에 비해서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제주에 오지는 못하시더라도 온라인에서라도 제주 4.3을 기억하시면서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 꼭 제주를 방문하겠다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여전히 4.3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윤 : 현장에는 오지 못하지만 여전히 4.3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시다니 반가운 이야기네요.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오셨나요?

백 : 네, 제주에서는 아무래도 4.3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슈이지만 한국 전체로 봤을 때는 4.3 이외에도 다양고도 많은 과거사 이슈들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성노예나 강제동원 문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군부 독재 시절 고문 및 조작간첩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는 긴데요. 오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의 진실화해위원회 활동과 더불어 다른 나라의 사례도 살펴보려 합니다.

윤 :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지난 5월, 20대 국회 거의 끝무렵에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소위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는 보도가 되었는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백 : 말씀하신 대로 원래 2005년, 과거사법이 제정되었고 그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가 약 5년간 활동을 했습니다.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포괄적 과거청산’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 논의입니다. 그렇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여러 가지 한계를 남기고 그 활동을 종료하게 됩니다. 활동이 종료된 후, 10여 년 동안 유족들은 과거사법을 개정해 진화위 2기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20대 국회 마지막, 형제복지원 생존자인 최승우씨가 국회 의원회관에 올라가서 시위를 펼치는 등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지난하고 오랜 싸움 끝에 드디어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지요. 이를 바탕으로 2기 진화위 활동도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윤: 그렇군요. 오랜 유족들의 바람이 드디어 현실로 이뤄졌으니 기대도 클 것 같은데요. 이전과 달라진 점은 무엇이 있나요?

백: 1기 진화위는 1년이라는 짧은 신청 기간과 미흡한 조사 권한으로 아쉬움을 남긴 채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올 하반기 출범할 것으로 예상되는 2기 진화위는 1기와는 달리 청문회를 실시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되었고 조사권도 더 강화되었습니다. 비록 배보상 조항은 빠졌지만 이러한 점들 때문에 많은 과거사 단체들이 기대를 갖고 2기 진화위 활동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윤: 그러면 이제 각국의 소위 과거사 위원회 또는 과거청산 사례를 들어 볼 차례인데요. 어떤 나라의 과거사 청산, 우리가 참고해야 할 사례가 있을까요?

백: 진실위원회가 구성된 대표적인 국가로는 아르헨티나, 칠레, 엘살바도르, 남아프리카 공화국, 과테말라 등이 있습니다. 먼저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은 <5월 광장 어머니회>로 상징됩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는 1976년부터 7년 동안 아르헨티나를 장악했고 그 기간 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독재 인사 3만 명 이상이 실종됐습니다. 오월 광장 어머니회는 당시 군사정부가 자행했던 폭압으로 인해 실종된 사람들의 어머니들이 만든 단체입니다. 이러한 민간운동을 토대로 이후 민주화 이후 아르헨티나에는 과거사 위원회 격인 실종자 진상규명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위원회는 9개월 동안 7천 건이 넘는 신고를 접수하고, 천5백 명이 넘는 사람을 만나서 면담을 하기도 합니다. 해외로 망명했던 사람들도 증언하기 위해 귀국하기도 했지요. 그 결과 위원회는 5만 장에 달하는 엄청난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실제 이 보고서는 민간출판사를 통해 단행본으로도 발표되었는데요. 현재까지 약 40만 부 이상 팔린 명실공히 베스트셀러이고 아직까지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가판대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윤: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에 대한 구속 등 구체적인 가해자 처벌도 있었다면서요.

백 : 사실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는 물러나기 전에 스스로를 사면해 처벌을 면하는 조치를 취하고 군부 탄압과 관련된 일체의 서류를 모조리 폐기하는 법령을 선포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조치들은 민간정권에 의해 바로 무효화 됩니다. 이에 위원회가 수집한 정보에 따라 당시 군사독재 정권의 책임자 5명이 감옥에 수감되기도 합니다.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 시절에 자행된 혹독한 인권탄압과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하는 등 모범적으로 실천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윤: 사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일 텐데요. 넬슨 만델라 대통령으로 잘 알려진 남아공의 과거사 청산 사례는 어떻습니까?

백: 남아공 역시 투쟁의 역사 속에서 과거사를 청산한 사례인데요. 약 45년 동안 아파르트헤이트, 즉 인종차별 정책이 추진됩니다. 당시 통행을 제한하는 통행제한법 같은 것도 있었는데요. 1960년에 통행제한법에 항의하는 평화적인 시위에 경찰이 발포해 69명이 사망한 샤프빌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이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강력한 투쟁이 이어졌고 1986년이 되어서야 이 통행제한법이 폐지됩니다. 1990년이 되어야 아파르트헤이트의 폐지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공식적으로 폐지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진실위원회 조직에 관한 이야기가 본격화되지요.

윤: 아무래도 45년이나 지속된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이다 보니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백: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는 1995년 12월에 공식 발족합니다. 그 기반이 된 국민 통합과 화해 증진법은 20페이지에 달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피해자와 증인의 진술을 취합하는 인권위원회, 사면 신청을 처리하고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사면 위원회, 그리고 배상안을 정부에 권고하기 위한 배상위원회로 나뉘어 있습니다. 시작 단계부터 사면과 배상이 함께 논의되었다는 것이 특이할 만 하지요. 규모나 활동 면에서도 다른 위원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대단했고 2만 1천 명이 넘는 피해자와 증인들의 증언이 채록되었습니다. 실제로 남아공 위원회는 재판 법정에 비견될 만한 사법적 결정권을 가진 최초의 위원회이기도 합니다. 약 3년여간의 활동을 마친 후 1998년 5권의 위원회 보고서가 발표됩니다.

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면위원회가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이 특이한데요. 어떤 활동들을 했습니까?

백: 예상하시다시피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이 사면위원회입니다. 과거 범죄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구체적으로 털어놓고 그 일이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람에 한해 사면이 이뤄진다는 것이었는데요. 위원회 활동 기간 동안 7천 명 이상의 사면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중 약 2천 명 정도가 중대한 인권유린 범죄에 관련되어 청문회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굳이 사죄하거나 과오를 뉘우치지 않아도 진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조건이었다는 점인데요. 다만, 단순히 인종차별로 저지른 범죄나 국가 혹은 상사의 지시로 이뤄지지 않은 범죄, 진실을 다 털어놓지 않았을 경우 등은 사면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실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고발당해 형을 살고 있는 경우에는 사면위원회에 신청할 수 없었는데요. 재심을 하는 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지르지 않은 죄에 대해서 사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정식적인 재심 절차를 밟아야지만 판결을 뒤집을 수 있었습니다.

윤: 해외 사례 가운데 한 군데만 더 알아보도록 하죠? 과거사 청산하면 칠레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잘 알려진 독재자 피노체트가 오랫동안 집권했던 국가지요?

백: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군사 쿠데타로 축출한 뒤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90년 3월 퇴임하기 전까지 17년 동안 수많은 이들을 고문·감금·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공이라는 구실을 밀어붙였습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당시 살해, 실종된 이들이 3,000명이 넘고 구금, 고문 피해는 5만에서 많게는 20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1978년 피노체트는 사면법을 제정해 쿠데타 이후 일어난 거의 모든 인권관련 범죄에 대해 처벌하지 못하도록 예방 대책을 세워놓기도 했지요. 심지어 1990년에는 정부의 제제 없이 군부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서 1990년, 파트리시오 아일윈이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1998년까지 군 통수권자의 역할을 유지하며 종신 상원의원으로서 국정에 개입할 수 있었습니다.

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상황에서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까?

백: 다행히도 선거에서 이긴 아일윈 대통령이 취임 6주 만에 진실과 화해 국가위원회 설립을 대통령령으로 선포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진실위원회는 국가기관에 의해 고문당해 사망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고문당한 생존자들은 조사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활동 기한도 9개월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관련자들을 소환할 권한도 없었고 군부로부터 협조도 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총 천8백 쪽에 달하는 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했는데요. 이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이 제공한 정보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위원회와는 달리 칠레 진실위원회의 특이할만한 점은 무엇인가요?

백: 칠레의 진실위원회는 앞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위원회 결과에 따라 살해 혹은 실종된 희생자 가족을 위한 상당한 수준의 배상 프로그램이 추진되었습니다. 후속으로 ‘배상과 화해 국가법인’이 설립되었고요. 희생자 가족들은 평생 칠레 정부가 지불하는 ‘연금’을 받게 됩니다. 유족이 단 1명인 경우에는 한화 약 35만 원, 희생자의 배우자, 부모, 자녀, 배우자 부모가 있는 경우에는 1인당 한화로 약 50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요. 적은 돈인 것 같지만 1997년 기준 칠레의 월 평균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유가족은 병역 의무에서 면제되기도 하고 희생자 자녀의 경우 35세까지 대학교육이나 직업교육을 보장받고 장학금을 받습니다. 매달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을 때마다 범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국가가 인정하고 오랜 시간 동안 부정되었던 일이 옳았다고 인정받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유가족의 증언도 기억이 납니다. 물론 여기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생존한 피해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윤: 그렇군요. 아무래도 제주 4.3과 관련해서도 배보상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칠레의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이와 관련된 다른 국제 기준들도 있나요?

백 : 극심한 국가폭력의 피해를 겪은 사람들은 각종 신체적, 심리적 상처로 고통받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일할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렇기 때문에 광범위한 인권 유린이 일어난 이후에 정부는 반드시 피해자들에게 기초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배상금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앞서 칠레 유가족의 이야기처럼 배상금이 지급된다는 것은 국가가 잘못을 인정했다는 공식적이며 상징적인 사죄의 의미까지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법에서 배상은 ‘repa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요. 여기에는 금전적인 지원뿐만이 아니라 원상회복, 보상, 사회 복귀, 사죄와 재발 금지 보장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입니다. 4.3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국제적 기준을 잘 살펴보고 특별법 개정에 이런 내용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윤: 오늘은 각국의 과거사 청산 사례를 들어봤는데요.
지금까지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백: 감사합니다.

제주MBC 라디오제주시대

2020년 7월 8일, 제주MBC 라디오제주시대 <오늘의 시선>에서 백가윤 대표의 대담 내용입니다.
인터뷰 전문보기 자료에 대한 저작권은 제주MBC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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