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주다크투어에서는 시민들과 함께 4·3 유적지 현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적지에 대한 문서는 4·3 연구소에서 발행한 제주4·3 유적 I 개정증보판 (2018년), 제주 4·3 유적 II (2004년)을 참조했습니다. 4·3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온라인 지도에 장소들을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제주 4·3 유적지의 현재 모습에 대한 기록은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제주의 역사가 난개발의 광풍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함께 기억해주세요. 각 유적지는 현재 모습을 담은 사진, 유적지 설명, 찾아가는 법, 위도와 경도, 그리고 해당 유적지와 연관된 다른 유적지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제주다크투어 4.3 유적지 지도
날이 쨍하게 맑았던 3월 17일,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가시리와 표선리, 토산리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원래대로라면 4월 11일경에 유채꽃 축제로 잘 알려진 가시리를 돌아보는 월간기행을 진행하려 했는데 코로나 19로 일정이 미뤄지는 바람에 저희끼리 먼저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노형리, 북촌리에 이어 가시리는 4·3 당시 유독 피해가 컸던 마을이었습니다. 서귀포 지역에서는 가장 피해가 큰 마을이지요. 전체 마을 주민 약 1,600여 명 중에 450여 명이 4·3 당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리의 4·3 유적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가시리 답사를 위해 가시리 4·3 생존자이신 오태경 선생님의 이야기를 찾아보았습니다. 2018년, 오태경 어르신의 이야기를 담은 기억의 책 “자신을 돌아보길 당부하며”에는 가시리 4·3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1931년생, 올해로 90세이신 오태경 선생님은 가시리에서 태어나 4·3을 겪고 살아나신 어르신입니다. 4·3 문화해설사로도 활동하시며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계십니다. 당시 4·3의 광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토산리로, 표선리로 소개 다니셔야 했던 어르신의 발자취를 따라 답사를 다녀보았습니다.
초토화작전 당시 오태경 어르신이 소개해 갔던 토산리에는 도피자 가족이 희생된 옛 비석거리와 토산리민이 학살당한 향사 옛터가 있습니다. 저희가 가지고 간 기초 자료는 2004년에 발행된 <4·3 유적 II>(4·3 연구소, 2004)입니다. 10년이 훨씬 넘은 사진과 자료에 기초해 유적지를 찾다 보니 어디가 어디인지 가물가물합니다. 책에 나와 있는 흑백 사진을 이쪽으로 돌려보고 저쪽으로 돌려보며 장소를 추측해 봅니다. 토산리 이장님께 전화도 드려보고 근처에서 운동 중이시던 어르신께도 여쭤보지만 다들 잘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결국 마을회관을 찾았습니다. 마침 마을회관에 근무하시는 분이 장소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비석거리는 저 아래에 있던 곳, 사진 찍은 곳이 맞고, 향사 옛터는 마을회관에서 나가서 더 위로 올라가야 해요. 마을회관 바로 뒤는 당이 있던 곳이야.”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면 엉뚱한 곳 사진을 찍고 올 뻔했습니다. 어느 곳에도 4·3 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은 없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위치를 꼼꼼히 기록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차를 돌려 표선으로 향합니다. 하얀 백사장이 있는 해수욕장으로 잘 알려진 표선. 이곳도 4·3 당시 대표적인 학살터입니다. 토산리에서 끌려온 200여 명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시리, 의귀리, 한남리, 수망리 등 근처 주민들이 이곳에서 학살당했습니다. 지금의 표선 도서관 입구가 가장 많은 학살이 일어난 곳이었고 그 주변 백사장 곳곳이 모두 학살터였습니다. 노랗게 피어있는 유채꽃 사이, 4·3 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처연합니다.
오태경 어르신을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다가와 가시리로 발길을 돌립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시리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며 오태경 어르신이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시간을 내서 함께 가시리 유적지를 돌아봅니다.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이 한참을 헤매며 참지 못했던 버들못도 어르신과 함께 가보았습니다. 4·3 당시 76명의 가시리 주민들이 총살당한 버들못 앞에는 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 없습니다. 버들못에는 수확이 끝난 무들만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오태경 어르신과 함께 가지 않았으면 지도를 들고도 찾지 못했을 게 분명합니다. 4·3을 기억하고 지켜나가는 데 있어 유적지 기록이 꼭 필요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가시리에 있는 두 동산, 마두릿동산과 고야동산은 4·3 당시 사람들이 연락을 주고받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나무와 건물들에 가려 서로 보이지 않지만 70년 전에는 두 동산이 일직선 거리에서 바로 보였습니다. 주민들은 동산 위에서 경찰이 오면 검은 깃발을, 군인들이 오면 노란 깃발을 올려 마을에 위험을 알리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두 동산의 일부도 도로를 확장하며 사라져 지금은 그때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찾기가 어렵기는 달랭이모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은 1948년 11월 15일 가시리 주민 12명이 희생된 곳입니다. 제주도에서 만든 가시리 4·3길에 포함된 유적지이지만 이 또한 혼자 찾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달랭이모루 근처에는 펜션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난개발의 광풍 속, 4·3 유적지들은 지켜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죽으면 다 잊힐 것이라는 불안감이 가장 크고 두렵지. 역사는 잊으면 반복되기 마련이야. 그러니 잊지 말고 꼭 기억해주길 부탁해.” 따뜻한 봄날, 가시리 유채꽃길 속을 걸으며 오태경 어르신의 당부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건 이어달리기 같은데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한 사람의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또 다른 기억으로 이어져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 것이겠지요. (사)제주다크투어도 꾸준히 유적지를 기록하며 4·3의 기억을 이어나가겠습니다.